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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 상 ㅣ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재회란 것은 꽤나 미묘한 위치에 있다. 좋은 기억, 좋은 감정으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경우에는 옛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워 할 수도 있겠지만, 잊고 싶은 기억,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재회란 것이 달갑지 않다. 아니 달가운 정도가 아니라 시간을 다시 되돌려 재회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저 찜찜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머릿속 깊은 곳에 묻고 기억의 저편에 유배를 보냈을 경우에는 더더욱.
십팔년 전에 처음 만났던 소녀와 소년 둘. 그들은 약 1년간의 시간을 함께 보낸 후 헤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칠년이 지나, 처음 만난 달, 처음 만난 날과 똑같은 날에 그들은 재회하게 되었다. 사실은 세명 모두 서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만나면 안되었기에 만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은 잔인하게도 세 사람의 재회를 허락했다.
구사카 유키, 노인병동 간호사. 초등학교 다닐 당시 등교 거부와 거식증, 그리고 자해로 소아정신과 병동인 에히메 현립 후타미 소아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어머니의 차별 대우와 착한 아이 컴플렉스 때문에 매우 힘들어 했다. 또한 자신에게 냄새가 난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 유키의 근본적인 상처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무언가 짐작되는 것이 있지만 아직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어머니는 아들인 사토시를 우선하고 유키를 윽박지르고 있다. 돌아가신 유키의 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유키를 감싸주긴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다. 유키의 아버지는 유키가 입원한 병원 근처의 산에서 실족사했다. 유키의 동생 사토시는 볍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누나와 엄마가 감추는 비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고 있다.
나가세 쇼이치로, 변호사. 유키와 함께 후타미 소아종합병원에 입원했었다. 남자가 끊이지 않았던 어머니때문에 집에 혼자 남겨진 경우가 많았고, 심한 경우 굶어 죽을 상황까지 갔었다. 그로 인해 폐소공포증과 어둠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현재 그의 어머니는 치매로 유키가 일하는 노인병동에 입원한 상태. 동물원(소아정신과)에서의 별명은 모울(두더지)
아리사와 료헤이, 형사. 후타미 소아종합병원 시절 쇼이치로의 단짝 친구. 그의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마더 컴플렉스를 가진 아버지는 료헤이를 자주 구타했다. 동물원 시절의 별명은 지라프(기린) 현재 나오코란 여성과 만남을 가지고 있으나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녀를 떠나기로 했다. 그동안 유키를 계속 지켜봤던 것으로 추정.
십칠년 전, 세 사람은 후타미 소아종합병원 퇴원 기념 등산에서 무언가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 결심을 실행하도록 만든 일은 무엇일까. 상권의 내용은 세 명이 그곳에서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 뒤에 나올 무언가가 두려워진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
그리고 십칠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날의 일로 인해 쇼이치로와 료헤이, 유키 사이에는 무슨 변화가 분명히 있었다. 쇼이치로는 그 일로 인해 료헤이에게 무언가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여전히 그 일은 안개속에 가려진듯 보이지 않는다.
이들 세명은 모두 어른들의 기대 혹은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성장기의 트라우마는 어른이 되어도 극복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니 오히려 트라우마를 가슴 속 깊은 곳에 감춰두고 다른 일에 몰두하며 잊으려 했다. 하지만 세 명의 재회는 그들이 묻어둔 트라우마의 뚜껑을 열어 버렸다. 료헤이는 아동성폭력 사건의 범인을 죽이려고 한데다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나오코에게 심한 말로 상처를 입힌다. 유키는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노인병동에서 죽을둥 살둥 일하면서 잊으려 한다. 쇼이치는 겉보기에는 가장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는 듯 보여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 곳, 어두운 곳을 두려워 한다. 또한 감정을 극한까지 절제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사람의 재회가 이루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 두 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 여성은 자신의 지나친 기대로 인해 자신의 아이들을 학대하다시피 한 여성이고, 한 여성은 남편의 바람기로 인한 스트레스와 육아 스트레스로 자신의 아이에게 화상을 입힌 여성이다. 도대체 이 여성들은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 것일까. 누군가 그들을 보면서 자신이 어릴 때 받았던 트라우마를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린 시절 부터의 비밀에 숨막혀 했던 그 누군가의 범행일까.
책을 읽는 내내 두려웠다. 세상의 어둠을 모두 끌어다 놓은 듯한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공간이 되어야 할 가정, 세상 모든 이가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유일하게 자신을 감싸줄 가족이 붕괴된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웠다. 특히나 아이에 대한 폭력은 언어 폭력에만 그치지 않고 육체적 학대도 함께 진행되었다. 가장 행복해야 할 나이에 학대로 인한 큰 충격을 받아 그것이 어른이 된 후에도 고스란히 트라우마로 남은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사고 방식이나 세상을 대하는 눈이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어른들. 이들을 구제하고 구원할 것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영원의 아이』는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 가족 붕괴의 이야기에 빗대어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있는 소설이다. 가정은 작은 사회, 그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모여 큰 사회가 만들어 진다. 그렇다 보니 가족의 이야기가 사회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오히려 추악한 어둠에 물든 현대 사회를 고발하는 이 소설의 결말은 어둠에 사로 잡힌 이들을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은 어둠과 절망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 것인가.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수도 없이 많다
살아가라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43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