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들의 귀환 - 1636년 고립된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꿈꾸는 역사 팩션클럽 3
허수정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지난 여름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우리나라에도 탐정이 있었다는 사실에 - 그것도 조선시대에 - 기뻐서 폴짝폴짝 뛰고 싶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는 에도시대의 오캇피키를 주인공으로 한 탐정소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에도 명탐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어제 이 책을 읽으면서 아뿔사! 하는 미묘한 탄식이. 조선시대의 명탐정 박명준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시리즈가 벌써 세권이 나왔으며 그중 최근에 나온 것이 이『망령들의 귀환』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혼자 있었기에 조금 쑥스러워하고 말았지, 안그랬으면 많이 부끄러울뻔 했다. 누군가에게 "있잖아,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에 명탐정이 있었대. 그 사람이 나오는 책이 망령들의 귀환이야~"라고 했다가 누가 그 시리즈엔『왕의 밀사』와『제국의 역습』도 있어, 라고 했을테니까.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나는 그런 묘한 상황에 적당히 대응하는 요령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시리즈 1, 2권을 뛰어 넘고 바로 이 책을 읽었지만, 내용이 연속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마음 푹 놓고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배경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약 40년이란 시간이 지난 1636년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팔공산 한자락에 자리잡은 까마귀촌이란 곳. 이곳은 철저히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마을이었다. 박명준인 일본인 오카다와 함께 까마귀촌으로 누군가를 찾으러 가게 된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묘하고 충격적인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까마귀촌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깊은 산중의 고립된 마을은 외부인에 대해 철저히 배타적이다. 까마귀촌 역시 그랬다. 외부인이 들어오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는 믿음.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람들의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은 그 자체로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망령이니 귀신이니 하는 말을 하는 노파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신사를 닮은 성황당은 까마귀촌의 음산함을 더욱 배가시킨다. 조선땅에 일본의 신사를 닮은 성황당이 존재한다, 게다가 그곳에 기거하는 것은 무당이 아니라 신관이다, 란 것은 이 소설에 있어 가장 큰 축을 담당한다. 그것이 바로 이 까마귀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며, 모든 사건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가정한 하나의 가설은 정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쟁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이 땅을 침략하러 왔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에 뿌리를 내린 사람도 있을 거란 가설은 전혀 엉뚱하지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이 철저히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어떤 의심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들, 그들에게는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과거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스스로 망령이 되었다. 무참한 살육의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마을, 그곳에서 또다른 살육이 시작되는 현장을 목격하는 나로서는 소설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들은 망령의 지배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조선시대의 명탐정 박명준. 박명준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왜관(倭館)에서 일하는 조선인으로 나오는 그는 여느 탐정과는 좀 달라 보인다. 보통 탐정이란 캐릭터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달리 그는 마음이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자신이 생각한 바에 있어서는 굽히지 않는 꼿꼿함이 있으나, 누군가의 아픔에 동조하고 감응할 수 있는 따스한 마음도 가진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때 검지를 들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법은 어쩌면 박명준만의 트레이드마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고립된 마을에서 벌어졌던 비극적인 살육극과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는 망령들. 그리고 그 망령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망령들의 귀환』은 꽤나 흥미로운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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