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시스템 속에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태고적 우리 선조들의 살아온 방식도 그러했다. 자연의 힘앞에, 자신보다 더 강한 동물들 앞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뭉쳐서 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점차 형태를 갖춰 거대한 시스템이 되었다. 그 시스템은 요즘 말로 하면 국가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 있는 또다른 수많은 하부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물론 국가가 늘 내 입맛에 맛도록 정책을 꾸리는 것도 아니요, 때로는 원수도 저보단 낫겠다고 생각할 만큼 내 숨통을 죄어올 때도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안주하며 살아간다. 윤리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크게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커다란 장애없이 시스템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내가 보는 시스템이 나를 둘러싼 시스템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속한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이지만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각과 같은 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소설『설계자들』이 그려내는 세상이다.

수녀원 앞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래생(來生)은 전문 킬러, 즉 암살자이다. 그는 너구리 영감이 운영하는 도서관에 소속되어 있다. 너구리 영감의 도서관은 겉모습은 도서관이지만, 실제로는 설계자들이 설계한 일을 실행하는 실행원들이 있는 곳이다. 즉 너구리 영감은 일종의 브로커이다. 설계자들이 설계한 일을 의뢰받고 암살자들을 풀어 사람을 제거하는. 이런 곳은 도서관외에도 여러군데에 존재하며 고급 설계를 맡는 곳과 저급 설계를 맡는 곳 등으로 다양화되어 암살자들의 수준도 그들의 소속된 곳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그렇다면 설계자들이란 누구인가. 설계자들의 정체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 대부분이 권력과 부에 있어서 자유로운 자들이란 것들은 쉬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브로커들 역시 - 너구리 영감이나 한자 - 우리 사회의 엘리트 층이며, 부를 거머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설계자들의 시간적 배경은 80년대 말쯤으로 추측된다. 군부 독재가 무너지고 겉으로는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시스템안에서 방해되는 인물은 몰래 처리하는 그런 정치적 상황이었으니까. 독재정권하에서는 숙청이란 명목으로 사람들의 목을 날리기는 쉬웠지만, 적어도 민주화란 명분을 가진 시스템아래에서는 그런 것이 통할리 없으니까. 그러하기에 커다란 시스템안에서 그들의 정치적 목적에 위배되는 인간에게는 죽음이 설계되고 그것이 몰래 실행된다.

그렇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마법사나 마법사의 지팡이, 마법사의 검, 마법사의 망또, 마법사의 가루 등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그려지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수만권의 장서를 소유한 암살자 브로커 너구리 영감의 도서관, 칼잡이 이발사, 겉모습은 애완동물 화장장이지만 다른 일로는 사람 사체를 태워 없애는 털보네 화장장은 내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욱더 현실성이 가미되는 것은 역시 래생이란 인물의 캐릭터이다. 학교라곤 초등학교 근처도 가보지 못한 래생은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동서양 고전을 읽어 왔다. 또한 설계자들의 명령에 따라 암살을 하러 갔다가 망설이기도 하고, 실수때문에 한동안 숨어 살때는 평범한 공장직원으로 그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지금은 스탠드와 독서대라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저런 암살자가 - 우리가 아는 암살자를 떠올려 보자 -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그가 설계자들이 준 일을 완벽히 수행하지 못할 거란 것은,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란 것은 여기에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설계자들도 우리 같은 하수인들일 뿐이야. 의뢰가 들어오면 설계를 하지. 그 위에는 설계자를 설계하는 놈이 있겠지. 그위에는 그놈을 설계하는 또다른 설계자가 있을 거고. 그렇게 끝까지 올라가면 결국 뭐가 남을까? 아무것도 없어. 맨 위에 있는 것은 그냥 텅 빈 의자일 뿐이야. (93p)

이렇게 말하는 래생을 보면 래생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에게 일을 의뢰하는 설계자들에게, 그리고 그 위에 존재하는 시스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결국, 래생이 자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책 전반을 통해 추측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책 전반부의 노인과의 만남은 어쩌면 그를 흔들어놓은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을지 몰라도. 노인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노인은 래생이 누군지도 알았을 것이다.

래생은 결국 방아쇠를 당기고, 그후 노인의 정체가 드러나지만 왠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그 노인이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인간이란 것보다 꽃에 말을 걸고 자신의 개를 사랑하고, 처음 보는 젊은이에게 따스한 차와 밥을 대접하는 노인의 모습을 먼저 보았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노인은 우리의 인식과는 다른 차원에서 살해된 표적이다. 시스템안에 두긴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르고, 시스템안에서 보기에 더이상 쓸모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제거되었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입장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래생의 일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한 편의 거대한 코미디다. 그러니 경찰은 총을 쏜 자만 찾아내면 되고, 설계자들은 총을 쏜 자만 제거하면 된다. (130p)

래생은 이러한 시스템에 환멸만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에 환멸을 느낄 뿐만 아니라 이 시스템을 뒤집으려는 자도 이 책에서 분명히 존재한다. 한 설계자의 조수였던 미토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녀의 부모는 설계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미토가 시스템을 뒤집고자하는 것은 단순히 원수를 갚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사회의 썩어 들어가는 부분과 정치의 그늘을 폭로하고자 한 것이었다. 어찌보면 한 사람의 힘은 그 시스템을 통째로 뒤집기에 미약할지도 모른다. 분명 미토도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시스템을 전복시킬 방법을 찾아 왔고, 그 이용 대상이 래생이 된다.
 
래생의 마지막은 사실 헐리웃 액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블록버스터급은 아니고 그냥 액션. 도대체 서울 한복판 백화점에서 총격이라니. (어쩌면 이건 내 생각일지는 몰라도, 래생의 죽음은 간첩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질지도 모른다 - 단지 상상, 그러나 우리나라 권력자들을 생각해보면 래생의 죽음을 덮는 것에 그보다 좋은 명분은 없을지도 모르니까) 내 상상이 아니라 이 책이 보여 주는 래생의 죽음에 대한 명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래생은 어차피 암살자로 살아 봤자 오래 살지 못하니, 그렇게 삶을 끝내고 싶었을 뿐일까.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죽여온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놓은 적이 없는 사람의 마지막 선택은 미묘한 위화감을 가져다 주기는 한다. 하지만 래생이 뻔뻔한 인간으로 그려졌다면 이 책의 명분이 없으니,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사회의 엘리트 층이라 불리는 부와 권력을 소유한 자들의 마리오네트 인형극에 이리 춤추고 저리 춤춰 왔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 그 실을 쥐고 있고, 누군가는 그 실에 맞춰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깨끗한 권력이란 없다. 어딘가에는 느슨한 부분이 있고, 어딘가에는 구멍 뚫린 부분이 있어 그곳을 통해 불법적인 일을 몰래 저지르는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미토같은 사람이 있어서, 래생같은 사람이 있어서 끝을 모르는 암흑에 작은 빛이 비추는 일도 끊임없이 생길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너무 낙천적인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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