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강제수용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담은 일명 수용소 문학은 흥미 본위로는 읽기 어려운 책이다. 강제수용소를 소재로 한 영화 중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인생은 아름다워나 쉰들러 리스트를 본 사람들은 강제 수용소의 참혹함에 눈을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영상이라는 시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글로 씌어진 문학이라고 해서 읽기 쉬운 것은 아니다. 요네하리 마리의 올가의 반어법은 러시아 강제 수용소인 라게리에서 생존해 귀환한 두 여성의 삶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씌어진 소설인데, 중간중간 등장하는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는 참담했다. 그러나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직접 러시아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한 남성의 입을 빌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올가의 반어법보다 더 수용소 상황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열일곱살의 동성애자 레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겨 왔지만, 자신이 가진 비밀의 무게가 무거워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이곳만 아니라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러시아 강제 수용소로 가는 열차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전쟁의 책임을 독일에 묻는 러시아 정부는 루마니아 같은 곳의 소수 독일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끌고 갔다. 레오는 그곳에서 혹독한 추위와 엄청난 노동, 그리고 자신들을 숫제 짐승 취급하는 러시아인들 밑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레오에게 있어 가장 가혹했던 것은 바로 배고픔이었다. 멀건 양배추 수프와 딱딱한 빵 한조각. 노동의 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식사 배급이었다.

일일곱살, 한창 잘 먹고 클 나이의 레오에게 있어 배고픔은 가혹한 적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막사는 천막에 불과했고, 지급되는 옷이나 신발 등은 조악하기 그지 없었다. 이와 빈대, 벼룩이 들끓어 머리를 박박 밀어야만 했다. 배고픔만 좀 덜 수 있다면 혹독한 추위도 강도 높은 노동도 참을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고픔은 수시로 찾아왔고 그를 괴롭혔다. 가져간 물건들 중에 팔 수 있는 건 모조리 팔았다. 하지만 늘 배가 고팠다. 배고픈 천사는 늘 그의 곁에 머물며 그의 숨통을 죄어 왔다. 몇년이 지나자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중에 부부였던 사람도 자신이 살아 남기 위해 한 사람을 궁지로 몰고 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침에 배급받은 빵을 아껴 베갯속에 넣어둔 레오는 그곳에서 작은 새끼 쥐들을 발견한다. 레오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 쥐들을 곱게 싸들고가 화장실에 빠뜨리고 만다. 자신도 굶는 처지에 쥐들까지 먹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이 아껴 놓은 음식에 손을 대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마땅했다. 그것은 겨우 빵 몇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혹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게 되어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레오는 너무나도 힘들어 목숨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어느 겨울날 수용소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고 땅을 파라고 시켰을 때, 꼼짝없이 총살당하는 줄 알았던 레오. 그 공포는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에 반발해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운명을 내놓으면 지는 거다. 레오는 할머니의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이 레오에게 부적처럼 작용했다. 또한 석탄을 팔러 나갔을 때 만난 여인이 준 흰색 아마포 손수건을 끝끝내 팔지 않고 간직함으로써 그는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배고픈 천사에게 결코 자신을 완전히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오년간의 수용소 생활. 레오는 어느 정도 그곳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비록 배고픈 천사가 그를 따라다녔을지라도, 죽음이 온화한 미소를 그에게 건넸을지라도 말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나무 가지로 작은 트리를 만들어 초록색 장갑의 실을 풀어 걸고 빵조각을 달아 놓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리 혹독하고 참담한 환경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을 하게 된다. 어쩌면 힘들단 생각만으로는 버틸 수 없으니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발동되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수용소 생활 오년만에 레오는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불안했다. 수용소에서 받은 어머니의 엽서. 그곳에는 자신의 동생이 있었다. 돌아갈 곳이 있을까. 돌아가서 적응할 수 있을까. 부모님은 자신을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바깥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오년이었을지 몰라도 레오에게 그것은 오십년의 세월이나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했고, 그 자신도 변해버렸으니까. 집으로 돌아와 생활을 하면서도 오히려 수용소 생활을 그리워하는 레오를 보면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갑작스런 자유가 주는 어색함이라고 하기엔 지나친 생각일까.

레오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그는 그곳에 존재할 수 없었다. 밤의 어둠은 수용소 생활 시기로 그를 되돌려놨고, 때로는 악몽처럼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리워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이랄까. 결국 결혼생활에도 안정을 찾지 못한 레오는 또다시 길을 떠난다. 중간중간 레오의 현재 이야기가 나오는데 반세기가 지나도록 레오는 수용소 생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뼈와가죽의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배고픈 천사는 여전히 그의 곁에 존재했다. 육체적인 배고픔보다는 정신적 허기가 그를 굶주리게 만들었달까. 그토록 힘겨운 일을 겪었으니 그것을 잊지 못하는 것도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수용소 생활에서 자신의 온 에너지를 끌어 썼기 때문에 삶의 에너지가 바닥까지 고갈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르타 뮐러의 지인인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수용소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어진『숨그네』는 실제로 참혹한 수용소 생활을 겪은 생존자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큰 사실성을 부가한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수용소 생활에 대해 무척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수용소 생활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보고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씌어져 있다. 헤르타 뮐러 특유의 시적 문체와 비유와 은유는 그 참담함을 배가시킨다. 아름다운 언어가 그려내는 참혹한 진실은 그 충격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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