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멈출 때 풀빛 그림 아이 32
샬롯 졸로토 지음, 스테파노 비탈레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1월
구판절판


바람이 멈추면, 어떻게 될까.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여름날엔 더위가 한층 더할 것이고, 추운 겨울날에는 조금은 덜 추울거야. 봄날엔 바람에 맞춰 살랑거리던 새싹들의 춤이 잠시 멈출 것이고, 가을엔 또르르르 굴러가는 낙엽들의 행진이 다음 행진을 준비하며 멈추겠지.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하루종일 대지를 비추던 해가 지고 있어. 하늘은 노란색에서 붉은 색으로 그리고 보랏빛으로 점점 어두워져 가. 아이는 저무는 해를 보면 문득 슬퍼졌지. 해는 지면 어디로 갈까?

아이는 오늘 하루종일 친구와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즐겁게 뛰놀았어. 놀다 지치면 초록빛 잔디 위에서 낮잠을 한숨 자기도 하고, 배나무 밑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도 했지. 자기전엔 아빠가 책을 읽어주시기도 했지.

잘 자란 인사를 하러 온 엄마에게 아이는 물었지. 왜 낮은 끝나야 하는 거죠?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지. 밤이 별과 달과 함께 너에게 좋은 꿈을 선사하려고 그런단다.

아이는 낮이 끝나 해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 엄마는 아이에게 말했어. 낮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어딘가에서 다른 낮을 준비하는 거라고. 그리고 세상에는 영원히 끝나는 건 없다는 말도 덧붙였지.

아이는 또 물었어. 바람이 그치면 어디로 가냐고. 엄마는 어딘가 다른 곳으로 불어가 다른 나무들을 춤추게 한다고 대답했어.

아이는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려 어디로 가냐고 물었어. 엄마는 어느 집 잔디밭으로 날아가 새로운 민들레를 피운다고 말했지.

아이는 여전히 궁금한게 많았어. 그다음으로는 산이 봉우리를 넘으면 무엇이 되냐고 물었지. 엄마는 산이 밑으로 내려가면 골짜기가 된다고 말했지.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가게 되어있으니까.

그럼 모래에 부서진 파도는 어떻게 되나요? 아이가 물었지. 파도는 바다에 스며들어 새로운 파도를 만든다고 엄마가 대답했어. 아마도 그 파도는 물고기들에게 신선한 공기도 날라주겠지.

폭풍이 끝나면 비는 어디로 가나요? 폭풍은 구름이 되어 다른 폭풍을 만들러 간단다. 폭풍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으니까. 또한 폭풍이 끝나면 눈부신 햇살이 비추지.

그럼 구름은 흘러 어디로 가나요? 어딘가 그늘이 필요한 곳에 그늘을 만들러 간단다. 사막을 지나는 사람에겐 그 구름이 만들어준 그늘 덕분에 덜 힘들거야.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어 떨어진 나뭇잎은 어떻게 되나요? 땅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나무와 새로운 잎, 새로운 풀들이 나도록 도와준단다. 다음에 나올 새로운 나무, 새로운 잎, 새로운 풀들에 밥을 주는 거란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끝나는 건데, 그럼 끝나는 게 있잖아요, 라고 아이가 물었지. 엄마는 가을이 끝나면 겨울이 시작되니,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니라고 대답했어.

겨울이 끝나면요? 눈이 녹고 새들이 돌아오고,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그렇게 봄이 시작되지.

정말 이 세상에 끝나는 건 없네요. 아이는 창밖의 하늘을 쳐다 봤어. 어느새 완전한 밤이 되어 있었어. 하늘은 깜깜해져서 보랏빛이 도는 까만색이 되었지.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별들도 달도 빛나는 밤이었어.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어. 이제 잘 시간이야. 네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달은 다른 곳에서 밤을 시작하러 멀리 떠나고, 해는 새로운 낮을 시작하러 이곳으로 돌아올 거란다, 라고. 아이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어. 새로운 내일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무척 철학적인 동화라고 생각했다.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니까. 아이들은 궁금한 게 참 많다. 난 어린 시절에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라고 집요하게 뭔가를 부모님께 여쭤 봤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부모님은 잘 대답을 해주셨지만, 만약 내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내 성격에 잘 대답해줄 자신이 있을까, 싶다. (笑)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 것은 얼핏 간단해 보이는 것이지만 대답하기 꽤 어려운 질문들이다. 나도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지 한참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끝과 시작은 맞닿아 있다. 그것은 아마 평행선을 달린다거나 극과 극의 개념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얼핏 보기엔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도 근본적으로는 연결되어 있달까. 왠지 이 책을 읽으니 세상 이치가 손에 잡히는 듯 하다. 그리고 희망이 퐁퐁 솟아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뭔가 벽에 부딪히고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여도 어딘가 또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잘 찾아 보면, 잘 생각해 본다면.

『바람이 멈출 때』는 내용도 참 좋지만, 그림도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판화같은 느낌이랄까. 색감은 선명한 편이지만 각각의 그림이 서로 잘 어우러진다. 특히 무언가가 끝나는 느낌의 그림과 시작되는 느낌의 연결이 무척 좋았다고 할까.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 꽃을 피우고, 낙엽이 떨어지면 눈이 내리고. 이런 연결부분이 어색하지 않고 참 자연스럽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작게 그려진 것들 역시 계절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할로윈 호박이나 마녀가 왼쪽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오른쪽에 있는 식으로.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넘기지 않고 유심히 살펴본다면 이 책을 더욱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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