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없는 월요일 작가의 발견 5
아카가와 지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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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일하고 싶어서 일하는 사람들은 몇 퍼센트나 될까. 워커 홀릭들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사람들은 돈 문제만 없다면 백수 한량으로 살기를 꿈꾼다. 내 회사나 내 가게라도 일하기 싫을 날은 분명히 있을테지만, 남 밑에서 일한다는 건 정말 일하기 싫은 날들의 연속이 아닐까.

외벌이 봉급쟁이 남편들은 아내에게 "돈 벌어다 주면 고마운 줄 알아. 회사 생활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집에서 팽팽 놀면서.." 라는 레파토리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아이들에겐 "아빠는 너희를 위해 돈을 버는 거야" 라는 레파토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러나 어떨 때는 너희들을 위해 일에 올인하다가 막상 뒤돌아 보면 아무도 없는 그런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아뿔사!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벌써 가족은 해체되었다.

맞벌이의 경우 돈을 두 배 정도 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엄마들은 회사에서 죽도록 일하고, 집에서도 죽도록 일해야 하니까, 그 힘듦은 2배가 아니라 5배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 엄마도 직장 생활을 꽤 오래 하셨던 분이라 나도 그걸 잘 알고 있다. 다행한 것은 우리 아부지는 권위적인 분이 아니라 돈 벌어다 주면~~ 등등등의 말씀은 평생 한 번도 안하셨다.

어쨌거나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회사가 잘 굴러가 준다면, 상사와 마찰이 없다면,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잘릴 위험이 없다면 그래도 할 만하다. 하지만 봉급쟁이의 인생이 그리 순탄하기만 하더냐. 언제 태클이 들어올지 모르고, 언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 사회생활이란 것이니...『상사가 없는 월요일』은 총 다섯편의 단편이 실린 봉급쟁이생활백서 단편집이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만세, 땡잡았다! - 상사가 없는 월요일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요일은 신이 만들었고, 월요일은 사장님이 만들었다고. 월요병이나 블루 먼데이라는 말도 있을 만큼 봉급쟁이들에겐 월요일은 괴로운 요일이다. 그나마 화요일부터는 좀 낫지만 쉬고 난 다음 날이 더 피곤하듯 직장인들에겐 월요일이 정말 괴롭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사가 출근을 하지 않은 월요일이 있다고 한다면? 만세라도 부르고 싶지 않을까. 상사 눈치보랴 일하랴, 밥먹을 때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바쁜 나날들 속에 상사없는 하루는 꿀맛같은 하루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것은 평범한 직장인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곘다. 하지만, 그 꿀맛을 즐기기도 전에 사건사고가 무더기로 터져나온다. 평소같으면 자신의 상사가 처리했을 일인데, 이제는 평사원들이 모조리 해결해야 한다. 이런, 좋다가 말았다. 이거 평소같으면 한 건이 터질까 말까 한 일이 하필이면 상사가 아무도 없는 날에 마구 터져나온다. 직원들은 종종거리며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이 작품에는 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M문구회사의 평직원들, 돈이 없어 강도로 변신한 청년, 회사에 시위하러 온 엄마들에 납품된 문구가 엉망이라고 항의하는 거래처 사람에. 근데 자세히 뜯어 보면 사장은 여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과장 한 사람은 도박빚 때문에 회사 공금 횡령에 이제는 회사를 폭파하려 하고, 시위하러 온 엄마중 대장격인 엄마는 다른 회사에서도 이런 문제로 돈을 뜯어낸 전적이 있고, 거래처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문구 회사에 딴지를 건다. 이런 사람들땜에 평사원들이 이런 개고생을!? 분노가 솟아오를 무렵, 작가는 천재적으로 이 상황을 한번에 말끔하게 정리한다. 우와앗. 이렇게 속시원할 수가!

술 끊으려 했는데... - 금주를 결심한 날

세키구치는 승진같은 것에는 신경쓰지 않으며 살아가는 회사원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사장이 영업부 부장 자리가 비었다며 두 사람의 후보 중 어떤 사람이 좋을까, 라고 의견을 타진해 온다. 갑작스런 사장의 요구에 놀란 가슴 진정시킬 새도 없이, 이번엔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 불륜 상대가 부장 후보 중 한 사람이다. 세키구치는 어떤 사람을 부장으로 선택할까.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는 것이 확실한 누군가가 있다. 그런데 자신의 손으로 그 사람의 출세길을 막을 수도 있는 수단이 생긴다면? 나 같으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이 작품의 묘미는 남편과 아내의 게임같은 두뇌싸움이다. 자, 과연 누구에게 승리가 돌아갈까. 하지만, 또 하나의 비장의 반격이 기다릴 줄이야! 

세상에 이런 일이 - 꽃다발이 없는 환송회

럭셔리한(?) 출장을 다녀왔는데, 회사내에서 내 자리가 없어졌다면? 하야마는 일주일간의 출장에서 돌아온 후 회사에 나갔더니 퇴사되어 있었다. 사직서를 낸 기억도 없는데? 도대체 이건 무슨 음모인가. 하야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다녀도 모두들 대답을 회피한다. 부장은 사직서를 썼다며 사직서를 보여주고, 애인인 가네코는 얼마 전부터 하야마가 기억을 잘 못하고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증언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작품은 읽으면서 정말 씁쓸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아니 자신이 제정신이긴 한 걸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하야마를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열심히 일한 당신, (직장을) 떠나라, 도 아니고 말이지. 하야마를 둘러싼 음모, 음모, 음모, 그리고 안타까운 반전.   

참, 역자는 이 작품의 마지막 반전에 쾌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난 하야마가 안타깝기만 했다. 그런 그를 보고 쾌감을 느낄 악취미는 내게 없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 보이지 않는 손의 살인

호오, 이 단편은 제목부터 추리소설 분위기가 퐁퐁 솟아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 직장인의 슬픈 운명을 그리고 있달까. 사에키는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한다. 그의 여자 친구는 공교롭게도 예전에 사에키의 직장에 참관하러 왔다가 사고를 당했던 남자의 딸이다. 그렇다 보니 여자 친구인 나오코의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나오코의 아버지가 찾아와 말다툼을 하게 되고, 가벼운 몸싸움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일로 나오코의 아버지가 죽어버렸다. 살짝 밀기만 했는데?

갑자기 살인 용의자가 되어 쫓기는 사에키, 그리고 그를 보호해 주고 싶은 나오코.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제목과는 달리 너무나도 안타깝고 너무나도 슬펐던 단편.

걸어서 15분이라고 했는데... - 도보 15분

오카다는 최근 집을 장만하고 이사를 했다. 짐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회사를 쉴 수 없어서 - 쉴 수는 있지만 쉬지 않았다 - 출근한 오카다는 퇴근후 역에서 내려 걸으면서 자신의 집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한다. 다 똑같아 보이는 건물들. 게다가 집 주소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핸드폰도 없고, 집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고. 정말 미아가 될 판이다. 걸어서 걸어서 집으로 가던 중 그는 두 가족을 만나게 된다.

한 가족은 남편이 출장갈 때마다 아내가 젊은 남자를 끌어들였고, 한 가족의 가장은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회사에서 젊은 사람에게 밀려난 사람이다. 그들을 보면서 오카다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직장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함부로 그만 둘 수도 쉴 수도 없다.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뒷감당이 힘들다) 게다가 남자들은 묘하게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회사에 안나가는 날은 큰 일이라도 터질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없으면 일이 안돼, 랄까.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회사는 한 사람 정도 없어도 잘만 돌아간다. 그 빈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회사 생활에 올인했다가 나이 먹고 아무것도 없이 쫓겨나는 허망한 일을 겪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은 특히나 회사 인간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회사에 올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단편들에 나오는 인물들도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보답을 받긴 커녕 고장날 때까지 부려먹히다가 고장나면 내쳐진다. 이 단편집은 그러한 평범한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뭐, 때로는 작가의 특기인 잔혹 코믹극 분위기로 흘러가긴 하지만. 오히려 너무 잔혹해서 코믹하달까, 그런 느낌도 받는다. 쓴웃음이 나온단 말이다. 깔깔깔 웃을 수는 없단 말이다. 분명히 유쾌하고 경쾌한 문체로 씌어졌는데도, 직장인들의 비애를 곳곳에서 실감하게 된다.

당신의 봉급쟁이 생활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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