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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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20일 아침, 도쿄의 지하철 안에서 일어난 사린 가스 살포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해 12명의 사망자와 5,000명이 넘는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몇 분만 노출되어도 사망에 이를수 있고, 조금만 흡입해도 호흡곤란, 시야협착, 구토와 발열, 두통과 악몽 등의 증상과 후유증을 남기는 사린. 옴진리교는 왜 사린을 지하철 역에 살포하게 된 것일까. 1권인『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그날 있었던 일을 비롯해 그 사건으로 변한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면, 2권인『약속된 장소에서』는 피해자 측이 아닌 가해자 측으로 분류될 옴진리교 신자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이 책과『언더그라운드』의 비슷한 점이라면, 일단 각각의 인물에 대한 작가가 받은 인상을 적은 글이 먼저 나온다는 것이고, 그후에 인터뷰 내용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게 다른 점을 꼽자면『언더그라운드』에서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면,『약속된 장소에서』는 옴진리교 신자와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질문을, 때로는 논리적인 반박을.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그들의 사고는 아무래도 우리들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표현을 쓴다고 해서 그들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보면 분명히 이들의 사고방식이 사회에 통용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쓰게 되었다)

신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특이한 것을 하나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그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시도는 거의 없다. 때로는 그것이 아무 소용없다고 느낀다. 스스로의 세상에서 외부를 차단하고 살았던 그들. 그것은 비단 가정 외의 세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인터뷰이 대부분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또한 오래전부터 종교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도 많았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을 구원해줄 무언가를 찾는 듯한 사람이 많아 보였다.

그들이 말하는 옴진리교는 처음부터 폭력적인 종교단체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요가와 수행을 주로 하는 작은 신흥 종교 집단이었지만, 그 세력이 확대되어 가면서 조금씩 삐걱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수행에 신경을 쓰면서 살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달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또한 지하철 사린 사건에 대해서도 금세 알지 못하고,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알게 된 경우도 많았고, 진짜 자신들의 교주와 교단 멤버가 그 일을 저질렀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교단에 남아 스스로의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들의 교단이 그토록 무참한 사건을 저질렀는데 왜 교단을 떠나지 않지?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이들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이해가 된다. 이들은 원래부터 바깥 세상 - 자신의 외부 - 에 관심이 가지고 살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이들은 타인의 아픔에 동감하지 못한달까. 자신만의 세계에 틀혀 박혀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공감 능력 또한 사라진 듯 했다. 물론 이들 인터뷰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단에 남아 여전히 수행에 힘쓰는 사람들의 경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옴진리교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한 교주와 실행원들이 나쁘다는 입장일 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러나 수용은 할 수 없는 - 범위는 이 정도가 한계이다.

또하나 특이한 점은 이들은 옴진리교에 들어간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옴진리교를 탈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들 중에는 성상납 요구를 받고, 전기 충격에 의해 약 2년간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여성도 있었고, 독방에 감금되어 실험체로 이용되다 죽기전에 탈출에 성공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옴진리교에 들어간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이런 일이 없었다면 여전히 옴진리교 내에서 수행을 하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 외부의 세상은 그들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옴진리교에 스스로를 의탁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이들에게 약속된 구원의 장소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가해자 측에 있으나 실질적인 가해자는 아니다. 어쩌면 이들도 옴진리교 내부에서 볼 때 피해자들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옴진리교에서 탈퇴했을지라도 옴진리교 신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배척을 받는다. 외부인들(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초록은 동색이니 말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옴진리교 사람들은 모두 극단적인 폭력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동정이나 공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랄까.

이들이 말하는 아사하라 쇼코는 어떤 사람일까.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정도의 신자를 포섭하고 종교단체를 끌어간다는 것은 그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카리스마만 가지고 종교단체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사하라 쇼코의 얕은 점이 점차 드러나고 신자들은 조금씩 동요했다. 아사하라 쇼코는 결국 철옹성같았던 자신의 성에 조금씩 균열이 가게 만든 내부적인 압력이 한계점에 도달했기에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라 보여진다. 이런 이야기와 비슷할까. 미국이 경제 문제나 정치 문제로 국민들의 여론이 거세지고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면 그 시선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물론 국가와 종교단체는 그 규모나 실행력이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내 눈에는 비슷해 보인다. 내부적으로 터져나오는 균열을 해소하기 위해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어쩄거나 범인(凡人)들은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고, 그것(죽음)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그들(교주와 실행원들) 입장에서는 정당성을 주장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 이 사건은 결국 범죄이며 무차별 테러일 뿐이었다. 

이 책이 옴진리교 신자였던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만 실려 있었다면 뭔가 께름칙한 기분만이 남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책 뒷편에 실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와 심리 치료사 가와이 하야오의 대담을 읽으면 그런 기분이 많이 해소가 된다. 이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랄까, 그런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인터뷰도 흥미로웠지만, 이 대담이 이 책의 묘미를 한껏 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무거워진 점은, 이런 종교단체는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란 생각이다. 현대 사회의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무언가에 자신을 의탁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이였던 옴진리교 신자들은 미친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포용할 곳은 이런 종교단체밖에 없는 것일까. 종교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가 변질되어 폭력을 양산하는 것은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 속에서 떠도는 섬같은 존재들, 이들을 포용하고 수용할 곳이 없는 한 이런 일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이 우리 사회의 그늘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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