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을 권리 - 상처 입은 나를 치유하는 심리학 프레임
일레인 N. 아론 지음, 고빛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 두 가지가 공존한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은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오만하다거나 거만하단 소리를 듣는 경우도 많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은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감 없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에는 어떨까. 난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며 소극적이다, 라는 말을 학창시절 내내 들으면서 살았다. 특히 내성적이란 단어는 초중고교 시절을 통해 생활기록부에서 빠진 적이 없을 정도다. 이런 내가 싫어서 바꿔 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지만 사람이란 게 그리 쉬 바뀌던가. 그래서 지금은 기를 쓰고 명랑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결국은 소극적이면서 시니컬하고 소심하면서도 까칠한, 아주 이상한 성격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본인은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하고, 사랑이나 연애를 할 때도 아주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난 친구가 거의 없다. 소수의 친구들만 있고, 그들에게만 내 마음을 열어 둔다. 그들을 만나는 시간외의 나머지 시간은 나만의 세계에 틀혀 박혀 사는 편이다. 블로그를 여러개 개설해놓고 사용하고 있지만, 블로그 본연의 의미인 소통이란 것은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혼자 유유자적, 희희낙락하면서 산달까. 물론 아예 바깥 세계와 소통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혼자 즐기고 있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난 왜 이런 걸까. 물론, 이렇게 사는 게 딱히 불편한 것도 없고 힘든 것도 없고... 등등등의 이유를 난 100개도 넘게 댈 수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게 싫어서다. 뭐, 그런 이유가 99%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스스로를 하나의 틀안에 가두고 괴로워 하게 만드는 심리를 이 책에서는 '못난 나'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책 1장에서 3장까지는 '못난 나'를 만드는 요인을 비롯해 인간 관계 속에서 흔히 나타나는 '순위 매기기'와 '관계 맺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순위 매기기는 권력, 관계 맺기는 사랑을 의미하며, 순위 매기기에 집착하는 경우 스스로의 가치평가를 절하한다거나 타인을 대할 때 방어기제를 이용하는 경향이 커진다. 이와 반대로 관계 맺기를 잘 하는 사람은 따스하고 평온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못난 나'를 만드는 요인으로는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려는 선천적인 성향, 과거의 트라우마, 타고난 민감성, 편견과 차별에 시달린 경험, 불안정한 정서의 영향등이 있다. 나의 경우, 선천적으로 그리 밝은 성격이 아니었으니, 선천적인 경향, 과거의 트라우마, 민감성, 불안정한 정서등이 내 마음속에서 '못난 나'가 생긴 요인이 된 듯 하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에서 난 솔직히 좀 놀랐다. 트라우마란 것이 이렇게 광범위 하고 다양한줄은 몰랐달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성인이 되었을 때의 트라우마가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 또한 체크를 하면서 나에게도 다양한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외였다. 스스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겨왔던 것들은 어쩌면 내가 무의식중에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또한 나의 방어기제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이외에도 본문에는 스스로에 대한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 정도를 알아보는 테스트와 방어기제 테스트가 있었는데, 결과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내 생각과 상당히 달랐다. 특히 내가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부풀리기와 투사하기가 높게 나왔다. 물론 다른 것도 하나 둘씩 체크되긴 했지만, 네개나 체크된 것은 그 두가지이다. 부풀리기는 못난 나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자신만의 세계에 가두는 경향이고, 투사하기는 나의 단점을 다른 사람을 통해 비추어 보는 경향을 의미한다. 스스로도 타인을 대할 때는 어느 정도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게 나올줄은 몰랐다. 좀 씁쓸했달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속시원하단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나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으니. 문제를 알아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4장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본격적인 치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단계는 '순위 매기기'로 이루어진 관계를 '관계 맺기'의 시작으로 바꾸는 것이고 두번째 단계는 무의식과의 소통을 통한 과거의 트라우마의 극복이다. 우리는 과거의 일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이것은 과대평가하는 것보다 때로는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온다고 한다. 뭐, 나도 툭하면 과거 일인데, 잊고 살아야지, 언제까지 과거에 집착할거야, 라는 등의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적절한 극복없이 무조건 잊기나 무조건 가두기는 언제 터질지 모를 트라우마 시한 폭탄을 마음속 깊이 저장해 둔 것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자신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제대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필수일 것이다.
 
세번째는 내면의 비판자와의 대화이다. 내면의 비판자란 내 마음 속에 있는 또다른 나인데, 비판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듯이 부정적이긴 하지만 악의적이지는 않은 또다른 나를 의미한다. 내면의 비판자와의 대화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심리를 조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방어기제로 작용하는 내면의 보호자 - 학대자 또한 심리의 저변에 위치하고 있다. 보호자의 경우 내 마음 속 고치안에 나의 마음을 가두고 무조건 보호하려는 것을 의미하고, 학대자는 스스로에 대해 악의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못난 나'의 부분이 큰 사람일수록 내면의 비판자보다 내면의 보호자 - 학대자 영역이 크다는 것은 더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이 부분을 보면서 내가 나 자신과의 대화를 나눈 적이 몇 번이나 있나, 하고 헤아려 봤다. 뭐, 굳이 헤아려 보지 않아도 손에 꼽을 수 만큼 적다고 할까. 물론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많지만, 적극적인 대화는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나 자신과의 대화가 이토록 크게 작용한다는 것도 잘 몰랐고, 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 방법 또한 몰랐으니, 이제까지 그런 경향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나 자신과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달까.

또다른 방법으로는 꿈을 통한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가 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며, 우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어떤 것들이 드러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통해 자신의 심리를 추정하고 그에 대해 자신의 마음과 대화를 하는 과정이다. 난 꿈을 자주 꾸는 편인데, 거의 기억을 못한다. 기분 좋게 꾸는 꿈보다 기분 나쁜 꿈이 많아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꿈은 인간의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기억이 잘 안나서 그냥 기분 나빠하고 말아 버린 적이 많다. 하지만 앞으로는 꿈에 대해서도 조금은 신경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기분 나쁜 꿈이란 것은 내가 마음 속에 어떤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도 되니까.

이렇듯 내면의 비판자니, 내면의 보호자 - 학대자니 하는 용어와 꿈을 통한 나와의 대화란 것 때문에 좀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이는 결국 내안에 있는 또다른 나와의 대화라고 보면 무방할 듯 하다. 앞서 나온 트라우마의 극복과 이런 치유 과정은 내적인 치유과정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외부적인 치유과정은 어떤 것일까. 첫째로는 순위 매기기의 관계를 관계 맺기로 전환하고, 둘때로는 그 관계 맺기를 강화하며, 세번째로는 그 관계를 유지하고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난 일단은 치유 과정보다는 '못난 나'를 만드는 요인이라든지 원인에 집중해서 이 책을 읽었다. 책을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치유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문제가 뭔지 알아야 해결이 되는 법이니, 처음 이 책을 읽는 나로서는 이게 바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객관적으로 살펴 보게 되니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명히 알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권력 위주의 '순위 매기기'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이라는 구조의 '관계 맺기'를 통해 더 원만하고 따스한 인간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순위 매기기'를 우리 삶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순위 매기기'는 개인의 영역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긍정적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위 매기기'와 '관계 맺기'의 적절한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 '못난 나'를 극복하고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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