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기적 고양이 - 고양이에게 배우는 라이프 테크닉
이주희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1월
구판절판
처음 책 제목을 보고, '이기적'이란 말에 눈길이 확 갔다. 고양이가 이기적이라고? 이건 아니지, 고양이는 이기적으로 보일 뿐, 실은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물인데, 라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진짜 이기적인건 인간이라고, 도. 그래서 얼른 책을 펼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고양이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다. 고양이 찬양론자의 고양이 찬양론일뿐. 그것도 아주 유쾌한.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
아차차! 그전에 여기에 등장하는 네마리 고양이들의 소개가 먼저 필요할 듯. 왼쪽 위에 있는 아이가 셋째 번개탄. 묘종은 봄베이로 막내 아톰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막내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면 살았다. 특기는 두루마리 휴지 살해하기. 별명은 탄 더 리퍼라나? 오른쪽 위에 있는 아이의 이름은 씨씨, 유일한 암컷이다. 네마리 고양이중 첫째. 성격은 조금 예민한 편. 그러나 아톰을 물고 빨고 하는 걸 보면 모성본능이 꽤 강한 모양. 묘종은 터키시 앙고라. 왼쪽 아래의 턱시도가 아톰. 막내이지만 벌써 중년 아저씨의 포스를 풀풀 풍긴다고. 묘종은 코숏. 오른쪽 아래에 있는 이티(?)처럼 보이는 녀석은 메. 겁이 많은 아이로 번개탄과 친하게 지낸다. 가끔 꽃을 뜯어먹고 루꼴라를 아주 좋아하는 채식주의자(?). 묘종은 샴으로 이 집 고양이 중 둘째.
고양이를 보면 사람들은 참 우아하다고 말한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초연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아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저 게을러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게으른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건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물론, 앞다리를 쭉 뻗은 아톰의 모습에선 우아함보다는 뭔가 고양이스럽지 않은 그런 편안함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게으름도 멋지게 보일 수 있는 것. 사람도 그럴 순 없을까. 고양이가 참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고양이건 사람이건, 어쩔 수 없이 솔직한 얼굴근육을, 어쩔 수 없이 가진 것들이 나는 어쩔 수 없이 편하다. (29p)
사람들은 고양이가 늘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고양이의 표정은 실로 다양하다. 울음소리가 다양한 것처럼 표정도 다양하다. 아주 느긋한 시간을 보낼 때의 평온한 표정부터 못마땅한 표정까지. 고양이의 표정은 숨겨지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포커 페이스란 것을 사용한다. 억지로 웃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가 요상한 꼬투리를 잡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웃는다. 나중에 길길이 뛰면서 화를 낼지언정. 그게 사회 생활의 제 1 포인트다. 바깥에서의 그런 삶이 때로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럴 때 고양이의 감정을 감추지 않는 표정을 보면 마음이 스르륵 풀리기도 한다. 고양이의 다양한 표정은... 솔직함을 대변한다. 이러니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다.
고양이의 사랑은 숨김이 없다. 평소에는 생까고 지나가던 수컷 고양이었을지라도, 진짜 사랑을 해야 할 때면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평소에 칠렐레팔렐레 사랑을 흘리고 다니는 것 보다는 그 편이 훨씬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에 늘 난 당신만을 사랑해, 당신만을 원해~~라고 노래를 부르면 그게 아무리 좋은 말일지라도 듣는 사람은 금세 질릴지도 모른다. 평소엔 좀 냉정해도 필요한 순간에는 그 사랑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 그것이 사랑을 오래 지키는 비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와 고양이. 고양이와 남자. 누가 더 나을까. 고양이와 남자를 비교해 놓은 것을 읽으면서 한참을 웃게 되었다. 고양이가 남자보다 좋은 점은 수도 없이 많다. 고양이가 남자와 비슷한 점도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남자가 고양이보다 나은 점은? 그런 게 있을리가 … 번개탄의 표정이 정답이다. 문득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리 여사의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래, 인간 수컷보다는 고양이가 더 좋을 때가 많긴 하지. 이는 고양이 마니아들의 공통적인 생각일지도.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 음,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은 먹고, 자고, 놀고... 대부분 그렇게 생활한다. 이 책은 개와 고양이의 팔자를 비교해 놓고 있는데, 개도 역시 상팔자이지만, 고양이가 더 그렇다고 말한다. 개는 여러모로 사람에게 맞춰 주고 살아야 하니 좀 피곤할거란 결론이랄까. 우리집 개들은... 그렇지, 내가 궁뎅이만 떼면 쪼르르 쪼르르 쫓아온다. 그게 미안해서라도 난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길 고수하는데 말이지. 하여간 행복하게 사는 동물은 개나 고양이나 상팔자다. 그것을 지켜주는 건 인간이란 걸 잊으면 안되겠지?
고양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는 건 고양이 마니아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근데, 따뜻하지 않은 종이 위에 올라 앉는 아유는 뭘까? 맨바닥에는 절대 앉지 않겠다는 귀족적인 우아함? 고양이 입장에선 멋대로 생각하는 건 당신 마음이지만, 난 그저 당신이 나만 바라보길 원했을 뿐이라구요, 일지도. 신문을 펴 놓으면 그 위에 달랑 올라 앉고, 빨래를 개려고 하면 그 위에 달랑 올라 앉고,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 먼저 앉아 있고. 그런데, 종이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안쓰러워 방석을 깔아주면 용케 피해서 앉는 그 심보는 뭐지?? 고양이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도통 알 수 없다. 이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지도.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자기의 반려묘가 접대냥이거나 무릎냥이였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만을 바라봐 주는 고양이였으면 싶을 때도 있다. 사람들이 올 때마다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갑게 맞이하는 고양이보다는 내가 왔을 때만 마중나오는 그런 경우가 바른(?) 고양이였으면 할 때도 있다. 또한 무릎냥이도 마찬가지이다. 고양이가 무릎에 올라와서 자면... 한참을 잔다. 사람은 고양이가 깰까 싶어 꼼짝도 못하고 내 집안이 감옥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주변냥이가 있다면? 손이 닿을듯 말듯한 위치에서 늘 자신을 지켜봐주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참고로 우리집 개들은 주변멍멍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우리집 고양이 중 한 녀석은 무릎냥이고, 한녀석은 변두리냥이이다. 변두리냥이라고 함은 녀석이 불러서 방에 들어가면 멀찍이 떨어져서 앉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만 있으면 만사형통!?
사람을 향합니다.
자신의 고양이가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것에 상처받지 마시라. 이런 행동은 사람이 등 뒤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느끼고 전방만을 경계하는 것이니. 그래도 귀는 사람을 향해 있다. 뒤로 쫑긋 세운 귀. 사람의 움직임을 언제든 파악할 수 있도록 귀를 열어 놓고 있는 모습, 이러니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향해 늘 귀를 열어 놓으면 좋으련만. 분명히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선과 귀는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몹시 심란해진다.
아아아. 아깽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무장해제시키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어떤 아이돌이 와도 아깽이들의 사랑스러움에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은 얼마 가지않는다. 5~6개월이면 중고양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아쉽고, 더 사랑스러운지도.
고양이들은 의외로 겁이 많은 녀석들이 많다. 특히 누군가 집에 오면 몇시간은 숨어서 꼼짝도 안하는 투명고양이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도 많다. 메가 그런 편이라고. 자신의 꼬리에도 놀라 붕붕꼬리를 할 정도라니, 그만하면 말 다했지. 작명의 문제인가. 양처럼 겁이 많은 메. 하긴 우리 티거도, 겁 많기로는 한자리 할 것 같다. 고등어무늬라서 티거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푸우 친구인 티거처럼 아주 겁많은 녀석이다. 투명증후군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예전엔 5분 정도 낯선 사람이 왔다고 5시간 이상을 숨어있기도 했다. 작명에 신경씁시다!
고양이들은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아주 좋아한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박스. 우리 고양이들고 박스만 보면 서로 들어가려고 난리를 친다. 그래서 똑같은 박스를 마련해주면...? 그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나의 박스를 서로 차지하려 애쓴다. 그런 걸 보면 단지 박스에 들어가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서로의 서열을 한 번씩 확인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뭐 어쨌거나 큰 싸움만 나지 않으면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무척 즐거운 순간이다. 특히 저렇게 구멍을 뚫어놓은 박스 틈 사이로 발이 쑥쑥 나오는 걸 보면 그 말랑한 젤리를 꼭 잡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할퀴는 건.... 뭐 능력껏 피하시길.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해볼 것이다. 우리 개나 고양이가 말을 하면 좋을텐데...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람의 말을 하지 않으니까 더 좋을 수도 있다. 말은 행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는 법이 더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 티거처럼 수다쟁이가 사람말을 한다면...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떠들 것 같은데, 그건 좀 고려해 봐야겠다. 고양이는 야옹야옹하니까 사랑스러운 것이다. 야옹 소리만 해도 그 패턴이 수십가지는 될 듯. 잘 들어보면 구별되어 들린다. 어떻게? 사랑하니까. 내가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하는 것만큼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으면서부터였다. 다른 이름도 없이 그냥 고양이라 불린 고양이는 사람들의 웃긴 꼴을 보면서 마음껏 비웃어준다. 세상에나, 우리 고양이가 말을 안하는게 다행이지.. 랄까.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고양이와 보낸 수많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수많은 사건에 대해서도. 어느 페이지를 펼쳐 봐도 고양이 찬양이 그치지를 않는다. 이는 단지 겉모습이 사랑스럽기 때문은 아니다. 각기 다른 고양이들의 성격, 행동. 그것을 통해 느끼는 일상의 행복과 기쁨. 그리고 고양이의 행동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까지, 실려 있는 이야기들은 때론 완전 동의합니다,의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고, 때로는 우리 고양이와 비교해 보면 똑같아를 연발하게 만들고, 때로는 우리 고양이는 이런 점이 더 나은 것 같아, 역시 우리 고양이가 최고야를 외치게 만든다. 어차피 내 눈앞에 있는 녀석이 최고니까. 세상의 고양이가 모두 사랑스러워도, 내 고양이가 가장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사진 출처 : 책 표지, 187p, 23p, 29p, 72p, 95p, 100p, 107p, 145p, 147p, 170~171p, 175p, 210p, 246~24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