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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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고베 대지진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본의 수도 도쿄의 지하철역에서 사린 가스 살포사건이 발생했다. 12명 사망, 5,000 여명의 중경상자들이 발생한 그 사건이 일어난 날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일요일과 춘분 사이에 낀 월요일 아침. 출근객들로 붐비는 지하철안에서 옴진리교 신자 5명이 비닐봉지에 넣은 사린을 터뜨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 오늘 하루쯤은 쉬어도 되지만 일을 하러 나섰던 사람들. 그들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지요다 선, 마루노우치 선(오키쿠보 행), 마루노우치 선(이케부쿠로 행), 히비야선(나카메구로 발), 히비야 선(기타센주 발, 나카메구로 행) 열차에서 사린 중독으로 중경상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다. 총 62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1년에 걸쳐 인터뷰를 실시했다. 인터뷰 내용은 각 인터뷰이들의 간략한 삶과 그들의 인품에 대해 설명한 뒤, 그들이 이야기해 준 그날 벌어진 일들을 수록하고 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날 쉬어도 되었지만 출근을 한 경우가 많았고, 우연찮게 안개같은 외부적인 요소때문에, 혹은 조금 늦어져서 그 지하철을 타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습관의 동물인지라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같은 시각에 오는 같은 번호를 단 지하철을 탄다. 또한 타는 차량 역시 환승이 쉽거나 출구가 가까운 쪽, 그러니까 그들이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곳에 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평소의 그런 습관때문에 이 끔찍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이른 봄날 아침. 그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일정을 시작했지만, 그날만은 무언가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감지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사린 냄새를 불쾌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만약 그것이 불쾌한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람들은 그곳을 피했을 것이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다른 차량을 이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끈적이는 액체, 그리고 약간은 달큰한 냄새가 났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것이 차량내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후에는 눈앞이 흐릿해지며 잘 안보이게 되는 시야협착, 오한과 구토 증상 등이 나타났다. 

만약 불이라든지 폭탄이었다면 사람들은 금세 눈치를 챘겠지만, 사린이 공기와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가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불쾌감을 느끼다가 갑작스러운 증세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실 그많은 유동인구가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 12명의 사망자라면 그다지 많은 수가 아니잖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린에 중독된 사람들의 후유증은 길고 오래 갔다. 시야협착 증상은 점점 좋아졌지만, 중독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의 소실, 건망증, 악몽, 두통과 더불어 쉽게 피로해짐을 느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상처나 흉터가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에 대한 배려를 잊었다고 했다. 여전히 중독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외견상 아무 이상도 없어 보이니 그 일을 직접 겪지 않은 주변인들로서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개중에는 그런 이유로 직장을 그만 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들이 기억하는 그날의 광경은 각 역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침하는 사람들이 늘고, 사람들이 갑자기 쓰러지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간질이나 발작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사실 아침에 사람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데 그것이 독가스라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다 보니 대응이 늦어지게 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무원들은 직접 사린이 든 비닐 봉지를 치웠고, 접촉 시간이 길어져 사망에 까지 이르렀다. 또한 사린 봉지가 터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있거나 서있던 사람들도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히비야 선의 고덴마초 역에서는 총 세개의 사린 봉지가 터뜨려졌고, 그중 하나를 승객이 발로 차내 역내 플랫폼에 떨어짐으로 인해 가장 많은 사상사자 나왔다. 고덴마초 역에서 총 네 대의 차량이 멈춰섰고, 그래서 피해자가 더욱더 많아진 것이다. 사린 중독은 맑은 공기를 빨리 마셔야 그 피해가 덜하지만 사린 중독인지도 모르고, 그저 지하철 역 바닥에 눕히고 손수건을 물려주고 팔다리를 주물러주며 그 사람이 깨어나길 바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냥 지나가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다행한 일이지만, 그들 역시 중증 중독 현상을 보였다.

경증 중독인 사람들은 감기인가 하는 생각으로 회사에 갔고, 옷이나 머리카락에 묻은 사린때문에 2차 피해자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감기때문에 쉬는 회사원들은 거의 없다. 특히 일본처럼 회사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경우에라도 회사에 가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초동대응이 늦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달까. 구급차는 오지도 않고, 경찰도 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이렇게 진술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차를 세우거나 차를 타고 가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을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병원측에서는 아직 사린 가스에 대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늑장 대응을 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희생자 수가 더 줄지도 몰랐을텐데. 사린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마쓰모토 사린 사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더 큰 희생을 냈다.

인터뷰이들의 옴진리교와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생각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들에게 사린을 뒤집어 씌워야 한다고 하는 주장을 할 만큼 분노했고, 재판도 소용없다 바로 사형시켜라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들의 종교에 대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에 대해 분노하지만, 희생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아사하라 쇼코, 본명 마쓰모토 치즈오. 그는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언더그라운드는 그날 있었던 사건에 대해 실행범과 운전수의 행동을 간략하게 언급할 뿐 더이상의 언급은 없다. 희생자들의 인터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였든 그들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건으로부터 15년이 흘렀다. 피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중독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지 않을까. 후유증이 없어졌다 해도 그들이 겪었던 그 끔찍하고 참혹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그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무차별 범죄의 대상이 되었던 그들의 앞날이 평안하기만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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