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차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망으로 일제 시대가 끝난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가 분단되고, 1948년 남한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 발발. 그로부터 6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남한은 60여년이란 시간을 지나며 놀라울 정도의 경제 성장을 보였다. 정치적으로도 혼란에 혼란에 거듭을 했지만, 경제성장만큼은 꾸준했다. 미국의 종복으로 줏대없는 정부를 꾸렸던 이승만 정부를 시작으로 군사 쿠데타로 박통의 유신정권이 오랫동안 이 나라를 지배했고, 그다음엔 전두환의 군부독재가 이어졌다. 1987넌 6월 항쟁으로 군부독재가 그 종말을 고하고,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후 문민정부 시대를 거쳐,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 정부 기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거쳤으나 이상하게도 경제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성장의 기간이 과연 빛나기만 할까.

『허수아비춤』은 일광그룹이라는 한 재벌 그룹을 내세워 한 기업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명 '문화개척센터'라는 그룹내 조직을 만들어 어마어마한 비자금을 축적해 공무원, 검찰, 언론, 대학 등 사회 곳곳을 매수해 나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광그룹의 남회장을 필두로 하여 윤성훈, 박재우, 강기준 세명이 차근차근 사회 곳곳의 어두운 부분을 교묘하게 파고 들어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넣어 가는 모습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사실 삼성 사건도 있고 해서 우리는 대강 대기업들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주 구체적으로 그러한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보여 준다. 특히 태봉그룹이란 곳에서 스카웃되어 온 박재우의 귀신같은 로비 작전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어떤 기관이냐, 어떤 사람이냐, 어떤 조직이냐에 따라 각각 다른 접근 방식을 세우고, 그들을 포섭해 나가는 과정은 악인이지만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윤성훈이나 강기준 역시 그에 못지 않은 활약을 한다. 속으로는 서로를 라이벌로 여기고, 언제가는 위치를 역전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협력을 하는 세사람을 보면서 참 재미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포섭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이다. 돈의 힘. 귀신도 부리고, 처녀 불알도 사고, 의붓자식도 효도하게 만든다는 돈의 힘. 돈의 힘앞에 굴복하지 않는 인물은 거의 없다. 아니 여기에 등장하는 각 조직의 윗대가리들 중에 돈의 힘앞에 굴복하지 않는 인물은 아예 없다. 사실 돈이란 건 가난한 자에게만 유효한 수단이 아니다. 못가진 자에게도 가진 자에게도 돈은 유효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도덕이고 양심이고, 법이고, 언론이고, 정치권력도 돈앞에서는 추풍낙엽일 뿐이다. 또한 돈은 경제적인 힘만 가지는 건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누리게 하는 것이 바로 돈의 힘이다. 포섭이 안되면 협박이란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돈의 힘이다. 

이런 돈 맛을 알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윤성훈, 박재우, 강기준은 이미 돈 맛을 알아버린 자들이다. 이들의 '문화개척센터' 활동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남회장은 그들에게 스톡옵션을 몇 십억씩 약속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재벌 그룹의 핏줄은 로열 패밀리, 그들 밑에 있는 자신들은 골든 패밀리라 스스로를 치켜세우던 그들은 포상 휴가로 홍콩, 마카오로 가 쇼핑을 하고 도박을 즐긴다. 평균 2,500만원의 돈을 하룻밤 도박으로 날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그들. 사실 그돈은 누군가의 일년 수입보다 많을 수도 있다. 이들이 피땀을 흘려 이 돈을 벌었다면 이렇게 쉽게 도박으로 날리고, 명품 시계 쇼핑을 하면서 희희낙락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굴러간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면 그때문에 고통받고 피눈물 흘린 사람들이 꼭 생겨난다. 소수의 사람들을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짓밟히게 되는 것이다. 눈부신 성장뒤에 가려진 어둠, 극단의 이윤 추구에서 빚어지는 재분배의 불균형, 돈으로 뭐든 해결하려는 천민자본주의, 이 책은 한 기업의 어두운 뒷면을 파헤치며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나라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난 우리나라는 여전히 정치도 민주화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치와 경제는 나라의 중심이 되는 두 축이다. 정치가 민주화가 되면 자연스레 경제도 민주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6월항쟁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켜 정치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그건 극히 표면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는다. 노태우는 옷만 군복에서 양복으로 갈아 입었으며, 문민정부때는 온갖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외환위기로 인해 IMF사태라는 대한민국 경제가 완전히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실업률은 여전히 그대로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는 갈수록 늘고, 20대는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이니 뭐니 하면서 일을 벌이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는 완벽히 반세기전으로 돌아갔다. 뉴스를 보면 여전히 이런 저런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큰 사건 하나 터뜨려 놓고 뉴스에서 그걸 다루는 동안 뒤로는 교묘한 정치공작을 편다. 도대체 뭐가 정치가 민주화가 되었단 말인가. 민주주의 국가란 이름을 달고 있다고만 해서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러니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질리 없지.

책을 읽으면서 몹시 불편했던 부분은 또 있다. 그건 허 교수의 칼럼인데, 미국 재벌 그룹에 관한 부분이 그랬다. 우리나라 재벌에 대한 비판의 의도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왠지 뒷맛이 씁쓸하다. 미국도 탈탈 털어보면 역시 우리나라 재벌 그룹같이 썩어빠진 그룹도 많을텐데. 아, 물론 이 글이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재벌 1, 2위 그룹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란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는 있다. 그래도 미국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건 내가 지금 가장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이다.

한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재벌 그룹의 이면에 감춰진 치부와 더불어 세 남자의 권력과 돈에 대한 욕망의 이야기를 그린『허수아비춤』의 결말부를 보면 푸흡하고 웃음이 터진다. 결국 돈맛을 알고 돈을 보고 춤을 추던 자는 돈의 흐름에 따라 춤을 추는 상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사실 현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뿐, 실질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정치와 경제의 웃선에서 일하는 자들이 가장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해결될 일일테니까. 여기에서도 전직 검사나 허 교수를 비롯해 사회단체들이 작은 움직임을 보이긴 하지만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 바쁜데, 이런 일에 뛰어들 만한 용기를 가진 자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왠지 가슴 한 구석이 허하다.

이 책을 읽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보자면,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는 뇌가 필요했지만, 우리의 허수아비들에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심장이 필요하다, 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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