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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2 ㅣ 세계문학의 숲 2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안인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자신의 애인이었던 여자를 때려 숨지게 한 프란츠 비버코프는 4년간의 수감 생활을 끝내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그는 착실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 신문팔이, 신발끈 장사 등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하던 그였지만, 어느 순간 마음을 바꿔 먹고 장물아비들의 일을 돕게 된다. 하지만 프란츠는 장물아비 일당인 라인홀트때문에 팔 하나를 잃고 거의 죽다가 살아 나게 된다. 그후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듯 살던 프란츠는 다시 희망을 얻게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란츠는 그 사고 이후 잠시 퇴보하는 듯한 면을 보인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라인홀트에 대해서도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것이다. 우울한 상태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는 나라가 돌아가는 상황 - 정치같은 것- 에도 관심을 조금 보이기도 한다. 그런 프란츠는 착실한 삶으로서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젠 그런 착실한 삶을 버리고자 한다.
나도 그런 일을 해야 해, 엠미. 저기 저 사람들같이. 그게 유일한 진실이야. 절대로 노동을 해선 안 되지. 노동이란 걸 머리에서 지워버려. 노동을 했다간 손에 못이나 박이지, 돈은 못 얻어. 고작해야 머리에 구멍이나 뚫리는 거지. 노동으로는 그 누구도 부자가 될 수 없어. 오직 속임수를 써야 해. 알았지. (26p)
1차 세계대전 이후 무너진 경제가 인플레이션으로 공황 상태까지 이르렀다가 겨우 안정을 찾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삶은 힘겹다. 공산주의자, 나치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내놓으면서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프란츠 역시 자신이 이제껏 해오던 일로는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아예 장물아비 일당과 함께 일하고자 - 범죄전선에 뛰어들기로 - 하는 것이다. 이런 프란츠에게 에바는 좋은 여자인 소냐를 소개시켜준다. 소냐는 여리고 작은 몸집의 창녀이지만 프란츠에게 온 정성을 다한다. 결국 프란츠는 기둥서방으로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소냐의 사랑은 분명 프란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행복은 늘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 프란츠에겐 행복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불운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기 때문이다.
프란츠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라인홀트에게 소냐의 이야기를 꺼낸다. 비록 외팔이에 기둥서방으로 살고 있어도 자신은 건재하단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남자의 심리였달까. 하지만 그것이 또다른 비극을 불러오게 될 줄이야. 라인홀트는 소냐가 갖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고, 결국 라인홀트는 소냐를 죽여버리게 된다. 소냐가 행방불명된 이후, 프란츠는 급속도로 무너지게 된다. 게다가 라인홀트가 자신의 꼬리가 밟히게 되자 소냐 사건에 프란츠 역시 개입되어 있다는 소문을 흘린다. 프란츠는 여자를 때려서 죽인 전과가 있다. 당연히 경찰 입장에서는 프란츠를 용의자로 올리게 된다. 결국 프란츠는 경찰에 잡혀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소냐의 죽음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또한 소냐가 그렇게 된 것은 자신의 잘못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삶의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던 프란츠. 그에게 더이상 희망은 없는 것일까.
2권은 프란츠의 또다른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1권은 프란츠가 감옥에서 나와 착실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2권은 기둥서방으로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 프란츠의 모습을 보여 준다. 프란츠는 소냐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결국 자신의 과오로 소냐를 죽게 만들고 삶의 모든 의욕마저 잃어버린다. 그렇게 정신이 혼미할 때, 프란츠의 영혼은 묘지로 가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이 죽인 이다와 재회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확실히 1권과는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은 다소 현실적인 것과 동떨어진 느낌을 들어도 이야기 자체는 굳건히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던 1권과 비교해 본다면 2권은 어떤 의미에서는 판타지 성향도 약간은 보여준다고 한달까. 이러한 것은 프란츠가 경찰의 수배망을 피해 도망칠 때 참새들이 나누는 이야기나 프란츠 곁에 있는 두 천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다소 의외의 설정이지만, 이러한 것도 이 소설의 실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 신문 기사, 당시의 유행가 가사, 책이나 희곡 인용문을 사용하여 등장 인물들의 심리와 현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든지 마치 영화의 장면 전개같은 서술 형식 등은 다분히 실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화자가 분명히 드러내지는 않아 가끔은 난해하게도 느껴지지만, 순간순간 정확하게 독자를 소설의 한가운데로 몰아 넣는 능력은 알프레드 되블린의 작가적 역량이 아닌가 싶다. 소설의 문장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1928년의 베를린 거리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한국소설을 읽다 보면 이 소설이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감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문장의 형태 자체에만 신경쓰지 말고, 차분히 내용을 중심으로 따라가다 보면 또다른 독일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