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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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목숨을 걸어 본 일이 있는가. 난 이제껏 서른 몇 해를 살아오면서 몇 번의 사랑과 몇 번의 이별을 거쳤지만, 목숨을 걸고 사랑해 본 일은 없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은채 갑작스레 다가온 이별때문에 가슴이 찢어지고, 죽을만치 아파본 적은 있어도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어본 적은 없다. 아니 그 비슷한 일을 해 본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마치 목숨이라도 걸듯 사랑을 하는 사람을 보면 조금 부러워지기도 했고, 때로는 바보같다고 욕하기도 했다. 

3권을 읽으면서 난 복잡미묘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1, 2권을 읽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이들의 엇갈린 인연과 절대로 만나지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리틀 피플과 종교 단체 선구 등의 미스터리적인 요소에 더욱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책의 주인공인 덴고와 아오마메보다는 조연격인 후카에리, 노부인, 다마루같은 캐릭터에 더욱 매료되었다.

2권의 마지막 부분은 아오마메의 자살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난 아오마메가 덴고 앞에 공기번데기 모습으로 나타난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3권은 그런 가설을 가법게 부정해버렸다. 아마도 2권으로 완결되었다면, 아오마메의 희생이란 것으로 끝나버렸을 테지만, 3권이 나옴으로해서 이들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오마메에게 암살당한 선구의 지도자는 아오마메에게 의미심장한 몇 마디를 남겼다. 1Q84의 세상에서는 덴고와 아오마메는 절대로 만나지 못할 것이며, 덴고를 살리기 위해서 아오마메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두 부정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선구의 유언이나 다름없는 그 말은 어쩌면 덴고와 아오마메의 사랑과 인연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였고, 나머지 하나는 후카에리가 이 둘 사이에 개입함으로서 1Q84의 시공간속에서 그렇게 예정되어 있던 운명에 틈을 만들고 비틀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 정도 앞뒤가 맞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아오마메와 덴고는 초등학교 시절 3, 4학년동안 한 반이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후에는 어떤 만남도 없었다. 그들에게 남겨진 건 어느 날 방과후 맞잡은 두 손의 온기에 대한 추억 뿐. 종교단체에 소속된 집안 분위기때문에 외로웠던 아오마메와 NHK수금원으로 일하던 아버지에 끌려 다니던 덴고의 외로움의 파장이 맞았던 단 한 순간. 그 순간이 그후에도 두 사람의 인연을 이어주는 작디 작은 인연의 끈이 되었다. 

하지만 20년이란 세월은 절대로 짧지 않다. 이제 서른이 된 두 사람에게 20년이란 시간은 인생의 2/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두 사람은 그동안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 왔다. 뭉근한 그리움이란 추억이 남겨진 그날의 기억과 함께. 난 이 기억이 이 두 사람에게 있어 그토록 지배적인 기억이란 것에 대해 처음엔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주는 온기의 따스함을 몰랐던 두 아이가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온기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 기억이 무의식중에도 깊게 그들의 삶에 작용했을 거란 납득이 가게 되는 것이다. 단 한번의 온기를 전했을 뿐이지만, 그것이 그토록 긴 시간을 통과해 그들을 연결하게 되는 하나의 선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인연이 아니고 무어겠는가. 

3권에서는 아오마메의 변화가 가장 크게 눈에 보인다. 자살을 결심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않고, 덴고를 만날 날만을 기다려온 아오마메. 이제까지의 그녀는 더이상 없었다. 스스로를 위험속에 방치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리고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그녀를 보면서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덴고는 뭘 한 게 있나 싶을 정도다. 그저 그녀의 공기번데기가 나타났던 곳에서 공기번데기를 기다리는 일만을 할 뿐. 그런 덴고가 답답했다. 아마도 아다치 간호사의 말이 없었다면 그가 앞으로 한 발 내디딜 수나 있었을까. 아오마메는 자신의 사랑과 인연을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 자신이 처한 상황내에서 최대한 - 대처했고, 그에 반해 덴고는 피동적이고 수동적으로 대처했다. 

이들은 서로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서도 직접 찾아볼 생각을 왜 하지 않았지? 흥신소 사람이라도 고용해 봤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재회의 시간까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이들을 그리 쉬 그들을 만나게 할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만약 진짜로 만나게 되었을 때 실망하게 될까 봐서 일지도 모른다. 원래 추억이란 것은, 기억이란 것은 그것을 담고 있는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아름답게 포장되고 부풀려지게 마련이니까.    

어쨌거나, 그들은 재회에 성공했다. 그리고 달이 두 개인 1Q84의 세계에서 달이 하나인 세계로 건너가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곳이 1984의 세계인지 아니면 다른 세계인지는 둘 다 모른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1Q84의 세계에서 탈출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음이 되어 다른 건 상관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앞으로 행복해질까? 지금까지 이 두사람을 지배해 왔던 만나고 싶다는 소망은 충족되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지켜온 마음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이외에도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리틀 피플이 왜 죽은 우시카와의 입에서 나와 또다른 공기번데기를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노부인에게서 나온 리틀 피플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덴고와 아오마메 두 사람이 1Q84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감으로 인해 이것들은 더이상 이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리틀피플은 1Q84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니까. 더이상 덴고와 아오마메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이들이 건너온 세계에 다른 위협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지?  

여.전.히.이.야.기.는.끝.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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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3권 사서 읽는 거 자꾸 미루고 이었는데..
이제 슬슬 읽어야 될까요.
너무 1Q84만 잘 팔리는 것 같아서 어차피 다른 사람이 사서 읽겠지, 그럼 난 나중에 베스트셀러에서 내리면 3권 사서 읽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궁금하네요. 1,2권은 읽은지 오래되서 가물가물, 책장에 꽂혀있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3권도 읽게 될까봐 주저하게 되네요. 리뷰 읽으니 더 읽고 싶어졌어요. :)

스즈야 2010-12-18 22:01   좋아요 0 | URL
저도 3권 사놓고 한참만에 읽었어요. 역시 좋더라구요. ㅎㅎㅎ 저도 1년도 넘게 지나서 읽으려니 1, 2권 내용이 가물가물 하긴 했는데, 그래도 금세 기억나더라구요.

집요정 2010-12-26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셨나 보네요. 저도 최근에 모두 읽었네요^^
정말 의문이 남는 결말이었어요. 사실 리틀피플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장 궁금했는데
상징적인 기법을 제가 풀어내지 못한 것인지...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따온듯한 제목과 1984년이란 시공간은 1Q84는 그 이전 시대에 꿈꿔왔던 사회주의, 또는 집단주의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하루키식의 다른 세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사실 전 좀 지루한 느낌이었어요. 한권 정도 분량이면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구요. ㅋㅋ

스즈야 2010-12-26 12:21   좋아요 0 | URL
전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 0순위거든요. 근데 이번엔 좀 늦게 읽었어요. 작년에 읽었던 1, 2권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좀 있었거든요. 그치만 3권을 읽으니 그 걱정 괜히 했나 싶더라구요. ㅎㅎㅎ

그쵸. 리틀 피플이 정말 뭔지 잘 모르겠다는.
아마도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위치한 어떤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는 강압적인 외부자적 존재자 빅 브라더였다면 하루키의 리틀 피플은 내부자적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죠.

전 혹시 4권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사실 덴고와 아오마메가 다시 나간 세상이 또다른 1Q84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