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1 세계문학의 숲 1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안인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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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인간의 탄생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다. 신이 그렇게 정해 놓았든 자연의 섭리에 따라 태어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부모의 보살핌으로 자라고, 그후에 세상이 자신에게 어떤 것인지를 조금씩 깨달아 가면서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든 역행하든 하면서 살아 간다. 대개의 사람들은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쨌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채 열심히 바르작대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모두 크든 작든 시련을 거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개중에는 세상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프란츠 비버코프란 한 남자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독일 베를린. 그는 4년형의 징역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의 죄목은 상해치사였다. 4년동안 종소리에 맞춰 규칙적인 생활을 해오던 그는 세상밖으로 나왔을 때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고작 4년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자면 감옥에서의 4년은 40년과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쩔줄 몰라하던 프란츠는 무작정 돌아다니다가 어느 집의 마당에서 앞으로는 제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했으니...

프란츠 비버코프란 남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다지 모범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감옥에 다녀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성격이 급한 편이고, 여자를 좀 우습게 보는 경향도 있다. 또한 상황이 상황인만큼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물론 반사회적인 일은 하지 않으려 마음먹긴 하지만, 감옥까지 갔다온 그에게 사회가 친절할리는 없었다. 그가 가장 처음으로 맞딱뜨린 사회의 싸늘함은 그가 범죄자란 이유로 추방 가능성이 있는 도시에 관한 전언이었다. 수많은 도시들은 그를 허락하려 들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베를린에서 일을 했던 프란츠가 감옥에서 석방된 후 돌아간 베를린은 그에게 냉담했다. 하지만 요즘의 보호관찰 시스템과 비슷한 것을 통해 그는 베를린에 재정착할 수 있게 된다. 

원래는 고급 가구 운반같은 일을 했던 프란츠는 이제 신발끈을 팔거나 나치주의자들의 신문을 팔기도 한다. 당시의 독일은 아직 나치주의자들과 공산당원들이 공존하고 있었던 시기로, 이전에 프란츠를 알던 사람들은 나치주의자들의 신문을 파는 프란츠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란츠 입장에서는 당장 입에 풀칠할 일도 막막한 판에 나치신문을 팔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지금의 프란츠에게 혁명같은 이상보다는 당장의 삶이 더 현실적인 문제였을테니까.

혁명이라고? 깃대를 해체하고 깃발을 방수포 봉투 안에 챙겨서 옷 궤짝에 집어넣어라. 여자들한테 실내화를 갖다 달리하고 새빨간 넥타이를 매라. 니들은 만날 혁명을 주둥이로 하지, 니들 공화국은             작업 사고다! (135p)

프란츠는 처음의 적대적인 도시의 분위기를 극복하고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외로 세상은 만만하지가 않았다. 당시에 함께 지내던 여자의 삼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과일 장사'라는 것의 이면에 감춰진 어둠을 모른채 경비를 서는 일을 맡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기도 한다. 바르게 살자, 착실하게 살자, 라고 맹세를 했건만, 그에게 있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물론 그의 곁을 굳건히 지켜줄 친구와 여자가 있긴 했지만, 그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을 안겨준 사람이 더 많았다. 그의 앞에는 희망과 절망, 어떤 것이 대기하고 있을까. 

 이 책은 프란츠 비버코프란 남자의 삶을 그리면서 당시 베를린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후의 인플레이션과 공산주의자와 나치주의자의 대립, 유대인에 대한 압박같은 정치적인 것에 대한 묘사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 신문 기사, 책 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를 비롯해 희곡이나 성경같은 곳에서 따온 인용문도 상당히 많은데, 이는 프란츠 비버코프의 상황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문장을 읽어내려가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난해함을 많이 느꼈으나 큰 줄거리를 잡고 나서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서술문이 대화문같다거나 전체적으로 서사시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그것도 익숙해지니 재미있게 읽혔달까.

암담하고 암울한 시절의 베를린.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인물이었고 때로는 편법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자 한 프란츠 비버코프.
그는 그의 앞에 가까이 다가온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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