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여우 초승달문고 22
김옥 지음, 김병호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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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다. 연년생인데, 실제로는 20개월 가까이 차이가 나서 2살 차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자매나 형제, 남매가 있는 집은 모두들 그렇듯이 나도 어린 시절엔 동생이랑 참 많이 싸웠다. 게다가 연년생이다 보니 난 동생에게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언니란 소리는 제대로 들어 보지도 못했다. 또한 늘 맏이보다는 바로 밑의 동생이 더 영악한 면이 있기에 내 동생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내 책을 읽고, 내 받아쓰기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동생과 나, 둘 뿐이라 늘 복작대고 싸우기도 했고, 사이좋게 노는 일도 많았지만 아주 어릴적에는 나와 동생은 한동안 떨어져 지내야했다. 동생을 낳은 후 엄마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난 외갓집에 잠시 맡겨졌었고, 그후엔 내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또 내 동생과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그러니 내가 동생과 마음껏 싸우고 놀고 했던 것은 결국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나서였다.

지금은 둘 다 삼십대의 나이가 되다 보니 싸울 일도 없지만, 만날 기회는 더 없다. 나는 지방에 동생은 서울에 살기 때문이다. 그치만 원체 둘 다 무뚝뚝한 성격이라 일년에 두어번 정도 만나도 데면데면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솥밥을 먹고 자란 가족이라 그런지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불편하기는 커녕,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내 동생, 여우』라는 제목을 보니 어린 시절의 내동생이 떠올랐달까. 언니보다 더 영악한 둘째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 가슴은 무언가 묵직한 것으로 답답해져 오기 시작했다.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는 위화감이랄까. 책의 결말부로 넘어가면서 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먹먹한 슬픔에 가슴이 저려왔다.

연오와 연이는 연년생의 남매이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숲에서 동물을 사냥해서 그걸로 집안 생계를 꾸려갔지만 작년부터 그 일을 그만두고 약초나 산나물을 캐는 것으로 돈을 벌었다. 연오네는 이제 시골에서의 삶을 접고 도시로 이사를 갈 계획이다. 오늘은 연오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는 날. 동생 연이는 오빠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연오와 함께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을 잘 보낸다. 방과후, 아버지가 데리러 온다고 했지만 연이는 그새를 못참고 밖으로 나가서 놀잔다. 연오는 사랑하는 동생 연이가 자꾸 졸라서 결국 밖으로 나가긴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그런 연이가 걸어서 집으로 가자면서 연오를 끌고 숲으로 들어가는데....

이 책은 사이좋은 오누이의 가슴 아픈 사연과 사람과 자연이라는 이야기를 동시에 담고 있다. 자신이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가진 연오 앞에 나타난 연이는 작년 이맘때의 기억속으로 연오를 데려간다. 연이가 동생이지만 오빠인 연오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고나 할까. 연오의 부모님은 연이가 당한 사고의 아픔이 연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길 바라면서 도시로의 이사를 준비했지만, 슬픔이란 것은 잊는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죄책감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연이는 연오앞에 나타남으로서 연오의 죄책감과 슬픔을 한번에 덜어 주었다. 그리고 예쁜 기억으로 연이를 기억함으로서 연오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연오의 아빠는 산에 사는 동물들을 사냥해 그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저 연이나 연오를 위해 맛있는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사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이가 그런 사고를 당한 이후, 연오의 아빠는 사냥을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도시로 떠나는 날 아침, 올무에 걸린 하얀 여우를 구출해 풀어주게 된다. 자신의 딸인 연이가 그렇게 나타났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빠가 여우를 풀어준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또한 한편으로는 자신이 잡았던 동물들때문에 자신의 딸이 그런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연이가 영원한 잠을 자게 된 장소인 자연을 더이상 해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아빠의 이유가 어찌되었든, 아빠의 이야기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연년생 남매의 귀엽고 풋풋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내 동생, 여우』는 작년 이맘때 남매 사이에 있었던 아픈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적지 않은 아픔과 슬픔을 남긴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언제까지나 오빠 마음속에서 살 거야. 오빠가 나를 잊지 않는다면 말이야."
연오도 가만히 중얼거렸어요.
"나는 죽을 때까지 너 잊지 않을 거야. 절대로 잊지 않을거야."
(66p)

사람들은 죄책감을 덜기 위해, 미안함을 덜기 위해, 아픔과 슬픔을 덜기 위해 애써 누군가를, 무언가를 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잊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할 아픔과 슬픔도 있는 것이며, 그 아픔과 슬픔을 진정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것들의 극복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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