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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행복하다거나 혹은 지금을 살고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특별히 감수성이 풍부해서 반짝이는 햇살, 졸졸 흐르는 시냇물, 뺨을 간지르며 지나가는 바람에 난 행복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특별한 순간에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대학에 합격한 순간, 결혼을 하는 순간, 첫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같은. 일생에 거의 한 번 정도만 허락되는 순간이 진정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닥쳐온 불행한 일을 보면서, 나는 저런 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 사람에 비하면 난 행복한 사람이고 말고, 이런 생각은 하고 있지 않은가. 좀 비겁할지는 몰라도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
또다르게 나의 행복을 돌아 보는 시간으로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이 평범한 날들을 이어가며 얻어가는 행복을 보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평범한 행복과 평범한 순간이 가지는 가치들을 보면서 나의 상황을 돌아 보고 미소짓게 되는 것, 그 또한 나의 행복을 반추하는 시간이 아닐까.
이 책은 미국 메인주의 작은 마을인 크로스비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평범한 나날들을 그리고 있다. 때로는 어렵고 힘든 순간에 부닥치기도 하지만, 소소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때로 우리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곤 하지만, 그런 책을 읽고 나면 왠지 동경과 질투만이 남는달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왠지 나도 행복한 사람, 평범함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주인공인 올리브 키터리지는 학교 수학 선생님이다. 보통 여성들과는 다르게 큰 덩치에 괄괄한 성격, 따지고 들자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아 보일 것 같은 여성이다. 그녀의 가족으로는 약국을 경영하는 남편 헨리와 아들 크리스가 있다. 헨리는 조용하고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로 오랫동안 약국을 경영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지만 결국 사망하고 만다. 크리스는 사춘기때에는 반항기로 똘똘 뭉쳐있었고, 어른이 되면서는 집안과 거의 연락두절 상태에서 살다 첫결혼에 실패, 두번째 결혼에서는 아이 둘 딸린 이혼녀와 결혼했다.
올리브의 인생을 이렇게 압축해 놓고 살펴 보니 우리네 이웃의 삶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세상에 똑같은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올리브 역시 조목조목 따져보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올리브가 중심이 되어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올리브의 성격과 가치관, 살아가는 방식을 볼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올리브의 모습을 보면서 또다른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녀의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때, 지금 내 앞에 올리브가 나타난다면 난 그녀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무뚝뚝하고 괄괄한 성격에 맞붙어 싸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거의 두배나 차이나는 나이차를 생각하면 노인네가 그렇지 뭐, 하고 그냥 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올리브의 이런 저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 여기에서는 읽었다는 표현이 정확하지만 - 올리브는 나름대로 꽤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거칠고 투박한 표현속에 다정함이 감춰져 있다고 할까. 솔직한 성격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보인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이 책은 올리브 키터리지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올리브 이외의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두 우리 이웃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올리브의 남편 헨리의 약국에서 일하던 데니즈는 사고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고, 무대공포증이 있는 엔절라 오미라에겐 감춰진 비밀이 있다. 과부로 사는 데이지는 하먼과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라킨 부부는 범죄를 저지른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숨어 살고 있다. 밥과 제인 훌턴 부부는 함께 늙어가면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음미하면서 살고 있지만, 말린 보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이 사망했다. 줄리는 결혼식 직전에 파혼당했지만, 다시 찾아온 약혼자의 뒤를 쫓아 가출을 감행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사랑, 이별, 아픔, 절망, 행복 등 사람의 인생에서 찾아오는 갖가지 이야기를 다 담고 있다. 누군가의 결혼식이 있다면 누군가의 장례식이 있듯이 말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도 평범하게만 보여도 매순간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 순간에는 너무나도 평범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뭉근한 그리움이 생기는 순간들이 있다고. 또한 자신의 삶이 불운하고 불행한 것같아서 때때로 나보다 더 큰 불행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려 하지만, 늘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특히 올리브가 교도소에 갇힌 아들을 둔 라킨 부부를 찾아 갔을 때나, 젋은 나이에 과부가 된 말린 보니를 찾아가 그들의 슬픔이나 아픔을 들여다 보려 했지만, 의외로 그들이 그렇게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때, 올리브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부분을 읽다 보니, 문득 자신이 가진 절망과 슬픔의 무게는 스스로 덜어내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의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것은 자신의 삶의 반짝이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젋은 시절의 올리브 이야기에서부터 노인이 된 올리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올리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나도 앞으로는 내 평범한 삶을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마음속에 그걸 염두에 두고 살아야지, 라고 말한다면 내 입장에서 그건 지나친 과장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난 그정도로 마음이 넓은 사람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도 아니기에. 또한 책을 읽을 때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삶의 고단함에 지치면 금세 이런 것을 잊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이틀 동안 마음속으로 따스함이 밀려들었다고. 이들의 각기 다른 삶을 보면서 미소짓기도 하고, 조금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