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8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행운은 수줍음이 많아서 자주 오지 않을 뿐더러 왔다가도 금방 휑하니 사라져 버린다. 그에 반해 불운은 친구가 많은지 한번에 여럿이 와서 오랫동안 머물다 간다. 사람들은 모두 행운이 가득한 삶을 바라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는 행운과 불운의 이런 차이점 때문일까?
아이자와 마코토는 이렇게 말하면 좀 안쓰럽지만 불운을 몰고 다니는 여자이다. 다니던 회사는 도산하고, 투숙한 호텔은 불이나 사상자가 나오고, 사이비 카운슬러에게서는 이상한 소리나 듣는다. 그런 그녀가 하자키 해변에서 파도를 향해 "나쁜 놈아"라고 외쳤더니 이번엔 시체가 떠내려왔다. 설마 바다가 앙갚음을 할 줄이야!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 있다더니 마코토가 그런 사람이 아닐까.
이런 불운의 연속끝에 행운이 찾아 왔다. 하자키시에 있는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장인 할머니가 한달 동안만 헌책방을 봐달라고 한 것이다. 집도 절도 없던 처지에 숙박제공의 아르바이트라니, 게다가 급료도 꽤 많다. 아이자와 마코토에게 있어 이것은 불행의 끝, 행복의 시작일까? 하지만 할머니가 검사차 입원을 한 날 밤, 가게에 도둑이 든다. 헉! 그녀의 불운은 정녕 끝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게다가 그후에는 마에다가의 마치코마저 어제일리어에서 사체로 발견되는데... 그걸로 끝……인줄 알았는데, 이번엔 누군가 마코토를 죽이려 든다. 아, 정녕 마코토에게 해뜰 날은 없는 겁니까?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더니, 마코토의 삶에 볕이 드는 날이 정녕 오기는 합니까?
마코토에게 이런 불행이 연속되는 걸 보고 있자니, 내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현실같지 않아서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거참,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러면 안돼지, 라고 할 사람있으면 나와보시오. 읽으면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니까. 이게 바로 와카타케 나나미의 소설의 포인트랄까.
익사체의 정체, 그리고 어제일리어에서 발견된 사체, 마코토 살인 미수 사건 등에 관한 수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템포로 진행된다. 재미있는 것은 마에다家가 이 지역의 오래된 명문가에다가 지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경찰 서장은 스스로 몸을 사린다는 것이다. 에휴, 어딜가나 이런 사람 꼭 있지 싶다. 답답하긴 해도 이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서장과는 달리 오래전 사건과 요번에 일어난 사건들을 연결지어 수사하려는 고마지가 있으니 염려는 덜어둬도 되지 않을까. 물론 그의 부하 이쓰키하라가 좀 어리바리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수사를 하니 이 콤비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중 단연코 1위의 인물은 헌책방 할머니인 베니코다. 칠순의 나이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하는 로맨스 소설 마니아. 시원시원한 성격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가족사와 관련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 마음이 안쓰러웠달까. 또한 시노부란 캐릭터도 아주 흥미롭다.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코지 미스터리가 잔혹동화로 바뀌는 느낌이었달까. (이건 마지막 문자을 읽으면 공감할 수 있을 듯)
사건 수사는 경찰이 하지만 코지 미스터리답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이 사건을 해결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을 그 여성이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경찰의 체면을 세우는 건 역시 경찰이랄까. 오랫동안 하자키에서 살아온 고마지의 시야가 더 넓기 때문일까.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핵심을 잡아내는 것은 바로 고마지의 역할이다.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만들어낸 씁쓸한 사건의 전모. 하긴 끔찍한 사건뒤에는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일상 미스터리 하자키 시리즈 시리즈 1편인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은 신축 빌라 단지에서 발생한 수수께끼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2편인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는 하자키시의 명문가인 마에다家와 관련한 이야기이다. 얼핏 보기엔 시리즈로서의 연관성이 있을까 싶어도 두 작품 다 폐쇄된 집단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일 것이다. 신축된 빌라는 기존 주민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높은 담과 안전요원을 두고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 각각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마에다家라는 명문가는 오래된 집안답게 그 집안 특유의 문제점과 비밀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건드리면 탈난다, 라는 분위기랄까.
오래된 명문가라는 설정은 본격 추리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인데, 특히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서 그런 설정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에 읽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책도 마찬가지로 유서 깊은 명문가의 비밀과 관련한 이야기였는데, 왠지 이런 이야기는 남의 집안 비밀을 들여다 본다는, 그래서 조금은 관음증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원래 남이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일수록 재미있는 법 아니겠는가.
본격 추리소설 작품과 코지 미스터리는 무게면에서 좀 다르다. 본격 추리소설이 무겁고 진중한 느낌이라면 코지 미스터리는 무거운 사건을 다루면서도 유쾌하달까. 그래서 읽으면서도 때로는 푸흡하고 웃기도 하지만, 드러나는 비밀에 놀라움을 감출수 없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역시 와카타케 나나미는 코지 미스터리를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다.
참, 이 작품을 읽다 보면 1편에 나온 빌라 매그놀리아, 하자키 로열 호텔, 기토당 외에 부동산 업자인 고다마도 등장한다. 또한 3편의 배경이 되는 네코지마도 잠깐 등장하니 것도 시리즈의 재미라고나 할까. 또한 이 작품의 소제목들이 로맨스 영화제목을 패러디 한 것이니 그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