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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인문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ㅣ 지식여행자 10
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마리 여사의 책은 아직 두 권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글솜씨에 홀딱 반했다. 유일한 소설인 <올가의 반어법>은 내 가슴을 뒤흔드는 처절한 무언가가 있었고,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백번 공감했었다. 그외에도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마리 여사의 책 목록을 보면서 참 다양한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리 여사의 책중 어느 것을 볼까요, 하고 고르다가 눈에 띈 이 책, 바로 팬티 인문학이다. 팬티라... 사실 이 팬티란 것은 속옷인데다가 신체의 중요한 부분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왠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속옷 이야기, 그중에 팬티 이야기는 서로 나누지도 못할 만큼 민망한 소재이다. 마리 여사는 이런 민망한 소재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글을 썼고, 무슨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줄까.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의 원제를 찾아 봤다. 외서의 경우 번역본 제목과 원서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パンツの面目ふんどしの沽券 인데 우리말로 하면 팬티의 면목 훈도시의 체면이다. 원서 제목을 보면서 난 푸핫하고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パンツ는 판츠로 읽는데, 영어식으로 읽으면 팬츠다. (일본에서는 팬티를 팬츠라 부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판츠, 판츠, 판츠... 그렇다. 이건 빤쓰다! 나도 어릴땐 팬티라는 말보다는 빤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웃음이 터질수 밖에. 음, 나만 웃긴가. 하여간 그렇다. 그리고 훈도시. 이거 참 보기 민망한 것 중의 하나이다. 스모 선수들이 입는 것, 바로 그것이 훈도시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요즘의 T - 백 팬티하고 참 많이 닮았달까. 스모 경기를 보면서 저런 걸 어떻게 입는지 참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빤쓰와 훈도시에 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마리 소녀는 유치원에 다닐 때 십자가를 보고 예수가 입은 것이 팬티인지 훈도시인지 궁금해했다고 한다. 또한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 나무로 신체 부위를 가렸다는 말에 직접 실험도 해봤다고 한다. 허허참, 난 그 또래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하지만 나중에 커서 명화를 볼 때 아슬아슬하게 하체를 가리고 있는 천들이 참 궁금했다.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는 그런 의문이랄까. 그외에도 완전 누드를 그린 작품이 아닌 그림을 보면 미묘하게 아슬아슬하게 신체 부위를 가린 천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의문들이 풀렸다고 하면 과장일까?
태초의 인류는 아마도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로 살아 왔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사람들이 처음부터 속옷을 생각하고 뭔가를 걸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에는 주술적 의미에서 무언가를 허리에 둘렀고, 그것이 발전하면서 치마나 훈도시의 형태로 발전했고, 그것이 바지, 그리고 속옷으로 발전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원시 부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마존같은 곳에 사는 소수의 원시부족 중에는 남녀 불문하고 허리에 가느다란 띠만을 두르고 있다거나 나뭇잎을 엮어서 허리에 걸친 형태, 그리고 치마 형태의 무언가를 입고 있는 것을 관찰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좀더 발전해서 치마가 되고 의복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의복의 기원에 관해서 후카사쿠 역시 '부끄러움'에 대해 인정하지는 않는다. '부끄러움'은 이유가 아니라 결과인 것이다. (51p)
수치심의 발생에 관한 이러한 관찰은 제법 흥미롭다. 그 흐름은 이렇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 외국인과 부끄러움에 관한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 외국인의 입장을 이해한다 → 감춘다 → 부끄러움을 인식한다.
부끄럽기 때문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감추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의 경우 외국인이 많았던 도시보다 알몸에 대한 수치심을 자각하는 시기가 더 늦은 것인지도 모른다. (108p)
이 부분을 보면서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성서에서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움을 느껴 무화과나무잎으로 앞을 가렸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주술적인 의미가 앞섰고, 그후에는 추위같은 기후에 대항해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후 아무것도 입지 않는 것이 부끄러워진 것은 자신과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의 시각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러하기에 부끄러움이란 이유로 속옷을 입게 된 것은 결과가 된다. 일본에서는 근대까지 훈도시만을 걸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녔다고 한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모자와 셔츠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체에는 훈도시만을 걸치고 다닌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부끄러움도 아니었지만, 서양인들이 들어온 후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는 과정에서 훈도시만을 입는 것이나 알몸으로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인간이 옷을 만들고, 속옷을 갖춰 입기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쳤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문화가 원할하게 교류되기 전까지는 나라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을 보였다. 마리 여사가 학창 시절을 보낸 체코에서의 이야기나 러시아와 관련한 이야기는 때로는 커다란 흥미를 때로는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러시아 남자들의 루바시카와 관련한 이야기나 용변을 본 후에 대처하는 방법 등은 놀라움과 재미를 함께 안겨 줬다고 할까. 아니 애시당초 러시아의 속옷의 - 특히 팬티- 역사가 그렇게 짧다는 것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 음. 달리 생각해보면 일본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을 때는 원래 속옷 - 역시 팬티를 의미, 대신 고시마키를 입었다 - 을 입지 않았다, 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문득 우리나라 속옷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 가정시간에 복식에 관한 수업을 하면서 속옷의 종류와 속옷을 입는 순서를 달달 외던 게 생각난다. 그때는 뭐가 이래 복잡해,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건 어쩌면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에서도 근대에 훈도시만을 입고 다는 사람들은 하층계급이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그렇게 추론되는 것이다.
속옷은 원래 속옷이라 생각되고 발명되지는 않은 듯하다. 다양한 의미로 몸을 가리는 것이 의복이 되었고, 그것이 속옷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속옷은 최초의 의복이었다, 라는 의미로 확장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초기의 속옷들은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하나의 천이나 천에 끈을 매단 형태인 훈도시와 허리에 둘러맨 고시마키 비슷한 모양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입던 속곳도 그런 형태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는 곳은 달라도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난다.
속옷이나 의복은 각각의 나라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사상까지 담고 있다. 여기에서는 다양하게 소개되지는 않지만 훈도시가 일본 남자들에게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설명한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의복은 양복으로 바뀌었으나 속옷은 훈도시를 그대로 착용했다는 것을 봐도 일본인 특유의 고집스러움을 확인하게 된달까.
훈도시를 자기 정체성의 핵심으로 생각할 때, 마침내 자신이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애국심이나 야마토 정신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훈도시로 상징화하면 이런 정신도 실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것은 훈도시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물신 숭배로 직결되는 양상을 전하는 귀중한 시대의 증언이라 할 수 있다. (222p)
팬티라는 소재 단 하나로 이렇게 확장해서 생각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펴낼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다. 특히 현대인들이 특히 민망해하고 터부시되는 속옷의 역사와 속옷과 관련한 문화사적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건 분명히 독특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편견을 배제하고 순수한 시각에서 펼쳐가는 이야기들은 톡톡 튀는 발상과 더불어 날카로운 시각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그 재미를 더해주었다. 역시 마리 여사의 책은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