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살림어린이 더 클래식 2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원재길 옮김, 로버트 잉펜 그림 / 살림어린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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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동화책에 대한 내공이 부족한 편이라, 동화책을 살 때는 표지나 제목만을 보고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역시 그렇게 구입한 책인데 구입하기 전까지는 이 책이 그렇게 유명한 책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출간 100주년 기념판이라니, 놀라웠다. 요즘 나오는 책의 수명을 생각해 보건대, 이 책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으면서 읽혔다는 건 틀림없이 그 내용에 정답이 있으리라. 물론 오래전부터 읽힌 책은 수도 없이 많다. 그 책들의 대부분은 고전이며, 이 책 역시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는 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주인공을 꼽으라면 두더지, 물쥐, 오소리, 그리고 두꺼비를 꼽을 수 있다. 두더지는 봄맞이 대청소를 하던 날 청소를 하다 말고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어쩌면 계절의 변화도 없고 밤과 낮도 없는 굴속 생활에 염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굴밖은 따사로운 햇살과 향기로운 풀내로 가득했다. 굴속과 비교한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두더지는 봄의 햇살속에 몸을 맡기고 모험을 시작한다. 두더지가 강가에 이르렀을 때 만난 것은 물쥐. 물쥐는 강가의 작은 굴에 살고 있다. 물쥐는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로 두더지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원시림 속에 살고 있는 오소리 아저씨는 겉으로 보기엔 무섭게 생긴데다가 성격도 무뚝뚝한 편이지만 현명하며 따스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대저택에 사는 두꺼비는 모험심이 왕성하고 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입이 가볍고 때로는 자신이 감당도 못할 일에 손을 대는 등 사고를 몰고 다니는 동물이다.

물쥐는 강둑에 산다. 강둑에는 물쥐말고도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강은 언제나 고요하게 그자리를 흐른다. 하지만 때로는 계절에 따라 물살이 거세지기도 하고, 수위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게 불편한 일은 아니다. 물쥐는 보트를 타고 강위를 떠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두더지를 처음 만난 날 물쥐는 두더지에게 보트를 타고 소풍을 가자고 제안한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강이며 논과 밭, 빨간 지붕이 아름다운 집, 강을 닮은 다리. 울창한 숲. 이곳에 있으면 모든 시름과 근심이 사라질 듯 하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덕분일까. 이곳에 사는 동물들 역시 서로를 위하고 아끼며 존중한다.

물쥐가 준비해온 피크닉 바구니는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풀위에 매트를 깔고 맛있는 식사를 할 때 물쥐의 친구 수달이 찾아 왔다. 수달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두더지는 난생 처음으로 만난 수달과 그의 이야기에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수달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원래 동물들은 그렇게 금방 사라지니곤 하니까 물쥐와 두더지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즐거운 소풍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물쥐는 두더지에게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좋다는 근사한 제안을 한다. 이미 바깥 세상의 아름다움에 취해버린 두더지는 버려두고 떠나온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물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두더지가 집청소에 싫증을 내지 않았더라면, 굴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즐겁고 멋진 세계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수나 있었을까. 안전한 것이나 일상적인 것도 좋지만 가끔은 모험을 즐겨보는 것도 삶에 있어서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는 게 아닐지...

물쥐는 두꺼비를 두더지에게 소개시켰다. 두꺼비는 얼마전까지는 보트에 취미를 붙여 보트를 타고 다녔지만 이제는 마차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황금색의 몸체와 빨간색 바퀴를 가진 마차는 이들을 어디로든 데려가줄 것만 같다. 원래 모험심 강한 두꺼비에 모험을 하고 싶어 집을 나온 두더지. 이들이 만났으니 여행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을까. 물쥐는 두꺼비의 성격을 알고 있어서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두더지를 생각해서 같이 길을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여행은 얼마 가지 않아 끝나고 말았다. 마차옆을 지나가는 자동차때문에 마차는 부서져 버렸고, 두꺼비는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후 두꺼비는 자동차 매니아가 되었다.

책을 보면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건, 여기에 나오는 동물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작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사람보다는 좀 작지만, 그래도 원래 크기보다는 상당히 크다. 게다가 옷도 입고, 근사한 집에서 살며 도구를 이용하는 등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특히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두꺼비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올 정도다.

계절이 훌쩍 지나 겨울이 되었다. 두더지는 겨울이 되어 깜빡깜빡 졸기 시작하는 물쥐를 두고 원시림 탐험에 나선다. 하지만 원시림 안에는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있었고 겁을 먹은 두더지는 방황을 하다가 결국 나무둥치의 구멍안에 숨게 된다. 졸다가 깬 물쥐는 두더지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두더지를 찾기 위해 원시림으로 간다. 두더지를 찾긴 했지만 이미 해는 저물고 눈까지 내리는 통에 물쥐 역시 길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은 운좋게도 오소리 아저씨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오소리 아저씨는 겨울에는 거의 집안에만 있기 때문에 오소리 아저씨의 집을 찾은 건 정말 행운이었다. 그곳에서 따스한 음식을 대접받고 푹 쉴 수도 있었다.

오소리는 자연계에서는 물쥐나 두더지의 천적이 된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서로를 존중한다. 이렇게 오소리와 두더지와 물쥐가 평화롭게 있는 장면을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환상적이랄까. 이 그림을 보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삽화는 모두 환상적이다) 마치 돌하우스처럼 보이는 오소리 아저씨의 집.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는 들쥐와 두더지의 모습. 문득 나도 저 사이에 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달까. 또한 다음날 아침 고슴도치 형제도 오소리 아저씨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는데, 이들의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질 정도였다.

원시림에서 강둑으로 무사히 돌아온 다음, 두더지와 물쥐는 또다른 모험에 나선다. 그래 봤자 사는 곳주변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던 길, 두더지는 익숙한 냄새에 이끌린다. 그건 바로 자신의의 집 냄새였다. 오랫동안 비워둔 집이 두더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두더지는 물쥐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랫동안 비워둬서 먼지가 쌓인 집안을 보면서 두더지는 물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다정한 물쥐는 집안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아 냈고, 두더지의 작은 집을 칭찬하며 두더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캐롤 소리. 그건 바로 작은 들쥐들의 연례행사였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들쥐들의 연례행사까지. 두더지에겐 익숙하지만 들쥐에겐 또다른 경험이었달까. 두더지는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집에서 행복을 느꼈지만, 아직 모험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집은 자신을 언제까지라도 기다려 줄 것이란 믿음을 가졌기에 또다시 강둑으로 돌아갔다.

작은 들쥐들이 부르는 캐롤이라니! 얼마나 명랑하고 맑은 노랫소리일까. 나에게도 들려주렴, 너희들의 노래를~~~ ♪

또다시 여름.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수달의 아들 통통이가 없어진 것이다. 두더지와 물쥐는 통통이를 찾기 위해 밤에 보트를 타고 강으로 나간다. 그런 그들에게 들려오는 신비한 소리. 두더지와 물쥐는 그 소리에 이끌려 그곳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목신이 있었다. 목신은 동물을 수호하는 존재. 그들이 덫에 걸리면 덫에서 빼내 치료해주고, 길을 잃으면 도움을 주기도 하는 존재이다. 목신의 피리소리가 두더지와 물쥐를 통통이가 있는 곳으로 이끈 것이다. 하지만 목신을 만난 것은 금세 잊게 될 것이다. 그건 목신의 따스한 배려.

이야기는 목신이 등장함으로써 더욱 환상적인 이야기가 되어간다. 목신의 역할도 그렇지만, 목신의 따스한 배려가 너무나도 가슴속에 따스하게 다가왔달까.

가을이 찾아왔다. 제비들은 강남으로 떠날 채비에 한참 바쁘다. 물쥐는 제비들을 보면서 왜 여행을 떠나냐고 이곳에 머무르면 안되냐고 묻는다. 하긴, 물쥐는 강주위를 벗어난 적이 없으니 그것이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고 때가 되면 돌아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을... 물쥐는 문득 자신의 가슴 속에도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낀다.

그때 나타난 것은 바닷쥐. 오랜기간 여행을 해온 바닷쥐는 물쥐에게 바다와 배와 항구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건 물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동행하자는 바닷쥐의 말에 물쥐는 짐을 꾸리지만, 두더지에 의해 저지된다. 물쥐는 자신이 사는 곳을 멀리 떠나 살 수 없는 존재이니까. 강을 떠나서는 살 수 없으니까. 이 일이 있은후 물쥐는 한참을 우울해하지만 결국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다면 그동안 두꺼비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보트, 마차에 이어 자동차에 매료된 두꺼비는 차를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 것이 여러번. 친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두꺼비가 걱정될만도 하다. 하지만 두꺼비는 친구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고, 결국 친구들은 두꺼비를 집안에 감금한다. 하지만 두더지와 오소리 아저씨가 외출한 사이 물쥐를 속여 밖으로 탈출한 두꺼비는 다른 사람의 차를 훔쳐타고 달아나가다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힌다. 그후 감옥에서 탈출한 두꺼비는 사람들을 골탕먹이며 집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은 행운이 따랐기 때문인데 그것을 모두 자신이 똑똑한 거라 자만하면서. 두꺼비는 여러 힘든 고비를 넘겼지만, 반성할 줄을 몰랐다.

두꺼비가 집으로 향하는 길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 번번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다가도 또다시 자만과 교만, 허영심에 사로잡히는 두꺼비의 모습을 보면서 킥킥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랄까. 하지만 이렇게 살면 모두들 두꺼비 곁을 떠나고 말텐데....

우여곡절끝에 자신이 사는 마을로 돌아왔지만, 두꺼비의 집은 이미 족제비와 담비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두꺼비가 돌아올 때까지 오소리 아저씨와 두더지가 그 집을 지키려 했지만 둘이서 족제비와 담비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두꺼비마저 돌아온 지금, 그들은 계획을 세워 이들을 몰아내기로 한다. 오소리 아저씨의 현명한 계획과 두더지와 물쥐의 용감함은 수많은 족제비와 담비를 두꺼비의 집에서 쫓아냈고, 두꺼비는 자신의 집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들로 인해 위험하던 원시림 역시 더이상 위험한 곳이 아닌 평화로운 곳으로 바뀌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동물들의 우정, 모험심, 자유의 의미, 평화 등을 다채로운 각도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전혀 다른 종들 - 게다가 현실에서는 천적관계인 동물들 -이 나누는 우정은 가슴을 따스하게 만든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마치 오랜 친구처럼 두더지를 반겨주는 물쥐, 눈오는 원시림 속에서 길을 잃었을때 따스하게 그들을 맞이해 준 오소리 아저씨, 수달의 아들 통통이가 사라졌을 때 모든 걸 제쳐두고 통통이를 찾아나선 두더지와 물쥐, 두꺼비가 더이상 잘못을 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오소리 아저씨, 물쥐, 두더지, 또한 두꺼비가 집을 비웠을 때 집을 지켜주려 애썼고, 결국 빼앗긴 집을 되찾게 만들어준 오소리 아저씨, 물쥐, 두더지의 이야기는 진정한 우정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게 한다.

두더지가 굴밖을 나와 또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모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험심이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었고, 새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만들어줬다. 두꺼비의 경우에는 비뚤어진 모험심이 자신을 위기에 처하게 하고, 다른 친구들을 걱정시켰지만, 그것으로 인해 두꺼비는 자신의 오만함, 교만함, 허영심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도 확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두꺼비의 집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의 우정이었고, 그결과 원시림은 평화로운 상태가 되었다. 만약 이 일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원시림은 강가에 사는 동물이나 초원에 사는 동물들에게 위험한 곳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이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점인데, 사람들과 동물들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두꺼비가 잘못을 했을 때는 사람들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여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보다 착하지 않다. 감옥에 있는 두꺼비를 돌보아주는 아가씨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애완동물로서 동물을 좋아하고 있다. 그 아가씨의 친척은 두꺼비의 돈을 받고 두꺼비의 탈옥을 돕고, 두꺼비가 강가에서 만난 여인은 두꺼비를 놀리기까지 한다. 물론 기관사처럼 좋은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기적이고 동물을 아낄줄을 모른달까. 문득 씁쓸한 생각도 든다. 어쩌면 동물들 입장에서 보는 인간은 그보다 더 가혹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개성이 잘 살아 있는 주인공들이 겪는 다양한 사건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언어와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특히 자연을 묘사한 문장들은 그 모습이 바로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다. 또한 다양한 비유와 수식어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내가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은 '반짝이고 번쩍이고 번득거렸으며, 바스락거리고 소용돌이치고 재잘대고 보글거렸다'(13p) 라고 묘사된 강의 모습, '두더지는 몹시 행복해서 발가락을 달달 떨었다'(17p) 라고 하는 두더지의 행동, '두꺼비는 붕붕 날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자동차는 맑게 윙윙거리는 소리로 대꾸했다' (151p) 라는 표현, '마늘이 노래를 부르는 소시지, 벌렁 드러누워 엉엉 우는 치즈 (…) 머나먼 남쪽 나라 산비탈에 떨어진 걸 모아서 숙성시킨 햇빛'과 같은 묘사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 시리즈처럼 환상적이고, 사자와 생처럼 따스한『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동화로 손꼽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사진 출처 : 책 표지, 12+36+26+60p,8~9p, 25p, 43p, 80~81p, 124p, 168p, 200~201p, 258~259p, 286~2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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