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미스 프랭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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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은 선한가, 악한가. 이는 끊임없이 상기되어 온 문제이고, 여전히 그 완전한 해답을 내리지 못한 명제로 남아 있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하며 후천적으로 선을 습득한다고 했고,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지만 물욕이나 나쁜 환경때문에 인간이 악해진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인 상태라고 하는 성무성악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서양의 철학자인 로크는 인간의 마음은 빈방이나 백지, 또는 완벽하게 밀폐된 암실과도 같아 추후의 환경에 따라 선악이 갈라진다고 했다. 나의 경우 인간은 태어날 때는 백지상태와 같지만 커가는 환경에서 악해지거나 선해진다는 고자나 로크의 주장을 믿는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악과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그저 절대적인 악에 가까운 것이고, 아무리 선한 인간이라도 절대적인 선에 가까울 뿐 그 자체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외의 사람들은 대부분 매순간 선과 악의 순간을 넘나들면서 살아 간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것은 한적한 시골마을로 주민수는 다 합쳐도 300명이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그들은 특별이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평범한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마을에 이방인이 한 사람 찾아온다. 이방인의 출현은 작은 마을에 있어 큰 이야깃거리가 된다. 하지만 그 이방인이 어떤 존재이냐에 따라 마을에 큰 영향을 남기기도 한다. 이곳을 찾아온 이방인은 무기거래상으로 테러리스트에 아내와 두 딸을 잃어버린 남자이다. 그는 미스 프랭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이 마을에 금을 숨겨 놓을테니 마을 사람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다면 이 모든 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미스 프랭은 자신의 마을 사람들은 금에 현혹되어 살인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만, 이방인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처음에 마을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것을 부탁받은 미스 프랭은 며칠동안이나 고민한다. 그녀의 마음속은 번민으로 가득찬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이방인이 미스 프랭이 마을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먼저 알린다면 그녀는 죽은 목숨일 것이요, 만약 그녀가 이방인보다 먼저 그 사실을 마을 사람에게 알렸을 때는 어떤 비극이 생겨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의 마을 사람들을 믿어도 사람이란 존재는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변변한 관광자원도 없고 젊은이들마저 모두 떠나버려 사양길에 접어든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그 금이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죽여야만 받을 수 있는 대가라니!

번민 끝에 미스 프랭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방인의 제안을 알리기로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마을 회의를 시작한다. 그들이 내릴 결단은 어떤 것일까. 

이방인은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한 일 이후,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믿어오고 있다. 그래서 이 작은 마을을 자신의 생각의 시험대에 올려 놓고자 했다. 마을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는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를 희생시킬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증명해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스 프랭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도 약간은 흔들린다. 자신이 겪은 비극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아 넣는 것에 대해서. 그도 미스 프랭도 사람이었기에 그런 선과 악의 보이지 않는 대립을 마음속에서 겪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책의 결말부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이 누구 한사람을 지목해서 그런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을 공동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그렇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었을까? 이방인이 마을전체를 시험대 위에 올린 것은 분명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혼자서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번민하지만, 그것이 대의라고 생각할 경우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군중심리다. 신의 종이라는 신부마저도 '단 한 사람의 희생이 전 인류를 구원했다'고 말한다. 그가 독단적으로 이 결정을 내렸다면 파문당해야 마땅할 인간이겠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죄를 저지를 때는 그것이 방패막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몰고 간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미스 프랭의 향후 행동에 대해서는 이 책과 대치되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찝찝했다. 그녀는 마을을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결국 자신의 욕망은 채웠다. 그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그녀는 분명 선한 행동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었기에 마음이 찜찜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진정한 선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늘상 악에 유혹당하는 가련한 선이 있을 뿐. 인간은 결국 선과 악의 중간에서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존재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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