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차는 아이들
김훈 글, 안웅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 축구 열풍이 불었다. 물론 그 전에도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전국민적으로 축구에 열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취미로 축구를 하는 사람이든, 축구경기를 관전하는 사람이든 모두 작은 공하나에 환호성을 지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축구란 것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다. 물론 팀을 짜서 경기를 할 수도 있지만 둘이라도 가능하고, 혼자서도 공을 차면서 놀 수 있다. 그래서 그럴까, 책 표지에 나온 한 꼬마 아이는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혼자서 놀면 외로워 보일만도 하지만 공 하나가 그런 느낌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공차는 아이들에 나오는 사진들은 모두 공과 관련한 사진들이다. 그렇다고 아이들 사진만 있는 것도 아니요, 공을 차는 사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사진이고, 공을 차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공 하나로 즐거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달까.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이든, 학교 운동장이든, 골목길이든, 바닷가 모래사장이든. 공과 사람만 있으면 어디나 놀이터가 된다. 이는 놀이로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스포츠라면 정식 구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규칙에 맞춰 플레이를 해야하리라. 하지만 그런 공간이 아닌 곳에서 그저 공을 차는 것은 더이상 스포츠가 아니라 놀이이다.

스포츠는 인간들의 싸움이나 전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편을 갈라 서로를 공격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인 것이다. 하지만 놀이에서는 이기든 지든 그건 그렇게 상관이 없다. 그저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보다는 즐거운 빛이 먼저 떠오른다.

또한 스포츠와 달리 놀이란 개념에서는 나이도 상관이 없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부터 희끗희끗하게 세어가는 머리카락을 가진 노년의 사람들까지 모두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놀이이다. 어른이 되서 아이들 놀이를 하면 나잇값을 못한다고 하지만 공을 차고 노는 것은 나잇값과 하등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지구를 닮은 동그란 공. 그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군대 시절의 추억도,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찼던 서울 광장의 추억도. 그저 하나의 공일뿐인데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또한 공은 그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큰 존재감을 가진다. 공을 찬다는 것은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공을 차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면 그 공간은 가득차 보인다. 물론 혼자 차는 공놀이 역시 마찬가지로 공간을 꽉 채운다. 혼자 가만히 서있었다면 휑하니 비었을 공간이 공을 차는 사람들로 인해 꽉 찬 공간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생각해낸다는 것은 분명 또하나의 창작이다. 나도 가끔 사진을 찍지만 수많은 사진을 골라내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들기란 힘들다. 게다가 자신이 찍은 사진도 아닌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의도가 담뿍 담겨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혀 위화감없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사실 김훈 작가의 소설은 너무 어려워서 달랑 한 권만 읽고 다른 책은 읽을 엄두도 못냈었다. 난 쉬운 말로 씌어진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도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으면 읽은 느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이 포토 에세이는 작가의 다른 점을 발견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아직도 난 작가의 소설에 도전할 엄두는 못내지만 에세이정도는 도전해 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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