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호텔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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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가득 보이는 건 고양이. 그래서 난 책 제목처럼 고양이 호텔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맞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좀 다르다.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책 뒷표지를 보면 <섬세한 꽃미남 인터뷰어 '강인한'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 인터뷰이 '고요다'의 가슴 설레도록 아찔하고 짜릿한 밀고 당기기>란 글이 나온다. 이 글만 읽으면 연애소설인가 싶다. 흐음, 연애소설이야? 책 잘못 샀군, 이란 씁쓸한 한숨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책 내용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그래서 이 책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3억원의 상금이 걸려 있는 문학상 현상 공모에 당선된 고요다. 그녀는 11개의 방을 가진, 마치 성처럼 보이는 집에서 고양이 200여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함께 돌아가셨기에 지금은 완전히 혼자다. 그런 그녀는 출판사 인터뷰도 거절한 채 두문불출한 채 살아 간다. 가끔 외출을 하고, 한 주에 한 번 섹스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그녀의 일과의 전부이다.  

그런 그녀를 찾아온 것은 잡지사 기자인 강인한. 그는 그녀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왔지만, 고요다는 그런 그가 침입자로만 느껴진다. 자신의 성에 무단으로 침입한 침입자. 하지만, 강인한은 갖은 술수를 써 그녀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또한 갖은 술수를 써 그곳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갖은 술수를 쓴다. 하지만 굳게 닫힌 성문처럼 그녀의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런 설정만을 본다면 그저그런 연애소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좀 달랐다. 고요다는 자신의 마음을 쉽사리 열지도 않을 뿐더러 침입자인 강인한을 몰아 내기 위해 온갖 힘을 기울인다. 너는 이곳에 발을 들여 놓으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이. 그런 고요다에게 유일하게 위안을 주는 것은 200마리에 가까운 고양이들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고요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녀가 강인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해도 그건 그것으로 끝난다. 그이상의 마음은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난 강인한이란 캐릭터가 참 싫었다. 기자들이란 원래 그런 사람들이지, 라는 한숨이 나왔다. 처음엔 땡볕에서 코피를 흘리며 우연히 쓰러졌지만, 그것을 기회로 그는 고요다의 집으로의 침입에 성공했다. 그후엔 물을 달라, 배고프니까 밥 좀 먹겠다, 밥먹고 나서는 설사가 나서 못나가겠다, 약 좀 가져다 달라면서 트렁크를 가져오도록 부탁한다. 고요다는 당황해서 일단은 그의 말대로 해준다. 그런 고요다를 보면서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자전거를 망가뜨리고, 계단에서 떨어져서 일부로 다치기까지 한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 그녀의 동정을 사려하고, 그녀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려 한다. 멀쩡한 형을 죽이고, 가족을 팔아 먹다니, 기자란 원래 이런가 싶은 생각에 씁쓸한 한숨만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그는 고요다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그녀는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간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부터 빗나가기 시작한다. 그건 고양이들 이야기로 시작된다. 200여마리의 고양이 중 빨간 목줄을 하고 있는 고양이의 정체. 그녀는 그 고양이들이 이 부근에서 실종된 사람들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강인한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자신도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으니 그녀도 그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다음 소설의 틀을 잡는 게 아니냐고 묻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는 서울로 돌아가 고요다 인터뷰 기사를 내놓는다. 그 기사는 창작된 기사였다. 이 기사를 보고 난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강인한이란 사람의 인생은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구나 싶은 생각에. 그러니 진실을 말해도 거짓으로 알아 듣고, 제멋대로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고요다와 강인한은 이 소설속에서 계속 입장이 바뀌어 간다. 처음에는 수호자와 침입자,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였지만, 나중에는 누가 누구를 인터뷰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관찰자가 되었다가 피관찰자가 되었다가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 고요다가 이야기하는 고양이 이야기를 강인한은 아예 믿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강인한 자신이 이야기한 강인한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거짓이었기에 고요다는 강인한에 대해 알면서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또다른 재미있는 설정은 뻔한 설정을 가져와도 색다르게 바꿔 버린다는 것이다. 고요다와 강인한이 집에 있을 때 나타난 한 여자. 그녀는 그들을 지하에 가둬 버린다. 갇힌 시간 동안 - 보통의 이야기라면 -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껴야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으르렁댄다. 이 부분이 참 재미있다. 만약 그런 사이가 되어버려서 그후 강인한이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녀와 인터뷰한 것을 전부 오프 더 레코드로 만들었다면 이 소설은 그저그런 소설이 되었을 테지만, 작가는 그런 일반적인 통념을 간단히 제거해버렸다. 강인한은 끝까지 비열했고, 그녀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후 그녀는 데뷔작을 마지막으로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고양이로 변한 사람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을 쓸 결심을 한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성을 훌륭히 잘 지켜냈는지도 모른다. 강인한이 들어와 휘저었지만, 그건 별 영향력이 없었다고 보여 진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서른 명에 가까운 실종자들,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정말 고요다의 말대로 고양이로 변한 것일까? 소설의 결말은 여전히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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