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도 하늘말나리야 - 아동용,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ㅣ 책읽는 가족 1
이금이 글, 송진헌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 때는 얼른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앞에 뭐가 있는지도 전혀 모른채. 그저 얼른 어른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어른들은 만능이었다. 고민도 없을 것 같았고, 힘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후 본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다. 날이 갈수록 고민은 늘어나고, 힘든 일도 넘쳐났다. 어른이 된 지금은 문득문득, 아이들이 부러워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아이들 역시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미르, 소희, 바우는 저마다 힘든 일을 겪고 있다. 보통의 또래 아이라면 아직겪어본 적이 없거나, 앞으로 한동안은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미르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미르는 그게 너무나도 속상하다. 게다가 시골로 이사를 해야 했고, 사랑하는 아빠와도 떨어져서 살아야 했다. 자신은 엄마 아빠의 이혼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아빠와 살고 싶었는데, 이사도 하기 싫었는데,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다. 당연히 미르에게 있어 모든 것이 마음에 들리가 없다.
'난 절대로 행복해지지 않을 거야. 날 이렇게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엄마도 나만큼 아파야 돼.' (39p)
미르는 자기 자신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엄마도 당연히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이혼후, 시골로 이사한 후 오히려 더 밝아진듯 해서 더 화가 난다. 그래서 엄마가 이런 말을 해도 흥, 저런 말을 해도 흥이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불행하다고 여겨지고, 모든 것이 다 싫어진다. 그런 미르가 새로운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할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소희는 어릴 때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엄마는 외갓집으로 끌려가 재혼했다. 그게 소희가 두돌 때 였다. 그렇다 보니 아빠도 엄마도 기억속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소희는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이다. 요즘 들어 부쩍 건강이 나빠진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를 빼 놓고 소희는 선생님이나 할머니에게 소희 자신이 잘못해서 꾸지람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미 소희는 어른들이 어떤 아이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소희 스스로 그 틀에 맞추어 살았다. 갑자기 소희는 스스로 맞추어온 틀이 갑옷처럼 갑갑하게 느껴졌다. (109p)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온 것 때문인지 소희는 무척이나 어른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그게 더 안쓰럽다. 어린 아이가 얼마나 애를 쓰고 사는가 싶어서. 그런 소희는 자신의 감정을 마구 터뜨려내는 미르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움을 느낀다. 이제껏 자신은 참고 또 참아 왔기에.
바우는 아버지와 산다. 바우의 엄마는 바우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그후로 바우는 말문을 닫아버렸다. 처음에는 벙어리란 놀림도 받았고, 문제아 취급을 당하기도 했지만,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바우의 사정을 알게 된 후로는 그런 놀림도 없어지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엄마가 늘 그리운 건 바우도 마찬가지이다.
미르, 소희, 바우는 모두 결손가정의 아이들이다. 부모의 이혼, 죽음 등으로 만들어진 편부모 가정이거나 조손가정이다. 미르는 비교적 최근에 이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아직은 모든 것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특히 자신이 원치도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겹쳐지게 되었으니 그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르는 엄마에게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학교 친구들에게도 가면 쓴 얼굴을 내민다. 마치 '난 너희와는 달라'라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결국 학교 아이들과도 마찰이 심해져 싸우기도 한다. 그에 비해 소희는 아주 어릴적부터 할머니와 살아왔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바우의 엄마를 좋아했고, 미르가 엄마와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살아 있는 엄마를 만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미르의 엄마나 바우의 아빠나 소희의 할머니는 어떨까. 아이들은 어른들은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른들도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을 많이 겪는다. 다만 그것을 속으로 삭히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미르의 엄마도 이혼 전부터 많이 힘들었음을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멋대로 직장을 관두고 사진가가 된 아빠가 미르 눈에는 멋져 보였겠지만, 미르 엄마 입장에서는 그런 남편과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르가 아직 어려서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지도 못했고, 미르 역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미르의 엄마가 바우의 아빠와 잘 지내는 모습은 미르나 바우 모두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미르의 경우 아직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바우 역시 아빠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기에 재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르의 아빠가 먼저 재혼을 하게 되었다. 미르에겐 그건 부모의 이혼보다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엄만 네 아빠와 헤어지면서 네가 딸이라는 사실에 많은 위안을 받았어. 아직은 어리지만 언젠가는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아픔을 이해하고 엄마의 친구가 돼 줄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이 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엄말 미워하는 걸 보니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네 아빠한테 가고 싶으면 가도 좋아. 좋은 남편이 아니니까 좋은 아빠도 아닐 거라는 엄마의 판단이 잘못된 것 같다. 그렇게 엄마가 사는 것이 힘들면 네 아빠한테 가도 좋아. (190p)
하지만 미르의 엄마는 '넌 아이니까 몰라도 돼'라는 입장은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속마음을 툭터놓고 미르에게 이야기한다. 미르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든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당장은 전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이 아이들은 몇 개의 계절을 함께 지나면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미르나 소희나 바우나, 이제껏 모두 자신만의 고민만을 끌어 안고 살았다면, 자신만의 아픔만을 끌어안고 살았다면, 이제는 자신의 아픔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끼게 된 것이다. 또한 자신만의 세계를 벗어나 겉에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껏 이 아이들의 속마음은 땅을 향해 있었지만, 이젠 하늘을 향해 피어나게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 하늘말나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