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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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코쿠 나츠히코의 『웃는 이에몬』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던 이 작품을 얼마나 만나보고 싶었는지... 『웃는 이에몬』은 요쓰야 괴담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살펴 볼 때 이와라는 이름이 아주 낯익게 느껴졌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난 이미 요쓰야 괴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영화중에 <한반중의 야지상 기타상>을 보면 물에 둥둥 떠내려오는 널판의 앞뒤에 매달린 남녀의 시신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게 바로 이와와 고헤이였다. 또한 2006년에 제작된 <괴~아야카시~>란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1화에서 4화까지가 요쓰야 괴담 이야기이다. 애니메이션은 재미있게도 이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의 원작자인 쓰루야 난보쿠를 화자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두 편 다 몇 년 전에 본 작품이라 가물가물해서 기억이 잘 안떠올랐는데, 책 본문 맨앞에 수록된 <'요쓰야 괴담'에 대해>란 글을 보고 확실하게 기억났달까.

이 작품은 쓰루야 난보쿠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해석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쓰루야 난보쿠의 요쓰야 괴담에서는 이에몬은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자신의 처 이와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며, 이와를 모함하여 쫓아내고 결국은 죽게 만든 인물로 등장한다. 그후 이와는 망령이 되어 이에몬을 괴롭히고, 이에몬의 집에는 변괴가 끊이지 않게 된다. 즉, 원작은 참혹한 괴담이지만,『웃는 이에몬』은 요쓰야 괴담의 이야기와 등장 인물을 빌려와, 이에몬과 이와의 사랑을 가슴 아픈 비극으로 승화시켰다. 그렇다 보니 등장 인물의 이름은 같아도 그들 사이의 관계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역자 후기를 보면 요쓰야 괴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원작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항설백물어』에 나오는 등장 인물인 마타이치가 등장하는 것 역시 이 책의 또다른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모시는 주인이 없는 낭인 이에몬은 목수 일로 근근히 생활해 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랑이 사이도 빠져나간다는 마타이치가 찾아와 다미야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지 않겠냐고 권한다. 다미야 가문의 마타자에몬에게는 이와라는 딸이 있는데, 늠름하고 곧은 성격의 소유자로 이제껏 들어오는 혼담을 모조리 거절한 아름다운 아가씨였으나, 어느 날 포창을 앓아 얼굴 반쪽이 완전히 망가지게 되어 이제는 혼담이 완전히 끊긴 상태이다. 이에몬은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 혼담를 받아 들여 다미야 가문의 사위가 된다. 하지만 이와와 이에몬은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에몬은 무뚝뜍한 사람이지만 속정이 깊은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 이와에게 곧잘 오해를 하게 만든다. 이와는 성격이 강직하고 늠름한 여성으로 자신의 추한 모습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자신으로 인해 이에몬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한다. 이 둘을 보면서 가장 마음 졸였던 것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 시대라면 속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했겠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서로 그러하지 못했다. 그런 오해가 쌓인 데다가, 남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비열한 오사키테구미 요리키 이토 기헤이의 계락에 결국 둘은 갈라서게 된다. 원래 이와를 신부로 맞이하고 싶어했던 기헤이는 어쩌면 그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이에몬과 이와의 사이를 이간질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기헤이의 첩으로 살고 있는 우메가 이에몬에게 남다른 정을 가지고 있어, 기헤이의 이간질을 못본척 했던 것도 이에몬과 이와가 갈라서게 된 원인 중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메도 어찌보면 가련한 여인이다. 하지만 방법이 나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런 결말을 맞이한 건 자업자득이었다. 이와가 떠난 후 우메를 받아들인 이에몬은 자신의 핏줄도 아닌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하고 있었는데, 결국 우메는 그 마음을 배신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와는 자신만 떠나면 이에몬이 행복해질거라 굳건히 믿었건만, 실상은 달랐다. 다쿠에쓰와 나오스케 곤베에에게 모든 진실을 들은 이와는 광기에 물들어 귀녀로 변해 종적을 감춘다. 그런 이와를 기헤이는 요괴라 하여 이에몬에게 직접 벨 것을 요구하는데... 

이와와 이에몬, 기헤이와 우메외에도 나오스케와 그의 누이 소데, 안마사 다쿠에쓰 역시 요쓰야 괴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소데는 기헤이가 저지른 짓의 피해자로 결국 목을 매어 자살하고, 나오스케는 자신의 누이를 그렇게 만든 기헤이 일당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렇게 보면 모든 사건의 배경에는 기헤이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이와와 이에몬을 결국 헤어지게 만든 것도, 소데가 자살을 하게 된 것도, 우메가 곡절많은 삶을 살게 된 것도 기헤이의 탓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시대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에도 시대는 철저한 신분사회이자, 사무라이가 그 신분제의 상층에 존재하던 시대이다 보니 상가는 무가와는 견줄 수도 없는 비천한 신분이었고, 그렇다 보니 기헤이가 상가의 딸인 우메나 의원의 하인 신분인 나오스케의 누이에게 손을 함부로 대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또한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쯤으로 치부하던 시대였고, 사람 목숨 역시 파리 목숨으로 여겼던 시대였던 만큼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을 거라 여겨진다. 그런 사무라이들과는 다른 심성 고운 이에몬은 확실히 두드러지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요쓰야 괴담과는 달리 요괴나 요물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웃는 이에몬』은 인간의 욕망과 집착,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어둠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으로 변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요괴보다 인간의 마음에 깃든 어둠이 더 무섭다. 악의로 똘똘 뭉친 기헤이, 이에몬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와의 마음을 모른척한 우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누이를 팔아 넘기는 의원,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의 얼굴마저도 망가뜨린 나오스케 곤베에 등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악의로 가득찬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 때문에 결국 이에몬과 이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에몬과 이와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너무 위하고 배려한다고 생각했기에 그토록 사랑함에도 붙잡지 못하고 손에서 떠나보냈으니 말이다.  

제목인 웃는 이에몬의 뜻은 이야기의 결말부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또한 사라져버린 이와를 그리는 이에몬이 그후 어떻게 행동했고, 그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면 그 사랑이 정말로 깊고도 깊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몬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 생각했던 이와, 그리고 이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이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던 이에몬. 이 둘의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한동안 내 가슴에 잔향를 남겨놓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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