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서 1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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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의 판타지는『이코 - 안개의 성』이후 처음이다. 원래 판타지란 장르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유명 작가의 판타지 소설은 종종 보는 편인데, 솔직히 말해서 미미여사의 판타지는 미미여사의 특기인 사회파 추리소설이나 에도 시대물에 비해 그 재미는 좀 덜한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판타지란 장르답게 세계관도 현실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르고, 설정 자체도 무척이나 달라 그러한 것들을 이해하면서 읽어야할지, 아니면 그냥 읽으면서 지나쳐야 할지도 난감할 때도 많다.『이코 - 안개의 성』은 배경 모두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공간이었다. 그래서 막연히 판타지란 생각만으로 읽었다면, 이번에 나온『영웅의 서』는 그것과 느낌이 좀 달랐다. 프롤로그는 전형적인 판타지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모리사키 유리코의 모빠 히로키가 어느날 급우 2명을 칼로 찌르고 사라져 버렸다. 한명은 사망, 한명은 중태. 평소 모범생이었던 오빠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사건 발생 후 10일이 지나 유리코는 오빠 방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책이었다. 그 책은 유리코의 오빠 히로키는 영웅에 씌었다고 말한다. 영웅에 씌어 그런 범행을 저지른다? 당연히 유리코 입장에서는 그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영웅들은 세상을 구하는 존재이지, 함부로 다른 이를 살상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리코는 책의 도움을 받아 히로키가 처음으로 영웅의 서라는 책을 찾아낸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 있는 책들은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이야기들이었다. 책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것이 일어난 장소인 <이름없는 땅>으로 건너가게 된 유리코는 그곳에서 무명승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웅과 황의를 입은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오빠 히로키가 황의를 입은 왕을 감옥에서 탈출시킨 최후의 그릇이란 것도 알게 된다. 오빠를 구해내면 황의를 입은 왕의 힘이 그만큼 사라지고, 황의를 입은 왕은 다시 이름없는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소녀인 유리코가 감당하기엔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무겁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난감했던 부분은 역시나 판타지 냄새가 풀풀 풍기는 용어들이다. 테두리, 죄업의 대륜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읽으면서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테두리는 인간의 문명, 죄업의 대륜은 이야기의 생성과 회귀, 또다른 모습으로의 재생을 의미한다. 하나의 존재이지만 양면성을 가진 영웅과 황의를 입은 왕은 세상이 원하는 영웅의 모습과 개인이 만들어낸 영웅심 정도로 이해를 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유리코의 오빠 히로키가 숭배하는 것은 황의를 입은 왕이었으니까. 

"사람이 살아 있는 것 뿐이라면, 얼마만큼의 위업을 달성하는 그건 단순한 사실에 지나지 않아. 생각하고, 말하고, 회자됨으로써 비로소 '영웅'은 탄생하지. 그리고 생각하고, 말하고, 회자되는 것, 이 전부가 이야기다."  (118p)

책은 이야기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진 존재이다. 따라서 이야기가 모든 것의 시초이다. 이야기가 생성되고 회귀하는 죄업의 대륜은 이야기의 소멸은 없다고 한다. 인간이 잊고 산다고 해서 소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인간 세상으로 나가기도 하고, 인간 세상에서 돌아오기도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그 중에서 영웅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핵심인 것이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이미지 속의 영웅들은 괴물을 무찌르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전국시대처럼 세상이 복잡하던 시대에는 권력을 잡는 이가 영웅이 되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그런 영웅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즉,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개인적으로 그 사람을 해하는 것으로 영웅이 성립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히로키가 저지른 사건은 영웅의 이면, 즉 영웅심의 발현에서 생겨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히로키는 왜 영웅에 홀리게 되었고,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유리코는 오빠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면서 오빠가 가족들에게 감추고 있던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오빠가 겪었던 고통, 그것은 오빠가 영웅에 홀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이었다. 히로키는 영웅의 서의 사본인 엘름의 서를 읽고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였다고 해도.  

말을 하는 책, 이야기의 힘, 마법, 어른들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이름없는 땅, 무명승, 황의를 입은 왕 등은 판타지의 기본 요소를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실제로 이 책은 현실의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가족이면서도 알아 주지 못했던 히로키의 고통과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된 배경은 모두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리코는 오빠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인을 받은 자'가 되어 이름없는 땅에 가고, 마법을 이용해 현실로 돌아와 오빠의 행적을 추적하지만, 그것 역시 판타지적 요소를 다 걷어내고 본다면 오빠를 이해하고 오빠의 고통을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영웅의 본체가 감옥을 탈출해 황의를 입은 왕이 인간 세상에 출현했다는 것은 현대 사회가 그만큼 어둠에 물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황의를 입은 왕의 힘의 근원은 분노, 이 세상은 그만큼 분노로 가득하다는 이야기는 아닐까. 그래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난다. 황의를 입은 왕은 그런 힘을 통해 세상에 나왔고, 그것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어설픈 영웅심리로 이어진다. 하지만 또다른 면에서 보자면 히로키의 영웅심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명하게 되었을때 스스로가 그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권의 마지막 장면은 유리코에게 다가오는 어떤 위협을 상징한다. 이제 유리가 된 유리코는 과연 그 위험에서 벗어나 오빠를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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