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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의 탄생 - 일본 서스펜스 단편집
사카치 안고 외 지음, 이진의.임상민 옮김 / 시간여행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에 나오는 스릴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마음을 졸이는 느낌이며, 한글로는 긴장감이나 전율이란 단어로 바꿀수 있다고 나온다. 그렇다면 작게 씌어진 서스펜스의 뜻은 뭘까. 서스펜스는 불안감과 긴박감이란 뜻을 가지는데, 어찌 보면 두 가지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스릴과 서스펜스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해서 무척이나 많은 기대를 안고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내게 어떤 전율과 긴장감을 안겨줄까?
총 7편의 작품은 국내에서는 잘 만나볼 수 없는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작가는 도구라 마구라의 작가인 유메노 큐사큐, 그리고 불연속살인의 사카구치 안고 두 명 뿐이다. 사카구치 안고의 작품은 불연속살인사건을 읽은 적이 있지만, 아직 유메노 큐사큐의 도구라 마구라는 아직 읽지 못했기에 쇠망치를 통해 그의 작품의 경향이 어떠한지 살짝 엿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야마 요시키의 시체를 먹는 남자와 히사오 주란의 곤충도는 아주 짧은 단편이며, 괴담이나 기담으로 봐도 좋을 듯 하다. 다이쇼 시대 초반, 한 중학교에서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에 관한 이야기로 제목이 작품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그런지 긴장감은 좀 없었던 편이랄까. 곤충도의 경우에는 인간이 사망한 뒤에 찾아드는 벌레들의 순서를 소재로 해서 만든 단편이다. 지금은 법의학이란 것이 잘 발달되어 이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일반인이 그 순서를 읊어준다. 왠지 그게 더 섬뜩하달까. 두 편의 작품을 읽어보면 요즘의 괴담과는 좀 다른 맛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좀 약하다 싶은 생각이랄까. 하지만 시체를 먹는 남자가 1927년, 곤충도가 1939년에 씌어진 작품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당시 사람들에겐 꽤나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유메노 큐사큐의 쇠망치는 아버지가 악마라 부르던 남자인 숙부와 함께 살게 된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의미에서 보면 숙부같은 정도의 남자는 악마 축에도 못끼겠지만, 1920년대에 씌어진 작품이란 걸 감안한다면 숙부는 악마에 버금가는 존재였으리라. 한 집안을 파멸로 몰고 갔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소년은 숙부밑에서 얌전하게 자라난다. 이 소년의 성장담이 주된 내용인데, 어떤 사람이 진정한 악마인지를 되짚어 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진정한 악마란, 자신을 악마라고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일컫는 것이다. 스스로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 채, 사람들의 행복과 생명을 갖가지 방법으로 잔인하게 부정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백주 대로를 활보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악마다.
그러니까 진정한 악마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존재하는 것이다. (46p)
작품의 결말을 보면서 나는 앞에 나온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연 이 조건에 합당한 사람은 진정 누구였는지....
고가 사부로의 함정에 빠진 인간은 어찌 생각해보면 잔혹 코믹극같다. 빚에 시달리던 부부의 각각의 행동,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 과연 진짜 함정에 빠진 인간은 누구일까.
운명이란 놈은 언제든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어. 그게 인생이야. (138p)
와타나베 온의 승부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둔 형제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싸움이라고 해도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같은 것이랄까.
사카구치 안고의 가면의 비밀과 오사카 케이키치의 등대귀는 탐정이 등장하거나 탐정과 비슷한 인물이 등장해서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추리 소설이다. 살인 방화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맹인안마사라는 설정을 가진 가면의 비밀은 목격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고 든다. 물론 맹인이라는 것 때문은 아니고, 사람들이 흔히들 착각하는 자신의 감각에 대한 반박이랄까. 등대귀는 한적한 등대에서 일어난 사망 사고를 다루는데 처음에는 괴담분위기로 나가지만, 후반부로 접어 들면서 추리가 중심이 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괴담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서 밍밍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1920~30년대에 나온 작품이란 것을 감안해 본다면, 그리고 이 작품들이 일본 추리 소설 역사의 시발점에 있는 작품이란 것을 감안해 본다면 그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