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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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교양과목 수강 중에 광고에 대해 그룹 발표를 할 일이 있었다. 아마도 사회대학에서 들었던 강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만 해도 광고란 굉장히 직설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때 주제로 잡은 것은 광고 속에 숨겨진 성적 메세지 같은 것이었는데, 조사를 하면서 헉! 하고 놀랄 정도로 은근한 메시지가 들어가 있는 것이 많았다. 그 외에도 내가 기억하는 광고에서는 전자 제품이라면 기능을 강조하고, 먹거리라면 그 맛을 강조하는 등의 광고랄까. 또한 외국 배우나 가수를 데리고 와서 찍은 광고도 한때의 붐이었다. 그때는 무척이나 멋진 광고였다고 생각하던 광고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뭐랄까 참 촌스럽고 애매했다. 어떻게 보면 광고란 상품을 팔기 위한 선전의 목적으로 쓰였던 것이니 기능이나 맛을 강조한 광고가 많았다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광고가 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표현이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지 광고랄까. 기업의 이름같은 것을 전면으로 내세운 광고가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극대화 하는 광고들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광고란 것은 시쳇말로 그 나물에 그 밥이었기에 별로 관심도 두지 않고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리기 일쑤였지만 그 광고들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광고가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박웅현 ECD가 만든 광고였다. 와우, 그랬구나.

우리는 영화를 보면 영화 감독을 떠올리지만, 광고를 보면서 광고를 만든 사람을 알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몇 십초에 휘리릭 지나가는 광고는 그때그때의 감탄을 자아낼 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처럼 골라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인상에 남았을지라도 금세 잊게 되지만 그래도 좋은 광고였다는 여운만이 약간 남는 정도랄까. 광고란 것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여운을 남기는 것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광고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광고란 것은 창의성이나 창조성이 필요한 일이란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예전에 카피라이터를 등장인물로 내세운 영화를 봤을 때, 나도 저런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동경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면에서 창의성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냥 동경으로 끝내버렸다. 그럼, 창의성이란 것이 광고를 만드는 사람에게만 필요할까? 물론 그것은 아닐 것이다. 창의성이 필요한 것은 문화 예술 전반을 아우른다. 과학이나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답을 요구하는 쪽이 아닌 감성을 자극하는 분야는 창의성이 기본이라 생각한다. 문학 작품, 그림, 음악 등은 모두 창의성을 요구한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창의성이란 특정 분야의 사람들이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 관점을 좀 달리해서 보자면, 창의성이란 문화 예술적인 분야에서만 발휘되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생활에서도 창의성이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를 남들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깨끗하게 하는 법도 창의성이 필요할 것이고, 그릇을 예쁘게 쌓는 방법이라든지, 똑같은 물건을 가지고 더 예쁘게 집을 꾸미는 법이라든지 하는 것에서도 필요한 것은 창의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창의성이란 우리의 삶의 전반을 지배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범위가 너무 넓어지니 이 책은 범위를 한정해서 광고를 중심으로, 박웅현 ECD의 창의성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게 최고로 발현된 것이 박웅현 ECD가 만든 광고들이다.

그럼 박웅현 ECD는 타고난 광고쟁이일까?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창의성이란 것을 발현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련을 쌓았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가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한다. 창의성의 원천은 인문학적 소양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그 지향점은 지켜야 할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적이라는 말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가치지향적이라는 뜻이 된다. (153P)

광고를 비롯해 예술적 활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향하는 것이다. 예술가 혼자 좋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작품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공감하고 즐기고 좋다고 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 대해 잘 아는 것이 필수이다. 사람에 대해 잘 알려면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는 것에는 나도 공감한다. 긴 시간의 역사가, 수많은 사람의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 있는 것이 책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박웅현 ECD가 만들어 내는 광고는 사람을 알고 사람을 위해 만든 광고이다. 그가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사람과의 소통의 기술 역시 중요한 것이라 한다. 이 역시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시대를 잘 읽는 것, 그러면서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창의성과 관련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시대를 잘 읽는 것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 낸다는 것이고,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다른 가치를 끌어낸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박웅현 ECD가 만든 광고를 예로 들면서 박웅현 ECD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광고라는 것을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니 좁게 보자면 광고를 만드는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도 들수 있을지 몰라도, 넓게 보자면 창의성을 키우고 창의성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소양이 무엇인지, 창의성을 어떤 식으로 뱔현할 수 있을지 그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것은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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