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뚜르 -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0
한윤섭 지음, 김진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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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이 태어나고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면 자신과 비슷한 것을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이것은 해외로 나갈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방이 고향인 사람이 서울에서 살게 되었을 때, 우연히 동향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도 반갑게 여긴다. 나도 경상도 사람인지라 한동안 서울 경기 쪽에서 살때 나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 - 여기에서는 한국어가 아닌 사투리 - 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웠다. 같은 나라에서도 그런데 해외에서는 오죽할까. 여행을 가서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이 반갑고, 한국 음식점이 반가운데, 그곳에서 살게 되었을 때는 비록 한국인이 아니라 같은 동양인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반가울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봉주도 마찬가지이다. 파리에 살다 뚜르로 이사온 봉주는 이사 첫날 책상 한 켠에 씌어진 한국어를 보고 무척이나 반가움을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씌어진 글귀가 너무나도 비장해 그 글을 쓴 게 누군지 궁금해진다. 집주인인 듀랑 할아버지에게 물어 봐도 그곳에는 한국인이 산 적이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그 글을 남긴 걸까. 봉주는 그 글을 쓴 사람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 먹는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같은 반에 동양인 아이가 있다. 봉주는 그 아이가 한국인이고 아니고를 떠나 같은 동양인이란 자체로 반가움을 느끼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은 토시, 일본인이다. 봉주는 토시와 친해지고 싶지만 의외로 토시는 봉주를 껄끄럽게 대한다. 게다가 한국의 역사를 발표하는 수업 시간에 토시는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봉주에게 시비를 걸 듯 질문을 던진다. 토시는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봉주는 프랑스에서 3년을 살았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란 것을 결코 잊지 않으며, 프랑스보다 한국을 더 좋아한다. 요즘처럼 금세 외국 생활에 물들어 바뀌어 가는 아이와는 조금 다르다. 그건 봉주가 처음 토시를 봤을 때 노란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보면서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는 건 정말 유럽이라는 염색약 속으로 뛰어 드는 느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엄마와 산책을 하면서 '이제는 한강이 더 좋다고 할 나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렇다 보니 봉주는 토시에 대해 반가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이질감을 함께 느낀다.

토시와 친해지려 노력을 하는 한편, 그 글을 쓴 한국인을 찾고 있을 때, 때마침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준원이 뚜르에 놀러 오게 되고, 봉주는 책상 한 켠에 씌어진 글귀에 대해 준원에게 이야기를 한다. 호기심이 생긴 준원은 봉주와 함께 수수께끼 풀이에 나선다. 둘이서 우연히 들른 아랍인 가게에서 들은 묘한 이야기. 점원은 일본인 가족이라 이야기하지만 주인 아저씨는 한국어를 쓰는 가족 이야기를 한다. 또한 듀랑 할아버지는 봉주네 가족이 살기 전에 살던 일본인 가족이 여전히 뚜르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조금씩 수수께끼의 실마리가 보이고, 준원과 봉주는 수수께끼의 중심으로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봉주의 호기심은 의외로 큰 난관과 부딪힌다. 바로 자신이 호기심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봉주가 찾던 글의 주인과 자신의 집에 살던 일본인 가족, 그리고 토시의 가족이 전부 같은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토시의 가족은 일본 이름을 쓰고 일본어를 쓰는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원래 국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다. 토시의 가족은 일본에서 프랑스로 온 후 반쯤 숨어지내는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일본인처럼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봉주는 토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조선족이 사는 나라쯤으로 생각한다. 북한이라고 하면 알지만 원래의 국명은 알지 못한 것이다. 봉주는 이제껏 북한에 대해서는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 핵무기, 가난 등의 이미지밖에 없었지만, 토시가 북한 사람이란 것을 알고 북한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과연 어른이었다면 이런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예 처음부터 글귀 따위엔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 글을 쓴 한국인을 찾을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만약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북한 사람이라면 아예 모른척을 했을 수도 있다.

난 삼십대 중반이다. 그럼에도 난 내 조국이 분단 국가란 것을 느낄 때는 일상에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몇 십주년 기념 방송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북한 문제가 거론될 때야 비로소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였지, 라고 생각할 뿐이다. 하나의 국가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은 분단으로 생겨난 이산가족과 그 시절을 살아왔던 사람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세대는 이제 점점 줄어들어 앞으로 일이십년만 지나면 그들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머릿속으로는 분단국가란 것을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그것이 원래 그랬다는 듯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봉주같이 어린 아이들은 오죽할까.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원래 하나의 국가요, 하나의 민족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지도 모른다. 

봉주 역시 토시를 만나지 못했다면 북한에 대해, 그리고 현실의 분단 상황이란 것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봉주는 토시를 만났고,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상황이 이 아이들을 갈라 놓는 계기가 된다. 아이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할 미묘한 정치적 상황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둘은 이미 친구가 되었는데, 동무가 되었는데... 비록 다시는 못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같은 하늘을 보고 같은 공기에서 숨을 쉰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아동문학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분단 문제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봉주에게 있어 한반도의 분단은 과거의 역사적인 일이고 자신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북한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토시를 만남으로 해서 분단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이고, 그런 문제는 언제든 맞딱드릴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프랑스 사회의 이민자 문제나 유럽인이 동양인을 대하는 시각에 대한 것도 간간히 드러난다. 특히 일단 동양인이라면 무조건 일본인이라 생각하는 것, 잘사는 사람은 일본인 못사는 사람은 중국인이라 생각하는 것, 한국인은 중국어를 쓴다는 생각 등은 유럽에서 한국이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 뚜르에 이사온 봉주가 자신의 방 책상 한 켠에 씌어진 글귀를 쓴 사람이 누군지를 밝혀 가는 추리적 요소가 흥미를 더하는『봉주르, 뚜르』는  한국의 분단 문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아픔을 겪는 것은 분단으로 생겨난 이산 가족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분단이란 것은 여전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와는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1980년대 중후반이었는데, 학교에서는 반공 영화를 감상했고, 아이들이 산에 떨어진 불온 삐라를 주워오면 상으로 공책을 줬고, 반공 글짓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간첩신고는 ○○○이라는 글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고, 평화의 댐 모금운동도 열렸었다. 참 날카로운 세상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북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북한과의 관계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그들은 낯설고 먼 존재이다. 이 책은 그런 낯섦을 많이 희석시켜주고 있으며 여전히 존재하는 분단 국가의 아픔을 에둘러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은 남한 아이과 북한 아이의 만남과 우정이란 이야기를 통해 우리 마음 속으로 한결 부드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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