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김유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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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인생을 살아 가면서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세상과 만나 죽음과 동시에 세상과 이별한다. 사람이나 그밖의 존재와의 만남과 이별 중에는 따스하고 아련한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아프고 쓰라린 것으로 기억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너무 아파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고 꼭 죽을 것만 같았던 만남과 이별도 있을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히고 퇴색되어 그저 하나의 기억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책의 주인공은 스물 여섯의 청년 K이다. 그는 쿨하고 모던한 부모님 밑에서 평범하게 자랐다. 얼마전까지는 수입은 많지 않지만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S란 여성을 사랑했다. 하지만 어느 날 S는 알 수 없는 이야기만을 남기고 K를 훌쩍 떠나 버린다.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K는 직장을 그만 두고, 몇 달을 폐인처럼 살아간다. 그때 찾아온 고양이 한 마리. 아주 익숙한 듯 베란다로 들어온 고양이는 사라다 햄버튼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녀석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녀석은 단지 잘생긴 도둑고양이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사라다 햄버튼이란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비로서 녀석은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14p)

사람들에게 이름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남들과 구별되기 위한 목적으로 이름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 이름이 그 사람 자체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K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였다는 건, 자신의 마음 한 켠을 내어준다는 인증이나 마찬가지이다. 

K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사망했고, 아버지는 그보다 훨씬 전에 캐나다에서 재혼했다. K의 아버지는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K의 아버지이다. 물보다 진한 게 피라고는 하지만, 정은 그보다 더 진하달까. K가 사라다 햄버튼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도 아마 정이란 것 때문이었으리라.

K는 평범한 이 시대 청년이다.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진학했었고, 그렇게 취직했다. 사랑을 했고, 이별도 했다. 그 이별의 아픔이 너무나도 커 방황도 했다. 자주 가는 가게의 R이란 여대생에게 호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K는 누군가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곁을 잘 내어줄 줄을 몰랐다. S에게도 마찬가지이고, R에게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깨닫지 못했고, 나중이 되어서야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그건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가까운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우리는 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에게 더 무심할까. 그건 아마도 언제나 그자리에 있을거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닌 타인들과의 관계는 쉽사리 깨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신경을 더 많이 쓰고, 가족은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변함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가족과는 가장 아픈 형태로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죽음이라는...

K는 일시 귀국한 아버지와 재혼한 아내 나타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고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 조금씩 깨달아 간다. 자신이 몰랐던 부모님의 과거의 모습은 자신과 어쩌면 무척이나 닮아있었으리라. 우리는 부모님의 존재를 인식할 나이가 되면서부터 그저 부모님이란 존재만으로 인식한다. 자신처럼 어린 시절도, 학창시절도, 사랑에 애태우던 시절도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님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도 막상 이야기를 들으면 낯설다. K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친부가 따로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는 당사자에게 듣지 못하는 이상 알수가 없기 때문이다.

K와 S의 이별, 그리고 사라다 햄버튼의 출현,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비밀스런 이야기는 K의 부모와 친부 사이의 이야기만큼이나 비밀스럽다. 하지만 여기에서 부모님 세대의 비밀은 밝혀지지만, S와 사라다 햄버튼, 그리고 사라다 햄버튼의 반려인인 PK의 이야기는 비밀에 부쳐진다. K는 S가 그 대답을 해줄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독자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게 결말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별의 이유란 것은 우리 생각보다 덜 중요하기 때문이고, 이별은 인생에 있어서의 순환의 한 과정이기 때문은 아닐까. 오히려 새로운 만남과 새로 걸어 가야 할 길에 더 집중해야 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이별은 과거이고 폐쇄된 길인 반면, 새로운 만남과 미래는 열린 길이니까. 그렇다고 과거를 싹 무시하고 살라는 것은 아니다. 그 과거에 집착하는 것을 그만두란 이야기이다. 과거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만큼 바보같은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이 책은 요즘 젊은이들의 일, 사랑과 이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 인생과 사람과의 관계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하고 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에 때로는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당시에는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들 것 같아도, 더 이상 이런 인연은 없을 것 같아도 그 때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 큰 고비는 몇 변이나 찾아 온다. 때로는 한번에 몰려서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그 다음에 찾아올 행복이 더 소중하고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K는 자신의 틀안에 갇혀 자신의 세상 바깥쪽은 살펴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 그가 바깥으로 눈을 돌린 순간, 그 밖에는 더 큰 세상이 열려 있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드러나는 모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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