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아리카와 히로의 작품은 몇년전, 『도서관 전쟁』이란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 물론 책으로 읽은 것은 아니었고, 애니메이션을 통한 것이었다. 그 동기는 - 좀 불순하지만 - 내가 좋아하는 성우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그 불순한 동기 때문이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성우는 7, 8회에만 나왔다. 단역으로. 음, 그러니까 그 성우는 이노우에 마리도 아니고, 스즈키 타츠히사도 아니고, 이시다 아키라도 아니고, 오노 다이스케란 말씀. 어쨌거나 처음에는 언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면서 보다가 결국 스토리에 푹 빠져들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번에는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이다. 이 책을 받고 책 날개를 보기 전까지는 『도서관 전쟁』의 작가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책 날개를 보고, 앗!하는 말만 했을뿐. 『도서관 전쟁』이 워낙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었던지라 이 책에도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천천히 이야기하자, 급할 것 없다.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는 25세의 다케 세이지란 청년의 취업 성공기와 붕괴된 가족의 재생이란 내용을 담고 있다. 세이지는 이류대학 문과대 졸업, 첫직장은 석달만에 때려치고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살아가는 청년이다.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증 달랑 하나. 그런데도 뭐가 그리 잘났는지 금세 취업할 수 있을거란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요즘 청년답게(?) 끈기도 없고 열정도 없고, 아르바이트도 대충대충, 아버지는 무서워하면서도 어머니에게는 막 대하는 정말 못난 아들이다. 그렇게 몇년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가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병이었다.

다케 세이지의 취업 성공기를 보면 꿈같은 동화같다. 아무 능력없고 끈기없던 청년이 야간에 공사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사무직 직원으로 발탁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잘 잡아가는 이야기니까. 풀려도 참 잘풀린다. 또한 취업이 어려울 경우 아버지의 소개라는 방법도 존재한다! 물론 이렇게만 보면 정말 동화가 따로 없군, 이라는 말이 나올테지만, 이 책이 현실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다케 세이지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고용지원기관에서 홀대를 당하는 것을 보면 남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 직장이든 취직만 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 나 정도야 취직 걱정 없지라는 오만한 생각, 언젠가는 취직되겠지, 라는 태만한 생각 등은 내 심장에 직격탄을 꽂았다. 어질어질하다. 물론 나야 사무직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긴 했고, 능력제로 월급을 받는 특수 직종이긴 했지만, 지금 재취업을 하라면 할 수 있을까. (한숨)

이 책은 이런 백수 청년의 취업성공기만으로 읽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더 무게가 실린 것은 해체되고 붕괴된 가족이 화해와 이해의 과정을 거쳐 다시 한가족으로 태어나는 이야기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무심한 아들을 둔 어머니는 사실 동네에서 왕따 취급을 받았다. 그걸 이십년동안 혼자 삭여 오던 어머니가 드디어 그 한계에서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 결과가 어머니의 중증 우울증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기적인 성격답게 그건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핀잔이나 주고, 아들인 세이지 역시 처음에는 조금만 지나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돌보게 되면서 어머니가 얼마나 큰 짐을 지고 살았는지, 그게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보통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는 무서워하고 엄마는 편하게 대한다. 여기서 편하다는 것은 만만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서열로 따지고 보면 어머니는 가장 하위에 존재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집도 있겠지만) 세이지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보니 가족들의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것도 어머니의 몫이요, 동네에서 왕따 당하는 수모를 감당해야 하는 것도 세이지의 어머니 몫이었다. 세이지는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존재를 어느새인가 가장 만만한 존재로 치부하고 막 대했던 것을 반성하는 한편, 무서워서 늘 피해다녔던 아버지와의 화해도 시도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세이지의 못된 버릇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불쑥 옛날 버릇대로 엄마에게 욱하고 대들기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못된 녀석!)

우리 집에는 아들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나온 세이지는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대하기 어려워하는 한편, 반발심도 함께 가지고 있다. 대화라고 해도 일상적인 것 몇 마디, 이렇다 보니 엄마의 병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시비가 붙을 수 밖에 없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둘 다 잘못한 거 투성이인데, 서로 비난하는 것은 세이지나 아버지나 똑같다. (내가 보기엔 둘 다 똥 묻은 개라구!) 어쨌거나 세이지는 엄마의 병수발을 들면서, 구직과 직장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아버지와 화해하기를 시도한다. 즉,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취업 성공 이야기와 가족의 화해와 재결합을 다룬 이 책은 한편으로는 동화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취업과 관련한 문제는 파도를 잘 타니 절로 배가 잘 가더라, 는 것처럼 무난했기에 좀 동화같은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전의 구직활동에 있어서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현실적이어서 공감이 많이 갔었다. 그리고 역시 가슴 찡한 것은 가족의 화해와 이해, 재생이란 부분이었다. 사실 여기에서는 내 집 장만기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만, 세이지가 3년간 마련한 돈은 집 계약금 정도이고, 나머지는 2세대대출로 충당한다. 그런데, 왜 내 집 장만기냐고? 여기에는 다른 의미가 있다. 집을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 산 집은 해체된 가족의 재결합과 행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프리터, 집을 사다>이다. 프리터란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일본의 젊은층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우리나라와는 아르바이트의 개념이 사뭇 다른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만 해도 - 평범한 아르바이트라도 - 한달에 2~300만원은 벌 수 있다. 이러니 굳이 취직을 하지 않고, 프리터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정규직이 아닌 이상 그정도로 벌지도 못하고, 늘 막대한 업무 스트레스와 해고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고용불안정, 얼어 붙은 취업시장, 20대 백수, 가족 붕괴와 같은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과 참으로 많이 닮아있다. 프리터 문제만 빼면. (세이지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 내고, 저금이 가능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불가능!) 아, 하나 더. 일본은 버블 붕괴후 집값이 폭락했다. 물론 도쿄는 비싸지만, 그외에는 우리나라보다 집가격이 좀 저렴한 편이다. 우리는 세이지처럼 일해서는 절대 내 집 장만 못한다. 이렇듯 일본과 한국이라는 나라의 차이점도 존재하지만,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세이지네 집 이야기가 바로 우리 집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리라. 또한 주인공과 주인공의 가족이 잘 되고 행복해지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 가는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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