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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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을 살 때 누군가 써놓은 리뷰를 참고하는 일이 별로 없다. 또한 내가 어떤 책의 리뷰를 써야할 때도 다른 사람이 써 놓은 리뷰를 잘 읽지 않는다. 그건 내가 똑똑하기때문도 아니고, 그 사람보다 리뷰를 더 잘 쓰기 때문에도 아니다. 아직 책을 읽고 리뷰(혹은 독후감)을 쓴다는 것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혹시라도 먼저 쓴 사람의 리뷰를 읽고 내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누군가의 생각을 모방하게 될까 겁이 나서 그러는 것이다. 

장정일의 독서 일기 빌린 책 / 산 책 / 버린 책은 내가 처음으로 읽어본 저자의 책이다. 저자에게는 이미 여덟번째이지만... 사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자의 책이라곤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선 꽤 유명한 모양이지만, 난 유달리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큰 카테고리 네 개로 나뉘어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나름의 분류를 하고자 해봤지만 역시 무리인듯 싶어 그냥 마음속으로 이런이런 책에 관한 것이라고 대충 정의를 내려버렸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책들은 대부분 인문학도서이고, 문학은 거의 없다. 나처럼 문학 편식주의자 - 특히 장르문학- 에게는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었달까. 물론 인문학도서를 읽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내 관심의 밖에 존재해왔다. 안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더 복잡해지긴 싫어, 라는 변명이었을까. 대학교때 역사를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책 보는 걸 참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 이상의 변명거리가 없다. 

난 책을 주로 사서 읽는 편이다. 물론 어릴 때는 부모님이 사주신 책이나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때때로 설세뱃돈 같은 용돈으로 부모님이 사주시지 않을 책 - 이미 난 초등학교때부터 추리 소설 광팬이었다 - 을 사서 봤다. 아마 내 독서습관은 그때부터 이어진게 아닐까 싶다. 내 독서 습관 - 이라고 말하기엔 좀 부족하지만 - 은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빨리 읽는 것이다.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책은 너무나도 많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만 골라 읽어도 허덕허덕할 정도니까. 그래서 난 무겁고 딱딱한 책보다는 가볍고 잘 읽히는 소설류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도 엄청 빨리 읽는 건 아니다. (시간당 약 200페이지) 그런 나의 소원은 속독이 가능한 정독이랄까. 좀 웃기지만 책 읽는 것에 있어서 나의 간절한 소원은 바로 그런 것이다. 

책을 빨리 읽고자 덤비는 사람은 효율과 생산이라는 현대적 방식의 삶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고, 느리게 읽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은 효율과 생산 너머의 무엇엔가 몰두하는 사람일 테다. (49p)

난 책을 빨리 읽고자 덤비는 사람 중의 하나이니 나는 효율과 생산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난 이 말에 살짝 반박하고 싶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효율과 생산 너머의 무엇엔가 몰두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다는 건 하루 중 몇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고, 그 몇 시간이면 몇 가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출판사 서평이나 인터넷 뉴스의 책소개, 수많은 사람들의 독후감, 책 소개 티비 프로그램들이 넘쳐난다. 정말 효율과 생산성을 따지자면 그런 것만 훑어 보고 나 저 책 읽었네, 라고 하는 것일테니 말이다. 그저 나의 생각이다. (금방 꼬리 내리는 1人)  

물론 이 경우에는 다치바나 다카시같은 사람의 경우를 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는 300쪽 책을 5분에서 10분 사이에 읽어내는 사람, 그리고 문학 작품을 아예 읽지 않는 사람이다. 정말 가히 놀라운 속도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정보를 얻기 위해 그리 읽는 사람이니 위에 언급한 문장에 딱 들어 맞는 사람은 바로 이런 경우이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나처럼 책욕심이 많은 사람의 경우엔 약간 찔리긴 한다. 때로 너무 욕심내서 무리해서 읽다가 나중에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하는 것도 다 까먹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척 흥미로웠던 것 중의 하나는 인쇄 문화와 책 문화란 것이었다. 난 대부분의 책은 선하다고 믿는다. 어른들 책이든 아이 책이든 만화든 잡지 등 자신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책이라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 '어떤' 책을 읽다가 뭐 이딴 게 다있어, 라고 분노하면서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많다. 게다가 베스트셀러는 출판사의 상술이요, 그것보다는 그래도 스테디셀러가 낫지 않나 하는 소극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남들이 감동받았다라는 책을 구해서 읽으면서 때로는 나와 맞지 않아 - 실은 뭐 이딴 책으로 감동을 받았다는 거야- ,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리뷰를 쓸 때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해서 쓰기도 한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다가 안티책 소위 잘 나가는 작가의 '찌라시'라는 표현에 푸핫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런 표현은 역시 나같은 하수는 절대 쓰지 못할 표현이고, 금기시되는 표현이지만 이렇게 씌어진 걸 보니 통쾌하달까.

또다른 공감은 헌책방과 문고판 서적에 대한 내용에 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다 보니 책 자체보다는 책 문화란 것에 더 흥미를 느끼고 이 책을 읽었다는 티가 나긴 하지만 하여간 난 그렇다. 난 새책을 주로 사서 읽는다. 일단 질러보고 좋아하는 타입인 것이다. 도서관에 가려니 귀찮고, 다른 사람 리뷰는 읽지도 않고, 그렇다보니 늘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골라 본다. 하지만 때로는 인터넷 중고서점을 뒤지다 꽤 괜찮은 물건을 건지기도 한다. 일단 가격이 저렴해서 좋고, 절판된 책을 찾을 수 있어서 좋으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게 바로 중고서적의 매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도시에는 중고서점이란 이젠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서점도 축소되고 없어지는 판에 중고서점이 있을턱이 없지. 그래서 서울이나 부산처럼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참 부럽다.

글을 숭앙했던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 책은 사용가치만 아니라 만만찮은 상징가치를 가진 물건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본말이 전도되어 정작 책의 내용이 거론되거나 독서가 행해지기보다도, 그저 책의 물성을 물신처럼 숭배하는 가식도 생겨났다. 양장과 금박으로 치장된 전집물 시장은 바로 그런 유교적 과시의 산물이 아니었던가. (…) 그런데 재미난 것은, 맥락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많은 고명한 지식인들도 문고를 가리켜 '지식의 인스턴트화' 내지는 '교양의 규격화'라고 폄하한다는 것이다. (276p)

문고판 서적은 나도 무척이나 원하는 바다. 요즘 책은 너무 크고 무겁다. 게다가 무슨 종이질이 그렇게 좋은지... 가끔 영미원서(페이퍼백)나 일본원서(문고)를 사보면 종이질의 차이, 그리고 크기의 차이에서 놀란다. 일본에서 나오는 문고판은 가격도 저렴하고 얆고 가볍다. 일본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그건 문고판이 많이 나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단행본이 나온 후 약 3년후에 문고판 서적이 나온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출판사들도 요즘 사람들은 책을 너무 안읽는다 소리를 하기보다는 문고판 서적으로 승부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사실 도감같은 책이 아니라면 책이 굳이 양장본일 필요가 있을까. (소장용이라면 몰라도)

이 책은 흥미로운 점이 무척이나 많았다. 저자의 역사 인식이나, 책 문화에 대한 의견과 비판 -특히 다른 작가들에 대한 가감없는 의견 - 등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 책에는 솔직함, 진지함, 유머러스함 그리고 시니컬함이 공존한다.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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