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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흩날리는 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드디어 기리노 나쓰오의 데뷔작이다!
이제껏 그녀의 소설들을 읽어 오면서 데뷔작은 어떤지 정말 궁금했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어둡고 악독한 악의를 그려낸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섬세하면서도 섬뜩했다. 나의 경우 아임 소리 마마로 기리노 나쓰오를 처음 만났는데, 아직도 그때의 섬뜩한 느낌이 떠오를 정도이다. 그러하기에 큰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데뷔작이란 것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내놓는 작품이며, 작가가 앞으로 진행할 책들의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당연히 내 기대는 클 수 밖에 없었달까.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간단하게 말하면 주인공 무라노 미로가 1억엔이란 돈을 들고 사라진 친구 우사가와 요코의 행방을 쫓는 스토리이다. 그 돈은 야쿠자의 돈. 게다가 요코가 사라진 날 새벽 미로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때문에 의심을 받게 된다. 결국 미로는 요코의 남자친구인 나루세와 협력하여 요코의 행방을 쫓게 된다. 기한은 일주일. 상대가 야쿠자인만큼 거부도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로는 요코의 자취를 더듬어 나가게 된다.
요코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미로는 자신의 친구 요코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원래 자존심 세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던 친구이며, 독특한 주제로 글을 써 성공했지만, 이제는 논픽션 르포 라이터 작가 데뷔를 준비했던 요코. 그 와중에 요코의 독일 취재 여행에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되고 점점 그 거리를 좁혀간다. 하지만, 요코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주인공 무라노 미로보다 친구인 우사가와 요코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녀가 몰랐던 친구의 이면. 그리고 놀라운 사실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단 몇 퍼센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특히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주기 싫은 것의 경계는 너무나도 뚜렷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히 요코의 성격상 자신의 약점은 악착같이 감추고 살아왔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요코의 행방을 쫓다 만나게 되는 여장남자 점쟁이, 암흑야회란 변태적 모임, 독일 취재와 관련된 네오나치즘, 트랜스배스타이트, 시체 사진 애호가 등은 지극히 단순할 수도 있는 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한 권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넣고 싶어했다, 라는 생각도 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마지막 반전이 남아 있다. 무라노 미로는 조사 탐정이었던 아버지 무라노 젠조가 한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정과 왜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상상력'을 동원해 이 사건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문득 요코미조 세이시같은 작가들이 자주 쓰는 '탐정은 마지막에 사건의 모든 진상을 한번에 터뜨린다'는 그런 법칙이 생각났달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책에 비해 무척이나 얌전하다. 하드보일드라고 하기엔 뭐랄까, 좀 약하달까.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아직 탐정이 아니다. 아마도 앞으로 탐정이 되어 활약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다양한 소재를 끌어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난삽하지 않다는 것과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잘 드러내는 섬세한 심리 묘사를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