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대는 사랑을 믿는가?
어느 정도는.
그대는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가?
아니요,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사랑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는 이 세상에 진실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가?
글쎄요, 때에 따라 진실해지기도 하고 거짓되기도 한 게 사랑이겠죠.

누군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다면 내 대답은 위와 같을 것이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고 산다고 해서 사랑이나 연애 한 번 안해봤다는 건 아무도 믿지 않을 일이고, 실제로는 제법 많은 사랑과 연애를 해봤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사랑의 감미로움에 연애의 달콤함에 빠져 산적도 있었고, 그 감미로움이 씁쓸함으로, 달콤함이 차가움으로 돌아서는 것도 많이 경험해봤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이란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면 난 바보일까?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사랑의 종류는 ○○가지다, 라고 정의해 놓은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건 통계적 분류에 속하는 것일 뿐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정형화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사랑일테니까. 비슷해 보여도 속사정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사랑을 하다보면 누구나 이런 고민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처음엔 함께 있는 것으로도 행복했는데 그다음엔 손을 잡고 싶어지고, 입을 맞추고 싶어지고, 안고 싶어지고, 그리고 육체적 결합을 원하게 된다. 요즘은 우리 사회도 보수적 성향에서 벗어나 티비 드라마만 봐도 꽤 진한 러브신들이 나오는 것을 자주 보게 되고, 영화는 한 술 더 떠서 섹스장면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성(性)이란 문제에 민감하게 굴기 보다는 자유롭게 연애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랑의 궁극적 완성은 두 사람의 육체적 결합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물론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섹스란 두 사람만의 내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란 것이며 마음이 열렸을 때만 허락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귀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육체적 결합이 없으면 완벽한 사랑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은 마리아란 한 여성을 등장시켜 그녀의 삶을 조망함으로써 사랑과 성(性)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마리아는 브라질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여느 소녀처럼 사랑, 연애, 결혼, 출산, 예쁜 집 등의 평범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어린 시절 첫사랑은 시작도 해보지 못한채 끝나버렸고, 그후의 연애란 것도 그녀에게 좋은 감정을 남기지 않았다. 마리아는 자신과 사랑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단정해 버리고, 그냥 시집이나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휴가차 떠난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스위스인을 만나 스위스로 건너가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삶은 그녀가 제안받은 것처럼 화려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마리아는 다시 브라질로 돌아갈까 어쩔까 하다가 결국 스위스에서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일상회화조차 할 수 없는 그녀가 돈을 벌 직장을 구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녀는 일단 스위스인에게 받은 돈으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며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모델 에이전시에 사진을 넣고 모델 제안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그녀에게 온 연락. 아랍인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대신 큰 돈을 손에 넣게 된다. 마리아는 자신이 이곳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창녀가 되는 것뿐이라 생각하고 창녀가 된다. 마리아는 오직 돈을 벌 생각을 하고, 브라질에 농장을 살 돈만 생긴다면 그곳으로 꼭 돌아가겠다고 결심한다. 그녀의 창녀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점점 그 일에 익숙해져갔고, 절대 마음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녀는 제법 돈을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한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랄프라는 한 미술가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게 되었던 것이다.

랄프는 스물 아홉에 이혼 경력 두 번의 잘나가는 화가. 마리아는 스물 세살의 창녀. 어떻게 보면 삼류 신데렐라 스토리가 나올 설정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랄프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던 삶을 살았던 탓에 사랑이나 섹스에 흥미를 잃어버린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마리아는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몸은 팔아도 마음에는 굳건히 빗장을 치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자,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이 두사람의 관계 변화에 다 담겨 있다고 보여진다. 사랑이란 것을 믿지 않거나 혹은 거부하는 사람이 마음을 열고, 사랑을 하고, 서로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하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진지한 과정을 거친다. 어쩌면 둘 다 사랑의 이면에 감춰진 쓰라림과 아픔을 알기에 그리고 진실함이 없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육체적 결합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두 사람이 결합을 원했을 때는 완벽하게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이 된 것이 아닐까. 소유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소유할 수 있는 사랑을 하게 되었다, 랄까. 

난 사랑이란 것의 속성은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의 속마음이 진짜 어떨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군가를 소유하고 싶어지고, 그 정점에 육체적 관계란 것을 위치시킨다. 하지만 때로 그런 관계에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에 생기는 허탈함이랄까. 그건 아마도 두 사람의 마음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일수도 있다. 

마리아와 랄프는 어떻게 보면 아주 특수한 커플이다. 그들의 사랑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지리한 시간을 들여 사랑을 완성해나가는 것도 어쩌면 그런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을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봐도 문제는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마리아와 랄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이 소설을 완벽하게 소화시키기에 문제가 좀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언어와 철학적 문장, 사랑과 성(性)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