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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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이란 제목을 보니 드라큘라 백작의 성같은 그런 기괴하고 섬뜩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게다가 표지에 등장하는 남자의 모습 또한 기괴하기 짝이 없다. 옷깃으로 보이는 손가락들. 한 사람만의 손이 아닌듯한 모습과 머리와 몸이 각각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닐까 싶은 부조화스러움은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책을 받기 전에는 장편소설인줄 알았는데, 목차를 훑어보니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이었다. 총 8개의 소제목이 있지만, 제일 마지막의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 ……>는 나머지 단편 일곱편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시작점이자 도착점이라 봐도 좋을 듯 싶다. 일곱개의 단편이 모두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흥미를 유발했다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정말 앗! 소리가 나오게 만들기 충분했달까.

일단 표제작이자 첫번째 단편인 <퀴르발 남작의 성>은 1967년에서 2006년까지 약 300년동안 변해온 퀴르발 남작 이야기에 대한 변천사라고 해도 무방할듯 하다. 시대에 따라 퀴르발 남작이 어떻게 해석되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 단순한 두려움의 대상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관점으로, 반대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관점으로 변화하는 대비적 구성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이는 당시 시대상을 극명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잡아먹었다는 퀴르발 남작, 그의 성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고, 그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은 말그대로 셜록 홈즈가 등장한다. 셜록 홈즈가 요양차 내려가 있는 곳에서 발생한 사건, 그 사건의 피해자는 바로 아서 코넌 도일 경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셜록 홈즈와 코넌 도일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 셜록 홈즈는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코넌 도일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깨닫게 되는데... 실제로 창조자와 피조물의 사이지만, 오히려 나중에는 코넌 도일보다 더 유명해진 피조물 셜록 홈즈. 여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코넌 도일의 작가로서의 고뇌와 고민이란 부분이다.

사람들은 허구 속 탐정에 열광하지만 자신은 그의 창조자로서 존재할 뿐, 실존적 자아는 희미해진다고 느꼈겠지. 질투와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켰을테고, 급기야 그 탐정이 자신의 등에 달라붙어 상상력과 에너지를 빨아먹는 흡혈귀처럼 보였을 걸세. (…) 피조물이 점점 현실의 신화가 되어갈수록 창조주는 모든 가능성을 거세당한 채 신전 한구석의 석상으로 굳어간다. 참을 수 없었겠지. 결국 도일 경은 자신의 무기인 펜을 들고 창조주로서 남은 유일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 아니었을까. (72p)

실제로 셜록 홈즈는 실존 인물처럼 생각되어진 창조의 소산이다. 코넌 도일 경 역시 자신의 창작물과 현실에 괴리를 느껴 당분간 절필을 했지만, 사람들의 요구에 다시 펜을 들기도 했다. 자신의 피조물이 자신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기분은 어땠을까. 나 역시 홈즈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홈즈에 열광했지 코넌 도일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녀의 매듭>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차단하고 조작해서 다른 기억을 만들어 내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나쁜 기억은 어떻게든 잊고 싶어하고, 좋은 기억은 살을 덧붙여 더욱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라고 하는. 여기에 등장하는 화연 역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물론 그런 경우 힘든 일은 결코 극복하지 못한다는 부작용이 따르지만...

<그림자 박제>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기억나지 않는 기억과 기억하고 있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기억나지 않는 기억이란 말자체가 말이 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대형마트 화장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하지만 범인은 자신이 그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정신을 사로 잡고 있는 것은 강철수 본인과 괴팍한 성격의 톰, 수줍음 많은 제리, 그리고 대인기피증이 있는 강우빈이이다. 조실부모하고 혼자 힘으로 회계사가 되어 결혼까지 했지만 기러기 아빠 생활에 힘겨워진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다른 인격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과연 그의 마음 속에는 정말 다른 인격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찰 - 휘뚜루마뚜루 세계사 1>은 제목이 꽤 길다. 이 단편은 소설이란 느낌보다는 보고서같은 느낌이랄까. 마녀의 문화사같은 느낌도 들지만, 신화를 접목시켜 이야기를 더욱 방대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서슴지 않는다. 짧은 글에 비해서는 내용이 너무 많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지도 모르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이게 전부 진짜 보고서처럼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이 글을 휘뚜루마뚜루 쓴 게 아니라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썼기 때문이리라.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는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중 가장 밝고 가볍다. 이혼한 남자와 결혼을 앞둔 여자(둘은 대학 선후배 사이이다)가 만나 나누는 이야기에 관한 것인데, 서로 공통점이 없고 결혼이란 주제는 피하다 보니 이야기의 공통점을 가지기 위해 '마리아'라는 사람을 창조해내게 된다. 물론 마리아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다. 대학 후배이자 결혼을 앞둔 여자인 수연의 롤플레잉 게임속 아바타라고 보면 더 정확할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것이 마리아인 것이다. 우리도 아바타 게임을 즐겨 한다. 현실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때문에 말이다. 아마도 수연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삶을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괴물을 위한 변명>은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원작 소설과는 달리 무자비하고 냉혹한 괴물로만 그려진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피조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체를 꿰맨 괴물의 이름은 원래부터 없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괴물영화가 되어버린 프랑켄슈타인에 감춰진 뒷 이야기, 그것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동생의 이야기를 통해 재창조된다. 그러고 보니 난 프랑켄슈타인 원작 소설을 읽은 적이 있던가...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 기존의 이야기는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재창조되고 있으며, 결말은 상당 부분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문학이란 것의 원래 목적이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재해석하도록 하고 있던 게 아니던가. 물론 장르에 따라 분명한 결말을 내는 작품들도 있지만, 이렇게 재해석의 가능성과 상상의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퀴르발 남작의 성은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 제일 마지막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즐거운 마무리이자 시작은 정말 '최고'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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