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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홀로틀 로드킬
헬레네 헤게만 지음, 배수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1992년생. 열다섯 살에 자신의 연극 발표, 열여섯 살에는 영화 감독으로 데뷔, 그리고 열일곱에 소설 발표. 천재 소녀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은 헬레네 헤게만. 내가 열다섯 살때는 뭘 했지, 하고 생각해 보니 이 소녀가 섬뜩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내가 지금 헬레네 헤게만의 또래라면 그녀의 엄청난 천재성에 질투라든지 동경을 가지고 있겠지만, 지금 그녀보다 약 두 배정도 나이를 더 먹은 어른의 입장이다 보니 참 대단하다, 라는 감탄만 나온다. 어른의 넓은 아량? 혹은 난 지금껏 이루지 못했고, 앞으로도 절대 이루지 못할 이런 성과에 대한 질투를 감추기 위한 알량한 자존심? 뭐, 어느 것이라도 좋다. 어쨌거나 그녀가 '대단하다'란 것은 분명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아홀로틀 로드킬은 미프티란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열여섯 살. 어릴때는 알콜중독자인 엄마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살았고, 열세 살 이후에는 베를린에서 이복 오빠 에드몬트와 이복 언니 아니카와 함께 살고 있다. 미프티는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리고 늘 약물과 마약에 쩔어서 지내며 그 영향으로 때로는 환각을 보기도 한다. 미프티의 주변에는 어른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미프티가 마음을 여는 여자 어른 둘이 있다. 한 명은 알리스, 또 한 명은 오펠리어. 미프티는 알리스에게서는 자신이 갖지 못한 다정한 엄마의 모습과 그 사랑을 갈구한다. 오펠리어는 미프티의 영리함과 예술성을 알아봐 주는 인물로 미프티가 마음을 연 대화가 가능한 거의 유일무의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열여섯 소녀의 무절제하고 파괴적인 삶을 따라가다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또한 약물을 남용하는 소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구성때문인지 때로는 이야기의 흐름이 잘 파악되지 않기도 하고, 우리들이 잘 쓰지 않거나 잘 모르는 용어나 단어들을 들먹이면서 선을 그어 버리는 바람에 미프티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잘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또한 거의 매문장마다 등장하는 뮤지션들의 이름과 그들의 노래 제목들은 절대 어른인 너희는 이해하지 못할 세계야, 라고 못박고 있는 듯 하다.
시퍼런 날이 선 언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사회의 규범에 몸을 맞추고 사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나로서는 미프티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열여섯 살의 미프티에게 있어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반항이란 의미와 동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십대의 특권쯤으로 생각되는 반항. 하지만 반항이란 것으로 일축하기엔 그 정도가 심각하다. 물론 그 나이 또래에서는 어른들의 세계가 불합리하고 부조리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미프티처럼 똑똑한 데다 예술성이 있는 아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 미프티가 엄마에게 받은 학대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어른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을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열여섯 살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잃지 않은 채 나를 학교에 다니게 하고 짓눌린 감정으로 끌고 가는 이 사회와 그 어떤 관련도 맺지 않고 스스로를 지탱해 나가기를 소망하는 것, 그것뿐이다. (32p)
하지만 미프티의 한계란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미프티는 언젠가는 자신이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은 어른이 될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성장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하지만 미프티는 그렇게 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보면 억지를 부리는 어린 아이같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또 한편으로 미프티는 자신의 아버지를 거부하고 있지만, 미프티가 약을 하면서 쓰는 돈, 레이브 파티에 다니는 돈은 결국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란 것이다. 그렇게 질색하는 아버지이면서 스스로 돈을 벌 생각은 안하고 오로지 반항을 위해 아버지에게 손을 벌린다. 이 또한 미프티가 가진 열여섯 살이란 나이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미프티는 기존의 세상을 거부하고 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알리스에게 갈구하지만 자신이 만족할 만큼은 아니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오펠리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오펠리어가 자신에게 줄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해 떼를 쓰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자꾸만 현실과 동떨어지고, 점점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자신 뿐임에도 불구하고. 미프티는 자존심을 내세우면서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프티의 날카로운 말과 과격한 행동때문에 주변 사람을 점점 자신에게서 떨어뜨려 놓고 있기도 하다. 미프티의 앞날에 희망의 빛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일까. 마지막 페이지를 끝으로 책장을 덮으면서 한숨이 쉬어졌다. 결코 희망이라 말할 수 없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아홀로틀 로드킬의 본문 중에는 아이렌이란 사람의 블로그, 다양한 책, 개인 이메일 등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고 가져온 글들이 많다고 한다. 몇 쇄를 걸치면서 지금은 인용문의 출처를 밝혀 두었지만,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이 세상에 완전하고 새로운 창조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듯 출처없이 다른 사람의 글을 도용한 것에 대해 작가 스스로의 언급이 없다는 것은 나같은 사람에겐 놀라운 일이다. 지금은 단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저작권이 어떻니 저떻니 하는 문제가 거론되기 때문이다. 이는 십대 소녀의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고, 작가의 말대로 실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인용이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이 책은 무척이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쓰레기 같은 소녀의 넋두리로 볼 수도 있고,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자신의 표현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틀림없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 읽어본 나로서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섣불리 단정하기엔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한다. 아홀로틀 로드킬은 헬레네 헤게만의 첫 소설이며, 아직 십대인 소녀가 쓴 글이기 때문이며, 이 다음에도 소설을 펴낼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종류의 예술이란 것에 도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홀로틀 로드킬은 기존의 문학에 대항하는 일종의 실험으로 보이기도 하고, 기존 사회와 문학에 대한 도발로도 보이기도 한다. 헬레네 헤게만의 작품이 실험이란 것으로 꾸준한 성공을 거두게 될지, 아니면 도발로 끝나게 될지는 시간이 더 흘러 봐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