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 새끼 고양이, 길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
폴 갈리코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이라는 다소 긴 제목에 <새끼고양이, 길잃는 고양이, 집없는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라는 더더욱 긴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도대체 어떤 고양이기에 이렇게 책의 초안을 잡을 만큼 영리한 것일까. 이 책을 펴낸 폴 갈리코는 끝내 이 원고의 주인인 고양이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교묘하게 이름 부분이 지워져 버렸고, 고양이는 자신의 영특함을 감출수 있을 만큼 영리한 동물인데다가, 아주 비밀스러운 동물이라 함부러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저자 서문과 후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떤 고양이에 의해 씌어졌다. 총 열여덟 개의 상황에 따른 행동 강령이 포함되어 있는 본문의 내용은 아주 체계적으로 인간의 가족을 접수하기 위한 지침을 담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고양이 입장에서 본 인간들의 모습이 아주 적나라하고 때로는 시니컬하게 표현되어 있다.

원저자 고양이는 생후 6주에 갑작스런 사고로 어미를 잃고 스스로 자기가 살 집을 찾아 다녔다. 일단 목표를 정하고 그 집을 접수하기 위한 포석을 깔기 시작했다. 제일 첫번째는 그 집에 사는 인간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집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며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생후 6주된 새끼 고양이라.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사랑스러울 때이다. 똘망똘망한 눈, 갸날픈 몸, 귀여운 목소리. 사실 아이돌과 새끼 고양이가 한 장소에 있다면 난 주저없이 새끼 고양이를 선택할 것이다. 그정도로 새끼 고양이는 사랑스럽다. 하지만 누구나 고양이를 키울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고양이 역시 자신이 접수할 만한 가정을 택했기에 이후 이 집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무척 유쾌했던 것은 정말 고양이가 쓴 책 아니야, 라고 생각할 만큼 고양이가 보는 인간과 인간의 행동이나 감정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인간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각 인간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을 접수할 때 달라지는 접수 방법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어쩌면 이런 것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깜박 잊고 사는 부분이기 때문이리라.

예를 들어 재산 만들기에 나온 문장으로 설명해 보자면...

나는 인간의 우유부단함을 반기면서도 때때로 '정말이지 왜 저럴까' 하고 놀라기도 해.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은 고양이가 침대에 올라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올라오기를 은근히 바라지. 모순이라고? 그게 바로 인간이야. (49p)

나 역시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이런 인간의 모순된 점을 잘 알고 있다. 침대에 올려놓으면 일단,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나 개를 위해 침대의 2/3는 내주어야 하고, 더불어 이불은 멀쩡한 이불도 앙고라 이불이 되는 것을 겪어야 하며, 때로는 날리는 털에 재채기를 하면서, 여름에는 더워서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고 하면서도 침대 위에 올려 놓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고양이나 개를 키워본 사람이나 키우고 있는 사람이면 대부분 동의할 사실이 아닐까 싶다.

"고양이를 키운 뒤로 고양이가 주인이에요. 우리는 얹혀 살아요." (58p)

푸하하하핫.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난 폭소를 떠뜨렸다.
완전 나랑 똑같아, 똑같아.
사실 반려인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한다. 외출을 해서도 집에서 기다릴 반려동물을 위해 귀가를 서두르고, 의자에 앉고 싶어도 푹 잠든 반려 동물을 보면서 바닥에 앉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반려 동물 입양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바닥에는 반려 동물을 위한 장난감이 굴러 다니고, 주방 한쪽 선반에는 반려 동물을 위한 사료며 간식 등이 줄줄이 쌓여있게 된다. 또한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도 이건 우리 ○○가 좋아하는 건데 하면서 카트에 무의식중에 집어 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되면 그 반려 동물은 그 집을 완전히 접수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외에도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기 위한 작전, 사람을 부리기 위한 작전등을 살펴 보면 사람에게 약간의 만족감을 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사람에게 문열어 달라고 하기나 원하는 음식을 내놓도록 하는 것은 인간이 고양이에게 베푸는 행동이 아니라 길들여져 해달라고 해주는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또다른 것으로는 여행이나 동물 병원가기, 집에 손님이 왔을 때의 행동에 관한 행동 지침도 포함되어있다. 이런 것은 고양이가 인간과 살아가면서 약간은 양보해야 할 것들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을 잘하면 더욱더 큰 사랑으로 돌아오니 고양이에게 해가 될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

고양이들이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한 내용도 물론 있다. 두 집 살림 살기와 엄마 되기, 인간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두 집 살림 사는 고양이는 꽤 많다. 실제로 우리 시골 고양이는 세 집 살림을 살고 있다. 이름은 나비로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녀석인데, 본 집(우리 옆집)이 있고, 우리 시골집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살다시피 하고, 요즘처럼 시골집이 빈 상황에는 또 다른 집에 가서 살고 있다. 브라보!

엄마 되기는 암컷 고양이라면 한 번쯤은 꼭 지나갈 과정이라고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야할 부분이 있다. 너무 잦은 임신과 많은 새끼 고양이를 낳을 경우 인간에게 고양이 없는 삶을 그리워할 구실을 만들어 줄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사실 그렇다. 새끼 고양이는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커서 분양을 해야할 때는 좋은 집으로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하기에 때로는 인간이 몹쓸 결정을 할 계기를 만들기도 하니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고양이를 통해 작은 생명이 주는 행복감을 맛본다. 하지만 때로 자신의 반려동물이 귀찮아졌다는 이유로, 집안의 가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이유 등으로, 혹은 아프니까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버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하기에 이 저자 고양이가 쓴 이 문장은 가슴을 아프게 파고 든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런 인간의 사랑이 막대기로 맞는 것보다 더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해. 인간은 사랑하다가도 사랑을 버리고 떠날 때가 많아. 우리 고양이는 절대 그러지 않지만. (152p)

사람의 사랑은 쉬이 변한다. 나도 그걸 잘 안다. 하지만 반려 동물들의 사랑과 믿음은 변함이 없다. 때로 자신을 버리고 간 반려인의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그런 반려 동물들도 있다. 특히 사람들은 고양이는 집을 따르고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 집에서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자란 고양이들은 사람을 따른다. 그렇게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사랑이 변한다는 건 정말 큰 충격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고양이의 영리함이라 영악함을 만천하에 공개하고자 출판된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책을 본 애묘가들이 고양이의 진짜 정체에 대해 알게 하게끔 출판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고양이의 영리함에 대해 더욱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애묘가들은 스스로가 자신들의 고양이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스스로를 고양이 집사나 하녀라고 칭하겠는가.

1964년에 초판 발행된 이 책은 시간의 흐름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바로 얼마 전에 초판이 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감각적이다. 고양이의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인간 가정 접수 작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으로 인간의 가정을 접수하고 그 가족들을 자신의 집사나 하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은 다 알면서도 눈감아 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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