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김재영 지음 / 더팩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 말 표현에 미친 년 널뛰기 하듯 한다, 라는 말이 있다. 2000년대 우리 나라의 수도권 집값의 동향이 그에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재건축 규제가 풀리면서 재건축이 예상되는 아파트의 가격은 미친듯이 뛰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파트로 한몫 잡아 보겠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신축 아파트 청약광풍 사태는 물론이거니와 이미 지어진 집들이 있는 버블 세븐 지역의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었다.
 
2000년대 중반 난 분당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분당 파크뷰 30평 정도가 10억.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도대체 그런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 거지?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다 우리와 같은 생김새의 사람들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주 부자란 것. 사실 나같이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의 경우 집값이 몇 억의 억 소리만 나도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은 '특별한' 종족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고, 나와는 아예 상관없는 나라의 이야기로만 여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비싼 집에서 사는 것일까. 연세 지긋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내 또래의 사람들도 그런 집에서 살았다. 자조적인 심정으로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지는 않았다. 부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자연스레 면역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난 지방에 있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가 사는 곳은 중소 도시. 최근 도청 이전이 확정되면서 일시적으로 땅값이 좀 뛰긴 했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같은 청약 광풍 사태같은 건 없었다. 하긴 도청 이전에 20년이 걸린다니 지금 새 아파트를 사면 그때가 되면 이미 낡은 아파트니 별로 투자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방의 그런 현싦과 비교해 볼 때 수도권은 정상이 아니었다. 개포동 13평짜리 아파트가 13억, 14억이라니, 평당 1억? 그게 집이냐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집값이 뛰었을 때 산 사람들은 그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라는 궁금증도 생겼다. 뭐, 하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내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라 그후의 동향에도 주시했다. 하지만 최고점을 찍고는 재건축 아파트 시세가 마구 하락했다. 게다가 재건축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집값이 오를때 들어온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내가 만약 원입주자였다면 난 10억쯤 할 때 그 집을 팔고 다른 데로 이사갔을 텐데, 하는 그런 생각도 했다.

하우스 푸어는 이렇듯 재건축이 예정된 아파트나 신축 아파트를 투자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 중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 중 집값 하락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결국 집까지 잃게 될지 모를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재건축 예정 아파트는 은마, 개포동 주공, 가락 시영,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이다. 그곳에 입주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얼마만큼의 은행빚을 지고 있는지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재건축만 되면 금방석 아니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 아파트를 사기 위해 은행 돈을 빌린 사람들은 최고 8억에 가까운 빚을 지고 있었고, 대부분 3, 4억 정도의 은행대출을 받고 있었다. 어휴. 그돈의 이자가 도대체 얼마야? 요즘 시중 금리를 생각해보면 이자만 해도 일반 가정 한달 수입과 맞먹거나 그걸 뛰어 넘는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 투자한 보람이 있을까? 속된 말로 뽕을 뽑는다고 하는데, 정말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한 뽕을 뽑을 수 있을까. 물론 이들은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다. 자신이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차익을 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0억 주고 산 아파트가 도대체 얼마나 올라야 이득일까. 게다가 지금은 집값이 대폭 하락하는 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 나처럼 이런 거 잘 모르는 사람도 - 마이너스란 계산이 나온다. 대출금 이자에 생활비, 아파트 유지 보수비 등을 생각하면 절대 이윤이 남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재건축 아파트를 사려고 안간힘을 썼고, 결국 지금은 하우스 푸어가 될 위기에 몰렸다. 지금 부동산 시장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탐욕이란 연료를 사용하는 막장으로 가는 전차를 탄 끝물 투자자들은 부동산의 신이 아니라 부동산의 신의 할아비가 와도 마이너스가 될 수 밖에 없다. 앉아서 고스란히 몇 억을 날려먹는 것이다. 

난 이런 걸 보면서 도박과 비슷하단 생각을 한다. 무조건 로또 1등 당첨일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치않다. 일단 투자한 돈때문에 은행 빚에 허덕여야 하고, 재건축 승인이 나지 않으면 애간장이 녹아 내리고 똥줄이 탈 것이다. 승인이 난다 해도 집값이 폭등하는 일이 없는 이상은 이득이 남지 않는다. 게다가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율을 높인다고 해서 그 이득이 집 소유자에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두껍아 두꺼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도 아니고 13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30평대 40평대 아파트를 달라는 건 얼굴이 두꺼워도 너무 두껍다. 어느 정도 늘어난 평수에 대한 금액은 지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재건축 예정 단지에 있는 주민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다 보니 재건축 허가가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주민들의 잘못이라 할 생각은 없다. 건설사가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고 주민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 하나에 모두 건 사람들에게 돈을 몇 억씩 더 내라고 하니 그게 도둑놈 심보가 아니고 뭐냔 말이다.

이건 뉴타운도 마찬가지이다. 낡고 허름한 집을 없애고 아파트를 세운다고 해서 원주민들이 그곳에 입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 몇 억씩을 더 내야 입주가 가능하다. 이런 사람들은 집이 투자의 목적도 아니요, 다만 집의 목적에 딱 부합하는 실거주자들인데 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집을 뺏기는 것이다. 솔직히 나같은 경우에는 빚을 내서 재건축 아파트에 목숨 걸었다가 피를 본 이들은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고 실제로 제일 안타까운 하우스 푸어들은 바로 뉴타운 개발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민들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며 연세도 많다.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몇 억을 공수해온다는 말인가.

내가 오래전에 읽었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집과 자동차는 자산일 수 없다고. 왜냐하면 집은 실거주를 목적으로 할 때 현물화 될 수 없는 것이며, 자동차의 경우 사는 순간부터 가치가 떨어지고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돈을 공급해야 하는 돈까먹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워낙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나라의 하우스 푸어는 건설회사만 배불리고 중산층에 그 몫을 감당하라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정경 유착, 언론과의 야합의 더러운 고리에서 파생한 문제이다. 은행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도록 부추기는 정책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아파트 가격만 천정부지로 솟았다. 도대체 몇 억씩 하는 집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퍼센트나 될까. 그것도 순 현금으로 구매할 경우에 말이다. 물론 쓰는 돈의 규모는 대한민국 상위 몇 퍼센트가 사용하는 돈이 막대할지는 몰라도 결국 나라가 유지되게 하고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는 것은 우리 서민들이다. 이들이 이렇게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다면 개인의 파산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에 핵폭탄을 투하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금리는 높아지고, 언제 명퇴당할지 모르고, 물가는 미친듯이 오르고... 이런 상황에서 답이 있을까.

은행빚을 빌려 재건축 아파트를 사거나 신규분양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정말 로또 1등에라도 당첨되면 모를까, 그 큰 빚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집값은 한 번 떨어지면 잘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부동산에서 호가를 실거래가보다 높게 부를 수 밖에 없다. 또한 건설사들은 집을 팔아야만 이득이 생기기 때문에 무조건 개발호재만을 강조하고, 선분양 후시공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최대한 청약자에게 돈을 긁어내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가 없는 아파트도 만들고 있다. 이는 아무나 살 수 없는 아파트란 점을 강조해서 청약자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는게 아닐까.   

발로 뛰어 조사한 자료와 재건축, 신규 분양 아파트로 인해 고통받고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 사람들의 인터뷰 및 경제전문가들과의 인터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것들은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큼 알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집없는 중산층이라며 한 가족을 소개해 놓은 점이 굉장히 거슬리고 불쾌하다. 부부 합쳐서 연봉 1억에 40평대에 전세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없이 행복한 사람들의 사례라고 떡 올려 놓은 것이라니. 솔직히 말해 부부 연봉이 1억이 될 가정이 얼마나 되겠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또한 전세란 것은 2년마다 재계약때 대부분 전세금을 올려달란 이야기를 듣게 마련이다. 이 가정보다 연봉이 반밖에 안되는 가정이 재계약때마다 전세금을 올려줄 형편은 되겠으며, 이 가족들이 하듯이 잦은 가족 여행과 여름에는 스킨스쿠버, 겨울엔 스키라는 취미를 즐길 수 있겠는가? 

앞에서는 문제 제기와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에 대해 분석해놓고서는 뒤에서는 이런 황당한 결론을 내고 있다. 그래서 도대체 어쩌라고? 라고 되묻고 싶다. 연봉 1억 정도는 되어야 집없는 행복한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라도 낼 참인가? 입맛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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