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1 - 죽음을 부르는 독극물의 화학사
존 엠슬리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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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르는 독극물의 화학사라는 부제나 띠지의 비겁한 살인자를 위한 죽음의 원소 가이드, 무서운 화학 이야기라 적힌 글귀를 보고 한숨을 포옥하고 내쉬었다. 일단 흥미로울 듯 해서 구입을 하긴 했지만, 난 화학같은 자연 과학 과목에는 젬병이었던 고교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거꾸로 봐도 인문계. 즉 난 국어나 영어같은 어학 과목에는 흥미가 많았지만 수학이나 물리 화학 같은 과학 시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수학능력시험을 볼 때도 수리능력이나 과탐은 거의 포기했을 정도니까.

그런 이유로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책을 펼쳐 들었다. 화학식이 줄줄 딸려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의 두려움과 걱정은 서서히 사라졌고, 결국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이 책을 다 읽어 버렸다. 물론 처음에 나오는 연금술의 위험한 원소들에서는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학자들의 이름이 줄줄 나와서 살짝 겁먹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연금술의 역사에서 이 책에서 언급되는 첫번째 독극물인 수은의 역할이라든지 연금술이 화학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것은 과학 수업을 받는다기 보다는 역사 수업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문과니까 아무래도 역사라고 생각하는 편이 수월하달까)

그렇게 연금술의 역사와 현대 화학의 역사와 중요한 학자들의 이야기로 첫번째 이야기가 끝나고, 드디어 수은과 관련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수은이라고 하면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유일한 금속이며, 우리 실생활에도 많이 사용되어 왔지만 지금은 유해한 금속으로 분류되어 그 쓰임이 많이 줄어 들었다. 난 수은이 들어간 제품이라고 하면 일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빨간 약(정식 명칭은 머큐로크롬)이다. 어린 시절 생채기라도 났던 날이면 어김없이 팔이며 무릎에 발랐던 빨간 약. 그땐 모르고 발랐지만 그때는 빨간 약이 만병통치약처럼 쓰였다. 나중에는 이 약에 수은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시판이 중지되었다. 또한 수은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는 건전지, 형광등, 온도계, 체온계 같은 실생활 용품도 많았다. 하지만 수은은 중금속으로 인체에 들어가면 배출이 잘 되지 않으며 중독을 일으킬 경우 심각한 지경까지 가게 되므로 지금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고 있다. 특히 수은 중독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의 미나마타현의 미나마타병은 초등학교 다닐때도 배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좀 충격을 받았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충치를 때우는데 쓰이는 아말감에 수은이 들어가 있다는 것. 나 역시 충치를 몇 개 때운지라 내 입안에는 수은이 사용된 아말감이 들어있다. 수은의 해로운 점을 생각하면 솔직히 섬뜩하다. 하지만 일단 충치를 때우는 데에는 아말감만 한 것이 없고, 그 정도로는 큰 해가 없다니 일단 안심하자 쪽으로 기울긴 하지만, 수은이란 것이 첫 발견되고는 해로운 물질이란 것으로 판명나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많이 쓰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다지 안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좋은 점이 먼저 부각되고 나중에 뒷통수 치듯이 해로운 점이 부각되는 게 이런 양면성을 가진 물질들의 속성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수은 이야기는 그 이후 수은 중독과 관련한 사례로 넘어간다. 유화물감에도 사용되었고, 벽지 인쇄 물감으로도 사용된 수은의 쓰임새를 비롯해 독살용으로 수은을 사용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 독살이란 게 끔찍하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인 누군가가 그렇게 당했다라고 하면 흥미가 동하는 게 인간인지라, 나 역시 이 부분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앨리스에 나오는 미친 모자 장수가 괜히 미친 게 아니라 수은 중독 때문이었고, 헬레네 섬에 유배된 나폴레옹 역시 벽지에 사용된 수은이 기체화되어 그것으로 인한 중독 증세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수은이란 것은 정말 만만히 보면 안되는 물질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무색무취라 자신도 모르게 수은에 중독될 수 있다는 부분이 정말 소름이 끼쳤달까. 현대에 이르러 수은 사용량이 줄어들고 수은대신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 없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원소는 비소이다. 비소라고 하면 드라마나 영화, 책을 통해 천천히 누군가를 중독시켜 죽이는 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 내가 읽었던 책 중에도 - 워낙 오래되어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 비소를 사용해서 누군가를 독살하는 책이 있었다. 지금이야 과학수사란 것이 잘 발달되어 사인이 불분명할 때는 부검을 통해 독살 여부를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과학수사가 발달되기 전까지는 비소로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비소는 쥐약에 쓰인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쥐를 잡기 위해 쥐약을 많이 놓았는데, 그게 바로 비소였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정도지만 그외에도 파리 끈끈이나 살충제, 방부목 처리에도 비소가 쓰인다고 한다. 비소편 앞부분은 수은편과 마찬가지로 옛날 사람들은 비소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그리고 비소가 생활용품에 얼마만큼 이용되었는지를 설명하고, 비소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과 비소때문에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았던 사람들의 사례가 나온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역시 비소를 이용한 독살 사건일 것이다. 이 독살 사건들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점은 독살이란 방법을 택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성이란 것이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불륜 상대와 결혼하기 위해 남편을 서서히 독살시켰던 여자들. 얼핏 생각하면 마녀들 아냐? 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지만, 물리적인 힘으로는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여성들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표시나지 않는 방법으로 죽게 만드는, 즉 자연사처럼 보일 수 있는 독살을 선택했다고 보여진다. 비소 중독은 대부분 구토와 설사를 동반하기 때문에 장염이나 위염같은 질병처럼 보이고, 그래서 그런 치료에만 집중하면 점점더 중독되어 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정말 끔찍하다. 한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고, 한 사람은 서서히 죽여 가는 것이라니. 보통 심장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 말에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란 말이 있다. 수은과 비소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수은과 비소는 인체에 해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인간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잘못된 사용으로 혹은 악의적인 사용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분류되었지만, 그 쓰임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수은과 비소를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힌다. 비록 여기에서는 인간에게 유해한 점이 부각되었고, 또 그것을 오용하거나 악용한 사례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 이런 것으로 보아 해로운 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 이는 양날의 검이라 생각한다. 2권에서는 안티모니, 납, 탈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작가는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놀래킬지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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