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보름달문고 23
김려령 지음, 노석미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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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이 제목만으로는 책 내용을 짐작조차 할 수도 없다. 책 표지를 넘기고 본문으로 들어가서야 난 이 책의 내용이 입양가족이란 것을 알고 잠시 당황했다. 사실 입양이란 소재는 우리나라에서 다루기에 아직은 좀 껄끄러운 소재가 아닌가 싶었다. 한때 영아해외수출 1위국이란 오명을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해외입양 사례나 친자냐 양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시각과 편견 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어두운 부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는 공개 입양을 하는 연예인 부부의 이야기가 미담처럼 회자되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 아이들보다 부모에 초점이 더 많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하늘이라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하늘이는 태어난지 한 달만에 입양되었고, 또한 태어난지 100일만에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하늘이는 이미 자신이 입양아란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정신과 의사이자 청소년 상담가인 엄마는 공개입양 사이트에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올리고 있는 데다가, 입양가정 모임이라든지 등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이는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이란 표현이 좋았지만, 지금은 그게 거북하다. 또한 자신이 남들과 다른 시선을 받는다는 것도 이미 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에 대해 자격지심이란 걸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긴 해도 하늘이에겐 그런 면도 좀 있긴 하다. 그래서 엄마나 아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때때로 자신의 처지에 서글픔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돼서 우리 집에 왔다고 한다. 그러니 친부모와 헤어지던 때를 기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통과하는 순간이 있다. 버려진 강아지를 볼 때, 혼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볼 때, 덩그러니 떨어진 낙엽을 볼 때도 그렇다. 아마 내 어딘가에 헤어짐의 기억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한강이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슬픔, 생각할수록 화나고 서운한 슬픔. (20p)

기억나지도 않는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없지만, 자신이 입양아란 것을 알고 가족을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늘이는 아직은 엄마 품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싶은 나이이지만 엄마는 언제나 바쁘다. 게다가 하늘이의 엄마는 속마음은 안그런데, 표현을 잘 못해서 (혹은 잘 안해서) 하늘이가 보기에는 자신이 입양아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득 찬 것 같으면서 텅 빈 것 같고, 내 물건이면서 남의 물건 같은 느낌. 이 집에서 할머니와 나는 별다를 게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 하긴, 우린 둘 다 엄마한테 꼼짝도 못하니까. (58p)

하늘이의 할머니는 중풍이 와서 지금 하늘이네 집에서 요양중이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꼼짝 못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아들인 하늘이 아빠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래서 그런지 하늘이는 할머니를 보면서 자신이나 할머니나 비슷한 처지라 생각한다.

하늘이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하늘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럴거라면 애초부터 하늘이를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과잉보호를 하는 경향이 있어 하늘이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또한 잦은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통해 공개입양에 대한 것과 하늘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은 하늘이에게는 과시욕처럼 보여도 사실은 하늘이같은 입양아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또한 하늘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도 혹시 하늘이가 입양아란 사실때문에 엇나갈까 걱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게 좋다고 한다. 나 혼자만 입양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꾸 확인시키는 것 같아서 싫다. (83p)

하지만 하늘이 입장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 누군가 자신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사진을 찍는게 어찌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렇다 보니 엄마가 나가는 행사나 인터뷰, 방송 출연등이 하늘이에겐 못마땅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이가 만드는 집모형인 하늘 마을이 하늘이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해서 짠하다.

한강이는 하늘이처럼 입양아이다. 하지만 또래보다 조숙한 면이 있는 아이이며,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고자 한다. 한강이 역시 자신이 입양아란 사실을 우연히 알고 성격마저 달라져 버린 케이스이다. 말도 없어지고 싫어하던 학원도 잘 다니게 되고... 이런 경우 칭찬받을 일이지만 한강이의 부모님은 걱정이 되서 청소년 상담가에게 상담까지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보통 아이라면 칭찬받을 일인데, 자신들이 입양아니까 상담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어떻게 보면 한강이 부모님의 과보호일지도 모른다. 혹시 잘못될까 싶어 늘 걱정을 하는 것이다.

하늘이 엄마의 말투중에 무척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하늘이가 '덤벙댄다'라는 이야기인데, 이 또한 하늘이는 오해를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평범한 아이와 다를바 없다라는 말을 에둘러서 하는 표현인데, 하늘이는 그 덤벙댄다는 표현을 참 싫어한다. 엄마가 너무 과보호 또는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하늘이에게는 아주 다르게 느껴진 듯 하다. 물론 그것은 하늘이가 입양아란 것의 문제도 있지만, 심장수술을 받을 만큼 심장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늘 보듬고 보살펴주고 싶은데 심장 수술이후 지금껏 이렇다할 문제가 없었던 것도 엄마가 하늘이에 대한 집착을 더해준 게 아닐까. 어쩌면 엄마 입장에서는 하늘이쪽에서 먼저 안겨오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하늘이의 가족 관계를 보면 하늘이는 엄마와는 진정으로 툭 터놓고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고, 아빠에게는 과보호를 받는다. 제일 말이 잘 통하는 상대는 역시 할머니다. 입은 좀 걸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지만 하늘이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 또 할머니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고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가 하늘이 할머니라고 할까. 하늘이는 할머니의 말에 악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심 친손주가 없는 서운함에 하늘이에게 이런저런 타박을 하는 게 때론 싫기도 하다. 그래서 하늘이는 할머니가 주서온 아이 운운할 때라든지, 엄마가 자신의 모형집을 망가뜨렸을 때는 자신의 감정을 폭발 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이 입양아란 것을 아는 아이와 그 부모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변화와 긴장과 대결, 그리고 화해의 구도로 이어지는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아직 사회적으로 민감한 입양가족 문제를 입양아의 시선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입양가족이라고 하면 그 부모들에게만 관심을 가졌지, 정작 아이에게는 관심을 적게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부모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하며, 아이에게 행복하겠다고 하는 우리의 대수롭지 않은 생각이 어쩌면 하늘이나 한강이같은 입양아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상처가 되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 책은 단순히 입양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가족 해체의 길을 걷고 있는 현대 가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안한다. 친자니 양자니, 친부모니 양부모니 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가족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느냐에 대한 내용이라 볼 수도 있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또한 가족이란 완벽하게 완성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기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장 뿌리 깊은 갈등을 가진 기본 단위가 될 수도 있기에 가족을 지켜내는 것,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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