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작은 탐닉 시리즈 1
고경원 지음 / 갤리온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예전부터 이 책을 읽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고양이 관련 신간이 많이 나와서 그 책들을 먼저 읽느라 이 책을 읽는 것이 늦어졌다. 길고양이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초기의 책인지라 애묘인 사이에서는 유명한 책인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를 처음 받아 들고 살짝 놀랐다. 생각외로 책이 무척이나 얇았기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책에 비하면 두께가 1/3정도나 될까.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흔히 도둑 고양이라 불렸고, 지금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둑 고양이라 불리는 길고양이들. 가까운 곳에 살지만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고 여린 생명들. 내가 사는 곳 주위에도 고양이 가족이 보였다가, 하나씩 사라지고 또 다른 고양이가 유입되고 하는 것을 자주 봐왔다. 오래 있어 봐야 2~3년 정도. 그 짧은 주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고양이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 기간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치킨집앞에 붙어서 빽빽 울고 있던 작디 작은 아기 고양이. 주변을 둘러 봐도 다른 새끼들은 보이지 않았고, 치킨집 주인에게 물어 봐도 주인 없는 고양이란다. 그때 고양이들의 비상 식량인 천하장사 소세지로 살금살금 꼬셔서 납치해온 녀석이 바로 우리집 티거란 녀석이다. (지금은 5.5kg의 거대묘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개만 키웠던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던 내가 아기 고양이를 납치(?)해서 키우다니. 그후에 보리란 녀석이 들어 왔고, 수수란 녀석도 구조해 왔다. (수수는 그후 입양을 갔다) 이렇듯 우연히 납치 혹은 구조하게 된 녀석들은 나의 가족이 되었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그전에는 고양이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그후로부터 고양이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사람들 몰래 길고양이용 밥을 내놓기도 했다.

저자인 고경원씨 역시 우연한 계기로 길고양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의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한다. 관심이 있으니 찾게 되고, 찾으면 보인다. 관심이 없다면 찾지도 않게 되고, 찾지 않으면 당연히 보이지 않을테지. 그래서 고경원씨의 사진을 보면 고양이가 지나가니까 눈에 띄는 대로 그냥 찍은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찍은 사진이란 표시가 난다.

처음에는 도심 한복판을 활보하는 길고양이가 그저 귀엽고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지만, 길고양이 사진이 늘어 갈수록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관찰하고,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하며 찍게 된다. 길고양이 사진의 묘미란, 이렇게 상상하게 만드는 풍경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38p)

길고양이는 늘 우리곁에 존재하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고양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가끔 길고양이 사진을 찍지만 근접촬영은 거의 무리이고, 멀리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길고양이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사람을 너무 믿으면 안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1p)

고양이는 왜 인간을 그리 경계할까.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쓰레기 봉투를 뜯어서, 발정기때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니까, 눈이 사악해 보이니까 등등의 이유를 댄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사람이 저희를 싫어하라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고양이도 고양이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틀안에서만 고양이를 보니 그런 것이다. 오히려 고양이쪽에서 보는 인간이 더 무서운 존재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사람에게 친근하게 구는 고양이도 있고, 길고양이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있다. 이 사진은 이 책에 실린 사진 중에 무척 마음에 든 사진이다. 보통 길고양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대부분 2,30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는 고등어 무늬 고양이. 그리고 연세 지긋하신 중년의 아저씨. 교감이란 말은 이런 때 나오는 것이 아닐까.


고양이들이 사람을 피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분명히 사람으로부터 안좋은 기억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고양이가 사람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에게 친근감있게 군다는 이유로 학대를 당한 기억이 있는 길고양이의 수도 꽤 많을 것이다. 때로는 학대를 넘어 약을 넣은 밥을 먹고 길고양이를 몰살시키는 사람도 있으니 고양이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가회동 어린 길고양이는 처음에는 저자를 피해 도망을 갔으면서도 배가 고팠는지 야옹야옹 울었다고 한다. 급하게 고양이 응급식량을 조달해 먹이니 넙죽넙죽 잘 받아 먹던 이 아이. 하지만 다음에 갔을 때는 더이상 이 어린 길고양이를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당했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로드킬을 당했을 수도 있다. 어린 생명이 살아가기에 인간 세상은 너무나도 척박하다. 물론 좋은 사람에게 구조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편한 자세를 취하는 녀석들도 있다. 이 정도 여유를 부리는 녀석이라면 어느 정도 길거리 생활에 인이 박힌 녀석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지친 몸을 뉘이고 따스한 햇살을 쬐는 행복의 순간. 고양이는 척박한 삶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영리한 동물이다.   


이렇게 길고양이의 사진을 찍으며 고양이와 인연을 맺어오던 저자에게 스밀라라는 고양이가 찾아 왔다. 역시 길고양이 출신. 처음엔 치료만 해서 입양을 보내려고 했는데, 어느새 저자의 가족이 되었다. 이렇게 우연이 겹쳐 인연이 되는 경우도 꽤 많다. 하지만, 모든 길고양이가 새가족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케어맘들이 활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케어맘들은 길고양이들에게 사료와 물을 공급해주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을 배척하는 경향이 크다. 고양이 개체수가 늘어나고, 주위가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때문이다. 그래서 케어맘들은 눈치를 보며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도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점점 나아지면서 케어맘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케어맘들의 보살핌만으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TNR프로그램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잘 정착되지 못한 상태다. 물론 잘 진행되는 곳도 있지만, 대중없이 TNR정책이 시행되거나, 여전히 고양이 몰살 작전을 펼치는 곳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 자체만으로 '착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밥만 주는 것에서 끝낸다면 '무책임한 일'로 생각합니다. TNR(길고양이 포획 - 중성화수술 - 방사)까지 마쳐야만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의 책임을 다한다고 보는 것이죠." (85p)

일본은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보다는 길고양이에 대한 대책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일본도 처음에는 소수의 케어맘들이 활동하고,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TNR정책이 잘 정착되고, 길고양이에 대한 대책이 잘 정착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란 속담도 있듯 점점 나아질거라 생각한다. 이 책이 처음으로 길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듯이 말이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29p, 62p, 68p, 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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