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빅토르 로다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성장소설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관심을 가지고 보는데, 요번에 나의 레이다 망에 걸린 것은 빅토르 로다토의 <마틸다>였다. 빅토르 로다토라.. 이름만으로 보기엔 유럽쪽 작가인가 했는데 미국작가였다. 게다가 중년의 남성이 십대 초반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을 쓴다, 라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책은 마틸다 사비치란 소녀가 화자가 되어 진행된다. 읽기 시작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은 구성이 1인극처럼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희곡작가로서도 활동하기 때문일까.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구성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마치 연극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듯한 느낌!?

주인공 마틸다 사비치의 나이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열셋쯤으로 보인다. 그러니 아직 십대 초반의 어린 소녀이다. 마틸다에게는 죽은 언니가 있다. 약 1년전 기차 사고로 숨진 언니 헬렌. 그 사고는 마틸다의 부모님과 마틸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 엄마는 언니의 사고 이후 반쯤 넋이 나가버렸고, 아빠는 무기력해졌다. 마틸다에게 있어 언니 헬렌은 동경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다. 즉,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에는 마틸다가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과 언니가 함께 보낸 날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모습이었다는 것을 나열할 뿐이다.

사람이란, 열여섯 살밖에 안되더라도 물건을 잔뜩 남기고 떠나는 법이야. 나는 오랫동안 그 물건들을 전혀 볼 수 없었지만, 거기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26p)

마틸다는 언니의 죽음에 의혹을 품고 있었다. 언니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떠밀려 선로로 떨어진 것이라고. 그래서 마틸다는 언니가 남긴 유품을 통해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고, 자신의 가족들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말하고 싶어.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고. 그런데도, 다른 엄마들이 자식이 죽은 뒤에 으레 우는 것처럼 엄마가 우는 모습은 여태껏 못봤다고. 언니가 죽은 뒤로 엄마는 군에 입대하기라도 한 것 같다고. 그게 정상이에요? (37p)

마틸다가 보기에는 엄마와 아빠는 언니에 대해 애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엄마는 우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테러에 대해서는 슬퍼하고 노여워한다. 마틸다의 입장에서는 그런 부모의 모습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사실 매우 흥미로운데, 사실 마틸다의 엄마와 아빠는 마틸다를 위해 슬퍼하는 것을 극히 자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너무도 아픈 기억이기에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언니의 사고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았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마틸다를 보면서 자신들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것을 어린 마틸다가 이해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죽음을 이해할 나이는 되었지만, 어떤 것이 진정한 애도인지 아직 판단하기 힘든 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틸다"
왜 내 이름을 저런 식으로 불러야 해? 애초에 왜 불러야 하는데? 엄마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한다는 거 알아. 거실에 서 있는 사람이 다른 여자애이기를 바란다는 것도 알아.
  (135p)

마틸다는 엄마가 늘 언니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부터 언니를 더 좋아했던 엄마니까. 마틸다가 이렇게 느끼는 건 정상적이라 생각한다. 나는 집에서 맏이고 내 여동생이 둘째. 헬렌과 마틸다의 관계이다. 내 동생 역시 늘 엄마 아빠는 언니를 더 많이 챙기고 더 많이 신경쓴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래서 내가 무척이나 미웠고, 질투도 많이 했다고. 부모들은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은 없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첫째에 대해 더 신경을 쓰는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그런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니가 죽은 후 멍해진 엄마를 보면서 증오가 생겨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약한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고, 약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싶지도 않아. (161p)

이 말처럼 마틸다의 당시 심경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 있을까. 마틸다는 슬픔에 푹 젖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듯한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 아빠는 나약하다고. 그래서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마틸다는 아주 영리한 소녀이다. 또래보다 조숙하며 상상력도 풍부하다. 그러하기에 지금 자신이 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아주 불합리하며 부조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뭔가를 꾸며내고 싶어. 엄마 아빠가 나한테 진짜로 한 짓은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야. 어떻게 좀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어? 두 사람이 언니를 상자 안에 가둬 놓고 아무도 언니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고, 친동생마저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어? (247p)

마틸다는 언니의 죽음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 부모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헬렌은 자신이 동경하던 사람이었기에. 또한 그날 아침 언니와 자기가 싸운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러하기에 마틸다는 더욱더 언니의 죽음에 의혹을 품고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또래에 비해 조숙하지만 아직은 어린 소녀이다.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싶지만, 아직은 아이의 세상에 머물고 싶어 하기도 한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동시에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범인을 찾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사랑하는 언니였기에 언니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언니의 유품을 조사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언니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 가족이란 가장 가까운 상대이긴 하지만, 그 사생활에 대해서 모조리 알 수는 없다. 그것이 언니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괴리감을 함께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마틸다는 언니의 죽음이라는 상실감을 통해 조금은 일찍 성장해 버린 아이이다. 원래부터 조숙한 마틸다에게 어른들이 감추고 알려주지 않는 비밀은 마틸다의 눈을 통해 재해석된다. 또한 자기 또래인 애나와 케빈 그리고 그외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틸다의 시각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십대 초반 소녀가 겪는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어른들 세상에 대한 불신은 언니의 죽음에 대한 조사와 그 진상을 이해하면서 점점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 간다. 그건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화해였다. 비록 멀고 험한 길을 돌아왔지만, 마틸다는 이 일을 겪음으로 한층 성장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진짜 성장이 필요한 것은 마틸다 주변의 어른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