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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다!!! (뭐,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번역되어 나왔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1996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문고판이 2005년에 나왔으니 그다지 신작이 아닐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신작이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었던 책에서 엄청나게 실망을 했던지라 이번에는 반신반의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재계의 VIP만 상대한다는 정체불명의 탐정클럽. 그들이 어디에 속해있는지, 그 수는 얼마나 되는지,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들이 조사하는 방법은 어떤 루트를 통해 이루어지는지 모두 비밀에 싸여 있지만 그들의 사건 해결 능력은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다. 다섯개의 사건, 그리고 다섯개의 진상.
유산 - 위장의 밤
대형 마트 체인의 사장인 마사키 도지로가 희수 축하연 도중 목을 매어 자살한 사체로 발견된다. 첫 발견자는 모두 세 명으로 비서 나리타와 첩 에리코, 사위 다카아키였다. 도지로는 왜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그의 자살로 인해 회사와 집안 모두 혼란에 빠질 것이 뻔하다. 세 명은 일단 도지로의 죽음을 숨기고 사체를 처리할 방법을 궁리하는데...
그렇다면 각기 이해관계가 달라 보이는 이들이 도지로의 죽음을 숨기기로 한 계기는 무엇일까. 나리타의 경우 도지로가 데리고 들어온 비서로 도지로가 죽으면 회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고, 에리코의 경우 아직 결혼한지 1년이 안되었기 때문에 생명보험금을 받을 수가 없다. 또한 다카아키는 도지로의 현재 부인이 제출한 이혼서류가 제출되지 않는다면 유산을 거의 받을 수가 없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세사람은 도지로의 죽음에 관한 것을 숨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세사람이 다시 모였을때, 도지로의 시체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밀실상태의 방에서 도지로의 시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인간이 사는 데에 돈이 없어도 걱정, 돈이 많아도 걱정이다. 도지로의 죽음이 남긴 건 유산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뿐이었다. 오죽하면 시체를 숨기고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 할까. 이런 이야기는 비일비재한 편이라 조금은 식상하기도 하지만, 탐정클럽의 두 사람이 나타나면서 긴장이 더해진다. 과연 도지로의 죽음에 얽힌 비밀은 무엇일까.
살인모의 - 덫의 내부
부동산재벌인 야마우치家의 파티날 밤 가장인 고조가 목욕탕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원래 심장이 약했던터라 심장마비로 죽은 것으로 결론이 나는듯 하지만, 가정부마저 자살한 사체로 발견된다. 그렇다면 가정부가 고조를 죽인 것일까. 그렇다면 완벽한 밀실 상태의 욕실에서 어떻게 심장마비로 죽일 수있었을까.
이 단편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트릭답다, 라는 생각이 제일 강하게 드는 작품이다. 갈릴레오 시리즈에 비해서는 좀 약하긴 하지만 기초 과학을 이용한 트릭이 나오기 때문이다. 고조의 아내 미치요는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을 불러 놓고 차근차근 조사를 하기 시작하지만, 진상을 밝히기 위해 탐정클럽에 조사를 의뢰한다. 그들이 들고 올 고조 사망의 진실은? 마지막 반전이 좋았던 작품.
따돌림 - 의뢰인의 딸
학교에서 돌아온 미유키는 엄마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방에서 나이프에 가슴이 찔려 죽은 사체로 발견된 미유키의 엄마. 미유키는 아빠, 언니, 이모에게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자신의 아빠가 회원으로 있는 탐정클럽에 사건을 의뢰한다. 과연 미유키의 엄마의 사망 사건과 관련된 진실은 무엇일까.
원래대로라면 학생인 미유키의 의뢰는 받지 않을 탐정클럽이다. 하지만 그들은 왠일인지 선뜻 미유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설날 받은 용돈을 의뢰금으로 받기로 하고. 무너져가는 가족관계, 그리고 자식을 지키고 싶은 부모의 마음, 그리고 탐정클럽 조사원 두 명의 인간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단편.
의기투합 - 탐정활용법
후미코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탐정클럽에 조사를 의뢰한다. 그들의 조사에 의하면 분명히 남편은 외도하는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의 친구인 아키코. 후미코는 이 사실을 아키코의 남편 고이치에게 알리는데... 그후 이즈에서 고이치와 후미코의 남편 사치오가 함께 죽어 있는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키코가 있었는데... 과연 아키코가 두 사람을 죽인 범인일까.
이 작품은 왠지 코미디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 뻔하게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마지막 반전에 있었달까. 허를 찌르고 들어오는 반전, 그리고 탐정클럽의 냉혹한 면이 보이기도 한 작품이었다.
희생양 - 장미와 나이프
대학 교수 오하라 다이조는 주치의 하야마에게 자신의 딸 유리코가 임신중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다이조의 추궁에도 유리코는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데... 결국 다이조는 탐정클럽에 유리코의 상대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다. 그와중에 유리코의 언니인 나오코가 살해당하고, 유리코의 상대이자 다이조의 조수인 간자키가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쪽으로 해결이 나지만 긴자키마저 자살한 사체로 발견된다. 이 사건의 뒤에 숨은 진상은?
다섯편의 단편 중 가장 안타깝고, 또 가장 열받았던 작품이다.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물의 악의란, 소름이 끼칠 정도다. 물론, 이런 사건도 종종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고 해서 그 사건들의 끔찍한 악의가 중화되는 것은 아니니까.
탐정클럽에 실린 다섯편의 단편은 모두 가족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가장 가까워야할 가족이 가장 증오하는 대상이 되고, 가장 멀리해야할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사건은 불륜이란 것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가족간의 증오도 그 한 부분을 차지한다. 현대 사회의 가족 붕괴는 과연 어디까지 이르게 될까를 생각하면 한숨이 푹푹 나오고 씁쓸해진다. 가족간의 사랑, 믿음, 유대관계는 어디로 갔을까. 아무리 가족 해체의 시대라고 해도 이런 작품을 연달아 읽는다는 것은 꽤나 우울한 일이다. 다만 의뢰인의 딸 편이 그나마 좀 위로가 되었달까.
때로는 쿨하고, 때로는 인간적이지만 결국 냉혹한 제 3자에 머무르는 탐정클럽의 두 사람의 등장 장면은 그다지 많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조사를 하는지, 어떤 루트를 이용하는지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등장은 사건에 대한 의뢰를 받는 날과 사건의 진상을 보고하는 날 정도지만, 존재감은 꽤 크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어지간한 것은 모두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 (258P)
이 말은 탐정클럽이 가진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정재계의 VIP만 상대하는 만큼 그들과 관련된 조사는 일반인으로서는 깊이 파고들 수 없을 부분도 많을테지만, 이들이 조사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또한 이들은 경찰과는 달라 의뢰인이 사건의 진상을 숨기고자 하면 그 역시 비밀에 부친다. 뭐, 결국 나중에 고생하는 건 경찰들이겠지만, 경찰이 의뢰인이 아닌 이상 그들에게는 상관조차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때로는 경찰과 협력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이 참 재미있달까.
비록 여기에 나오는 사건이 책 띠지의 소개만큼 해결 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사건처럼 보이지는 않아도, 작품 자체가 현대 사회의 가족 문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무척이나 현실적이란 것은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책 이후로 속편이 나오지는 않은 것 같지만, 속편이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아니, 나도 속편을 기대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