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웬 쿠퍼 지음, 호란 옮김 / 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제목때문이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라는 제목이 마음에 쏙 들었고, 두번째는 고양이가 표지에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역시나, 고양이 이야기였다.) 따라서 원래는 개派이지만 고양이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달까.

이 책은 저자 그웬 쿠퍼와 그녀가 기르는 고양이들에 관한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표지에 등장하는 새까만 고양이의 이름은 호머. 워낙 까만 녀석이라 그림에서는 눈이 잘 안보이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사실 호머는 양안이 모두 없다. 4주 되던 때에 길거리에서 발견된 호머는 양쪽 눈의 감염이 너무나도 심해서 안구적출 수술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호머를 처음 데려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기에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 달라고 했지만, 호머의 삶을 향한 열정은 수의사로 하여금 호머의 삶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호머를 계속 병원에 둘 수는 없었다. 누군가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긴 했지만 양쪽 눈이 모두 없는 고양이를 데리고 산다는 데에 대해서 큰 부담을 느꼈다. 그러던 중 저자 그웬 쿠퍼가 호머의 소식을 듣고 호머를 보기 위해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한 눈에 호머에게 반해 버렸다.

그 고양이는 평생 동안 눈이 먼 채 살아야 할 것이고, 그의 삶에 있어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겠지만, 나는 애당초 그의 삶이 시각장애로만 규정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32p)

저자 역시 양쪽 시력을 모두 잃은 고양이를 입양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게다가 집에는 이미 고양이를 두 마리 기르고 있던 중이라, 그 고양이들이 호머를 어떻게 대할지도 고민되었으리라. 장애를 가진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호머를 선택한 이유는 호머가 장애를 개의치않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호머는 탐험을 좋아했고, 아주 명랑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사랑을 받을 줄 아는 고양이였다.

그웬 쿠퍼는 호머를 집으로 데려와 - 당시에는 친구의 집에 살고 있었다 - 자신의 고양이와 인사시킨 후 호머가 집안을 탐험하도록 만들었다. 스스로 사료그릇을 찾고, 물그릇을 찾고, 화장실을 찾는 것을 보며 호머에게 있어 눈이 안보인다는 것은 단지 불편한 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시각장애란 것은 오히려 호머에게 두려움이란 것을 애당초 모르게 만들었달까. 이 역시 호머가 가진 천성의 덕분이다.

고양이 세마리와의 새로운 생활. 하지만 직장 문제와 더불어 새로 집을 구해야만 했을 때, 그녀는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부모님 댁에는 이미 개가 두 마리가 있었고, 부모님은 개를 좋아하지만 고양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라 걱정을 했다. 왜 걱정되지 않으랴. 독립한 자식이 다시 부모님의 신세를 진다는 것도 부담인데, 고양이 세마리까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머는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활발함으로 개 두마리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히 케이지는 호머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호머가 중성화 수술을 받으러 가던 날 한참 동안이나 울고, 수술을 받고 돌아온 호머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개와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된 것 역시 호머의 성격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 저자는 뉴욕에 직장을 얻게 된다. 새로운 생활이 고양이들에게 달가울리 없다. 도도한 스칼렛, 착하기만 한 바티쉬, 그리고 모험가 호머. 고양이 세마리와 한 사람은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뉴욕의 겨울은 엄청나게 추워 마이애미에서만 살았던 이들은 서로서로 꼭 붙어서 지냈다. 그러던 와중에 저자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을 감지하고 도둑에게 덤빈 건 겨우 1.5킬로그램에다 눈도 보이지 않는 호머였다. 호머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던 것이다. 호머가 저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해 가을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뉴욕 쌍둥이 빌딩은 저자의 사무실과 자택과 무척이나 가까운 곳이었다. 사무실 사람의 손에 이끌려 현장을 탈출하지만, 자신이 두고 온 고양이 세마리가 너무나도 걱정되는 그웬은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군인들의 저지를 받게 된다. 사실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희생된 사건인데, 고작 고양이를 걱정하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웬에게 있어 고양이 세마리는 가족이었다. 가족을 걱정하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는 그녀의 행동은 자칫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주일만에 다시 만나게 된 고양이들.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자신이 반려인이 돌아오지도 않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 상황에 살아 있어준 것만 해도 기적같았던 나날들.

그후 저자는 로렌스라는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연애는 모두 실패. 사람들은 독신여성이 고양이 세마리를 기른다고 하면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게다가 그것을 이해해줄 사람도 별로 없었다. 오랜기간 친구처럼 지냈지만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로렌스에게 고백하기로 한 그웬.

몇 년에 걸쳐 호머에게 배운 것은, 어려움을 헤치고 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끈기의 가치도 배웠다. (250p)

지난 몇 년간 내가 관계에 있어 갖게 된 통찰력 중 대부분은 호머에게 배운 것들이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나를 믿는, 내가 믿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감행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을 나는 호머를 통해 배웠다. (265p)

사실 막막했을 것이다. 로렌스의 감정이 어떤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위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길이 없는 건 아니다. 도전할 가치가 있는 대상은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웬은 이제까지의 호머와의 삶에서 호머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도전 정신을 배웠으리라. 결국 고백은 멋지게 성공했고, 그웬과 로렌스는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로렌스의 경우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고양이와 로렌스 사이가 안좋아질까 전전긍긍했다. 늘 사람에게 호의적이었던 호머는 로렌스의 저음의 목소리에 놀라 거리를 뒀고, 스칼렛은 여전히 도도했다. 로렌스의 마음을 열어준 것은 이제껏 얌전히 살아왔던 바티쉬였다. 로렌스는 바티쉬를 사랑했고, 바티쉬 역시 로렌스를 사랑했다. 호머는 처음에는 로렌스와 거리를 뒀지만 칠면조 고기 덕분에 점점 가까워졌고, 전혀 곁을 주지 않았던 스칼렛도 몇년 만에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호머를 묘사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처음으로, 그에 대해 설명하고, 그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밤 누군가가 내게 호머에게 눈이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사는지, 고양이가 어떻게 눈도 없이 살 수 있는지 물었다면, 나는 평소에 내가 했던 대답과는 달리 아주 간단하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호머의 눈이에요. 그리고 그는 나의 심장이에요. 그리고 호머와 나는 드디어 우리 둘을 모두 받아들일 만큼 커다란 심장을 가진, 다른 누군가를 찾아냈어요.
(312p)

그후,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고, 결혼식날 로렌스가 자신들의 고양이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그중 호머에 관한 이야기는 위와 같았다. 로렌스는 다른 사람과 달리 호머를 장애가 있는 고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의 고양이지만 특별한 고양이라 생각했다. 호머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건 이제껏 로렌스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보통 장애가 있다고 하면 특별 대우를 해주려고 하거나 심적으로 불편해 한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장애를 가진 존재에 있어서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가장 쉬운 일처럼 보여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호머는 스스로 자신을 특별한 고양이라 여기지 않았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호머는 시력이 없는 대신 예민한 청각과 촉각을 발달시켰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호머가 처음 동물병원에 왔을때, 불안에 떨거나 사람들을 경계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호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 그웬과 함께 살아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호머는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기지 않았다. 세상은 신나는 곳이고, 즐거운 곳이란 걸 일찌감치 알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한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줄도 알았다. 결국 호머는 스스로 행복한 삶을 누릴 줄 알았던 고양이였던 것이다.

내게는 호머만큼 심한 장애는 아니지만 뒷다리 하나가 없었던 가을이란 개가 있었다. 작년에 1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가을이 역시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지 않았다. 10살도 넘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다쳐 반려인에게 버림받고 동물병원에서 실험견으로 쓰였던 아이였다. 가을이와 우연히 만난 날, 가을이는 세 다리로 내게 걸어왔다. 난 그순간 가을이에게 반했고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몇년이 지나 가을이는 결국 뒷다리 전부를 쓰지 못하고 앞다리로만 기어다녔다. 그렇게 삼년을 더 살았다. 그런 가을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동정의 말을 건넸다. 불쌍하다, 안됐다, 라는 둥의 말을. 난 솔직히 화가 났다. 가을이는 누구보다도 씩씩한 녀석이라 고작 2.5.킬로그램의 몸무게였지만 골든 리트리버에게 덤비기도 하는 용감무쌍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가을이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낄줄 알았다.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햇살, 사람들의 부드러운 손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호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가을이가 많이 생각났다. 호머와 가을이에게 있어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이었을 뿐,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고, 사랑을 나눠줄 줄도 알았고, 사랑받을 줄도 알았다. 이러니 어떻게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호머와 우리 가을이는 비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했지만, 그들에게 있어 세상은 늘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했다. 작은 행복도 놓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도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산다. 어두운 면이 있다면 밝은 면도 반드시 존재한다. 행복은 그것을 찾는 자의 눈에만 보인다. 늘 불행하다고 투덜거린다면 기껏 찾아온 행복도 도망가버릴지도 모른다. 호머가 저자인 그웬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사람에게 가르쳐 준 것은 행복과 사랑은 그것을 스스로 찾는 자의 몫이란 것이 아니었을까.

덧>
259p 3번째 줄 : 모른 → 모든 (모든이 되어야 문맥에 맞는다)

번역 부분에 있어 고양이 손톱이란 부분이 좀 신경쓰였다. 고양이같은 네 발 동물에게는 손이 없다. 손톱이 아니라 발톱이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인간의 시각에서 동물들의 발을 손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또한 본문의 표현 중에 애완동물이란 표현보다는 반려동물이란 표현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자인 호란씨 역시 세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는데,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란 말을 써주면 좋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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