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지음, 김석희 옮김, 헬린 옥슨버리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앨리스 시리즈 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여러번 읽었으면서도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어린 시절엔 읽어 보지 못했었다. 그러다 몇년전 주석 달린 앨리스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 체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어쩐다, 난 체스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데..."라는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앨리스가 열한수 만에 여왕이 되는 과정을 모험 형식으로 꾸민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사실 체스를 둘 줄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체스판이 내게 있다면 직접 앨리스가 가는 길을 움직여 볼 텐데... 하는 것이었달까.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배경은 초겨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초여름 야외가 배경이었기 때문에 하얀 토끼를 따라가다 토끼굴로 떨어지면서 앨리스의 모험이 시작된다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초겨울 집안에서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면서 앨리스의 모험이 시작된다. 두 모험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자면, 이상한 나라로 갈 때는 우연히 그곳으로 향하게 되고, 앨리스가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많았다면, 거울 나라로 갈 때는 스스로 거울을 통해 그곳으로 향하고, 그 속에서도 자신이 적극적으로 모험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거울 나라의 앨리스 쪽이 더 흥미진진했달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난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더 좋아한다. (笑)


초겨울, 집에서 고양이들과 장난을 치던 앨리스는 거울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한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는 거울 속. 과연 거울 저 뒷편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거울이 마치 안개처럼 변하게 되고, 앨리스는 그곳을 통과해서 거울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건 히죽하고 웃는 시계 할아범.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것은 하얀 왕과 하얀 여왕, 그리고 하얀 졸(릴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앨리스를 전혀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앨리스의 모습도 말소리도 들을 수 없는 상태랄까. 그들을 몰래 도와준 후 앨리스는 집밖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앞으로 걸어 언덕으로 향하려 하는데도 앨리스는 자꾸만 집의 문쪽으로 향하는 거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 도대체 왜 그런걸까, 하고 궁금해하던 중 앨리스는 예쁜 정원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꽃들은 신기하게도 말을 할 수 있었다!!!! 참나리꽃, 데이지, 참나무, 제비꽃, 모두가 말을 할 줄 알다니. 앨리스는 그게 너무나도 신기해서 참나리를 칭찬하자 참나리의 대답이 일품이었다. 다른 곳의 정원 흙은 너무 푹신푹신해서 다들 잠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나??

꽃들과 도란도란 말을 나누던 중 이번엔 붉은 여왕이 등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하트의 여왕은 좀 과격한 편이었다면 붉은 여왕은 버럭하는 성질은 있어도 어른다운 면이 있다. 뭐, 좀 자기 멋대로 하는 성향이 있긴 해도.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여왕이 되는 법을 일러준다. 그리고 앨리스가 거쳐갈 길에 누가 등장하는지도 일러준다. 앨리스가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그곳은 마치 체스판처럼 구획이 나뉘어져 있었다.

앨리스가 도전에 들어가기 전 만난 것은 거대한 코끼리가 꿀을 먹고 있는 들판이었다. 코끼리가 매달려서 꿀을 먹을 정도면 도대체 저 꽃은 얼마나 큰 걸까? 앨리스는 지금은 여왕이 되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일단 코끼리들을 지나쳐 기차를 타러 간다. (나같으면 일단 가까이 가보기라도 할텐데...)

기차 안의 손님들은 각양각색. 특히 말하는 각다귀와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말하는 꽃들도 동음이의어를 사용해서 말장난을 하지만, 각다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단어는 정말 재미있었다. 비록 이 책은 번역서지만 번역이 잘되어 있어 이런 이야기가 전혀 위화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후 사물에 이름이 없는 숲을 지나게 되는 앨리스. 그곳에서 앨리스는 자신의 이름마저도 잊어버린다. 앨리스는 귀여운 아기 사슴과 만나 동행하지만 숲을 빠져나온 순간, 사슴은 자신이 사슴이고, 앨리스는 인간 아이란 것을 알고 깜짝 놀라 달아나 버린다.


아기 사슴의 도망에 풀죽은 앨리스가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트위들덤과 트위들디가 있은 숲 속.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는 마더구스에도 등장한다. (책에도 이들에 관한 마더구스가 실려 있다) 앨리스는 엉뚱한 트위들덤과 트위들디와 함께 손을 잡고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바다코끼리와 목수라는 시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딸랑이 사건으로 둘은 싸움을 시작하려 하는데.. 결국 마더구스에서처럼 거대한 까마귀의 등장으로 둘의 싸움은 싱겁게 종결.

그후 앨리스는 거울나라에서 맨 처음 만난 하얀 여왕과 다시 만난다. 하얀 여왕은 뭐랄까, 좀 안쓰러운 캐릭터라고 할까. 옷매무새도 단정치 못하고 덜렁대는 캐릭터다. 오히려 하얀 여왕보다 훨씬 앨리스가 하얀 여왕을 돌봐주는 걸 보면 웃음이 난다. 하얀 여왕 에피소드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역시 먼저 소리를 지르고 나중에 핀에 찔리는 것이 아닐까. 역시 거울 나라는 모든 것이 거꾸로가 맞는 듯.


하얀 여왕과 실컷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하얀 여왕은 사라지고 양의 가게에 와 있는 앨리스. 물건 구경도 하고 양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노를 젓고 있는 앨리스. 양과 앨리스의 대화를 가만히 보면 동문서답의 결정판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영어의 동음이의어 말장난의 하나로 무척이나 흥미롭다.


하얀 양에게 달걀을 하나 샀더니 그건 바로 험프티 덤프티였다나? (만약 앨리스가 달걀을 두 개 샀다면 험프티 덤프티 쌍둥이가 나왔으려나?) 거대한 몸을 좁은 담장위에 걸치고 있는 험프티 덤프티는 일명 Mr.불만이라고 할까? 뭐,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는 면도 있고,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는 그런 캐릭터지만, 난 험프티 덤프티가 참 좋다. 목과 허리가 구별되지 않는 몸매도 귀엽고. (푸핫)


험프티 덤프티와의 대화는 험프티 덤프티의 일방적인 대화 종결 선언으로 끝을 맺었다. 험프티 덤프티를 뒤로 하고 걷다 앨리스가 만난 건 수많은 하얀 병사들과 하얀 왕이었다. 근데 어찌된 일인지 하얀 왕이고 하얀 졸이고 모두 넘어지기 선수란 것.

어쨌거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자와 유니콘의 싸움(마더구스)와 먼저 나눠주고 잘라야 하는 건포도 케이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등장한 헤어(삼월의 토끼)와 해터(모자장수)이다. 특히 헤어가 발레리나같은 모습으로 등장했을땐 웃음이 빵하고 터져 버렸다.


그후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지고 붉은 기사와 하얀 기사가 등장한다. 붉은 기사와 하얀 기사의 싸움은 싱거울 정도로 가벼웠고, 붉은 기사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얀 기사는 앨리스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하얀 기사도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여차하면 말에서 떨어지질 않나, 온갖 쓸데 없는 발명에만 몰두하질 않나... 하지만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중 가장 짠한 마음이 드는 게 하얀 기사이기도 하다. 하얀 기사는 앨리스를 많이 아꼈던 루이스 캐럴 자신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얀 기사의 겉모습이나 성품에 대한 묘사가 다른 캐릭터보다 더 자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앨리스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하얀 기사는 그곳에서 더이상 앨리스와 함께 갈 수 없다. 하얀 기사를 두고 앞으로 나가는 앨리스는 현실에서는 더이상 둘이 만나지 못함을 뜻하기도 한다.


마지막 개울을 건너자, 앨리스의 머리에 어느샌가 왕관이 씌워져 있다. 드디어 졸이었던 앨리스가 여왕이 된 것이다. 여왕의 만찬에 초대받은 손님들과 만찬을 즐기려 하지만 이거 식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말하는 양다리 구이에 말하는 파이. 결국 앨리스는 화가 나서 테이블 보를 빼서 엎어 버리고, 붉은 여왕을 다그치는데.... 어라랏? 어느 순간 붉은 여왕은 사라지고 그곳에는 검정 아기 고양이 키티만이 남았다.


모든 것은 꿈이었을까. 앨리스는 키티와 스노우드롭, 다이나에게 꿈속에서 무엇이었냐고 물어 보지만 고양이들이 대답할 수 있을리 만무. 가르랑가르랑.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다양한 장소를 지나며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보다는 훨씬 더 모험의 밀도가 높아졌달까.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또한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를 모험할 때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졌다고 할까. 더 적극적으로 모험에 동참하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내가 전에 읽은 판본의 경우 존 테니얼의 삽화가 들어 있었다. 존 테니얼의 삽화는 매우 클래식하다. 정말 19세기의 아가씨가 등장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헬린 옥슨버리의 삽화는 현대적이다. 좀더 자유로운 복장, 다채로운 색감, 각 캐릭터들의 성격이 잘 살아나는 생김새는 책 내용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삽화의 양도 풍부해서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앨리스의 흥미로운 모험과 그것을 잘 표현하는 삽화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앨리스와 거울 나라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달까. 

또한 이 책은 번역이 상당히 잘 되어 있는 책이다. 어린이 용으로 나왔지만 축약되거나 생략된 내용이 전혀 없고,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이나 중간중간 등장하는 마더구스, 그리고 다양한 시들 역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탄탄한 기본 스토리, 멋진 삽화, 깔끔한 번역. 이 책은 삼박자가 고루 잘 갖춰진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19p, 35p, 44~45p, 52p, 92~93p, 110~111p, 123p, 155p, 164~165p, 205~206p, 2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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