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987년 난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였다)에 다니는 꼬맹이였다. 그래서 그당시 있었던 6월 민주화 항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을때 기억나는 것은 아이들이 삐라를 주워오면 상품으로 공책을 나눠줬다는 것,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모금, 평화의 댐 건설 글짓기 대회 등이 있었고, 어디서 주워 들은지는 지금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학원 프락치나 삼청 교육대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는 정치가 뭔지 사회가 뭔지도 몰랐다. 그래서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당시 반 아이들끼리 누가 대통령이 될것인지 내기를 했던 기억도 난다. (어려서 그랬다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어이가 없지만..)

그로부터 몇년의 시간이 흐른 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담은 사진집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가 벌써 90년대였으니 이미 1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이었던데다가 그전까지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쉬쉬하며 언급을 피했던지라, 그때가 되어서야 난 전두환 정권이 어떤 짓을 했는지 고스란히 알게 되었다. 그건 학살이었다.

그후 대학생이 되었을때, 그때는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다음이었다. 말로만 문민정부였지 사실상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라리 운동권 학생이었던 나는 수많은 집회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보도블럭을 깨서 던지는 일명 짱돌, 화염병 등도 그때 여전히 남아 있었고, 시위대를 향한 최루탄 공세도 여전했다. 특히 다연발 최루탄 발사기(페퍼포그)의 위력은 날 심하게 쫄게 만들었다.

문민정부 시절의 시위는 대부분 그 당시 일어난 사건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되고, 비행기가 떨어지고, 페리호가 침몰하고, 가스 폭발 사건이 벌어졌다. 또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과 쌀개방에 관한 것에 관한 집회도 자주 열렸다.,... 어쨌거나 내가 대학을 다니는 몇 년동안 사건사고가 그렇게 많이 벌어지는 건 처음 봤다. 특히 대구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 사고는 내가 당시 대구에 있는 대학을 다녔기에 정확히 기억한다.

또한 내가 다니는 학교는 사립학교로 총장비리사건때문에 수업거부, 시험거부, 본관점거 등 학내외 투쟁으로 정신없었다. 정부에 대한 시위, 학내 문제에 대한 시위. 지금도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은 96년 연세대에서 열렸던 범민족대회(일명 범대회)였다. 당시 신문과 방송은 학생들의 폭력 시위 사건만을 다루었다.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불이 붙은 사진이 헤드라인 기사로 실렸다. 백골단이 투입되어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는 기사는, 학생들을 쥐새끼 몰듯 몰았다는 기사는, 전경들에게 얻어 맞아 학생들이 얼마나 다쳤다는 기사는.... 어디로 갔을까.

책에서 다루는 6월 민주화 항쟁 역시 신문과 방송은 정부의 편을 들었다. 아니 독재자의 편을 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96년도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으며 대학시절을 떠올렸다. 책에 등장하는 영호가 다니던 80년대 중후반과는 여러가지로 달라진 점이 많았겠지만, 여전히 정부는 거짓으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시위대에는 가차없는 폭력을 행사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여전히 정부는 그럴듯한 말로 국민을 우롱한다. 집회란 것은 모두 불법으로 여긴다. 평화적인 집회든 뭐든 다 눈꼴시다.

100˚c는 영호란 한 대학생의 가족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6월 민주항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누나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영호는 대학생, 어머니는 민가협, 형은 일반시민. 영호의 경우 어릴 때부터 반공교육을 받아온 세대로 광주민주화 항쟁이 빨갱이들이 벌인 짓이라고 교육받았다. 그런 영호가 85년 대학에 들어가면서 80년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게 되고, 고민을 하다 결국 운동권 학생으로 거듭난다. 영호의 어머니에겐 보도연맹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게된 가슴아픈 상처가 있다. 그리고 너무나 순진해서 정부의 말이라면 곧이 곧대로 믿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영호가 구속된후 당시 정부가 국민들에게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어떤 악행을 저질러 왔는지를 알게 되고 각성하게 되는 인물이다. 영호의 형은 장남이란 이유로 대학시절 직접 시위에 참가하거나 하지는 못했던, 이른바 대놓고 나서지 못했던 일반 군중을 상징한다.


처음엔 학생들이 주도하는 시위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단일사건으로 구속되고, 박종철 열사는 고문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그러함에도 정부는 기자 회견에서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어이없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영호의 어머니 말처럼 내새끼, 넘의 새끼가 어디 있겠는가. 전경들의 무력진압에도 비폭력 시위로 맞선 시위대의 모습은 시민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숨죽이고 지켜만 보던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리고 87년 6월 10일 오후 6시.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약 20일간 그 흐름이 이어졌다.

흔히들 6월민중항쟁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정점이라고들 한다. 수많은 시민들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내몰았던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불평하던 시민들도 점차 시위대에 동화되어 갔다. 종파가 다르고 정치색도 다른 단체들이 똘똘뭉쳤다.

하지만 그후 우리나라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참된 민주주의를 행사하고 있는 나라일까. 개뿔. 오히려 더 고단수로 국민들을 억압하고, 눈과 귀를 틀어 막고, 거짓부렁을 씨부린다. 국민들을 바보로 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가. 사람들은 이미 정치에 대해 관심을 꺼버린지 오래고, 학생들은 치열한 대입준비로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쓸 겨를도 없다. 그렇지 않은 학생은 연예인이 되는 일에 올인한다거나 연예인 뒷꽁무니를 쫓아다니기에 바쁘다. 대학생들은 책을 읽기는 커녕 술과 놀이에 질펀하게 젖어 들어갔고, 그렇지 않으면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어 세상밖으로 눈을 돌릴 시간도 없다고 한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정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정치에 관해 관심을 꺼두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지 이 땅의 민주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노력을 기울여야,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 세상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책 띠지의 지금은 99도다!라는 말이 눈에 아프게 박힌다. 정말 대한민국은 99도일까. 대학졸업후 정치에도 사회에도 관심이 적어진 나는 지금 몇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일까. 한때는 시위현장에서 동지들과 체온을 나누었던 나는 지금 사람의 체온을 겨우 유지하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고민만을 하고 있고, 더 나아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 건 아닐까, 라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김지하 詩 - <타는 목마름으로> 中 일부 발췌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122~123p, 166~1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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