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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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올레길. 요즘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 중의 하나가 된 곳.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었구나, 하고 누구나 감탄하게 된다는 그곳. 제주도라면 관광 도시이긴 하지만 제주도 갈 돈이면 해외를 가지, 하면서 등을 돌렸던 사람들도 제주도를 다시 찾게 되었다. 그게 다 올레길 덕분이란다. 나 역시 중학교때 제주도를 한 번 간 것이 다인지라, 티비에서 볼 때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처음에 이 책을 살 때만 해도 올레길 가이드 북이 아닌가 하고 구입했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읽는 순간부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 책은 올레길을 만들게 된 계기, 만든 사람들, 그리고 관리하고 유지하는 올레지기들, 올레길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올레길을 찾는 올레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올레길에 관한 다양한 사연들과 올레길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들이 담겨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올레길 가이드 북이 아닌가 하고 샀는데 그게 아니라서 실망했냐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오히려 이 이야기를 읽음으로서 올레길이 정말 많은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란 걸 알았고, 그래서 올레길이 더욱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장비없이 오로지 삽과 곡괭이, 그리고 사람의 노동으로만 만들어진 길. 여러 사람이 우르르 지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사람 하나 지나갈 좁은 길, 지금은 잊혀진 옛길을 다시 복원한 길. 그래서 그런지 올레길은 자연에 가까운 사람에 다정한 길이란 생각이 든다. 

회색의 콘크리트로 땅이 숨쉴 수도 없는 딱딱한 공간, 동물은 지나갈 수도 없는 오로지 사람들만을 위한 길이 매일매일 새로 닦여지고 있다. 그런 길은 도시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오히려 시골마을 쪽이 더 많이 원래의 흙길이 없어지고 새로운 길을 내고 있다. 요즘엔 시골에 가서도 흙길이 아나리 콘크리트, 시멘트로 만들어진 길을 걸어야 하니 도대체 시골에 왜 가야 하는지 - 그것도 흙길을 밟기 위해 - 그 이유가 모호해질 때도 있다. 그러니 요즘처럼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도로가 빵빵 건설되는 마당에 사람 손으로 만든 길이란 게 놀랍기만 했다. 비록 인간의 길이지만 동물과 식물이 공유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올레지기들의 이야기나 올레 주민들 이야기에도 많은 감동을 받았지만 내 마음에 가장 많이 와닿은 부분은 올레길 여행을 혼자 나선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주부들 중에서도 특히 50대가 넘어가는 주부들이 혼자서 올레길을 찾는다는 건 충격이기도 했고 놀람이기도 했다. 엄마들이 남편과 자식을 두고 혼자 여행에 나선다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이상한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 여성들은 혼자 올레길 여행에 나선 것일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여성의 발언권이 너무 세졌다'는 21세기 한국에서 아직도 여자와 남자, 어머니와 자녀들이 독립된 개인으로 만나지 못했음을. 이토록 여행에 고픈 여자들이 많았음을.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일상에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행은 자아를 발견하고 세상과 만나는 통로다. 여자들이 혼자 길을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건 정신적인 독립을 주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인 혹은 애인의 '나 홀로 여행'을 반대하는 남편이나 남자친구는 그 여성의 독립성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거이다. 오랜 세월 혼자 떠나기를 주저했던 여성들이 왜, 무엇때문에 올레길을 찾는 것일까. 어떻게 용기를 낸 것일까.
(171p)

서명숙 이사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해도 그건 주부에겐 예외다. 여행을 가도 식구들을 챙겨야 하고, 식구들 밥 굶을 생각에 1박 이상의 여행은 꿈꾸지도 못하는 우리네 엄마들. 그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다. 가족끼리의 여행에서도 엄마는 늘 식사 담당, 가족 챙기기 담당. 어린 시절의 난 그것도 모르고 그냥 즐겁기만 했다. 요즘은 엄마가 밥하기 정말 지겹다, 라는 말씀도 종종하실 정도다. 아부지는 산행으로 1박 이상의 여행을 자주 다니신다. 하지만 아부지는 엄마가 집을 비우는 건 반나절도 싫으신 모양이다. 왜 엄마들은 자유롭게 여행도 하지 못할까.

우리 엄마도 올레길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다, 이런 생각이 마구 든다. 이젠 가족들 뒷바라지에서 벗어나 엄마만의 시간,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해드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늘 올레길을 가고 싶다 하시는 엄마, 내년에 꼭 같이 가보자, 라고 하시지만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 개, 고양이 합쳐서 총 7마리나 된다. 그렇다보니 나와 엄마가 함께 집을 비울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엄마 혼자만의 여행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아직 혼자 여행은 생각지도 못하시는 엄마이지만, 이 책은 분명 혼자 여행할 결심을 하게 만들, 혼자 여행을 떠나게 만들 수 있는 용기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와 함께 놀멍 쉬멍 꼬닥꼬닥 걷고 싶은 길, 올레길.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던 것이 많았으리라. 
그 길이 수많은 사람들이 기울인 노력의 땀방울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각 길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다는 것을.

올레길이 그저 단순한 길이 아닌 꿈이 있고, 희망이 있으며, 치유의 에너지가 있는 길임을 이젠 안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50~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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