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판 어류도감 사가판 도감 시리즈
모로호시 다이지로 글 그림,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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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판 어류도감을 보면서 연신 "역시 모로호시 다이지로야"를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다했을까, 싶었다. 중국설화나 기담을 바탕으로한 제괴지이, 환상적인 기담에 유머코드를 결합시킨 시오리와 시미즈 시리즈, 그리고 사가판 시리즈. 이 책들을 읽어 오면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상상력에 그 끝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류도감이라고 해서 진짜 물고기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진짜 존재하는 물고기 이야기도 나오지만 오히려 상상에 근거한 이야기들이 더 많다. 문득 시오리와 시미즈 시리즈중 하늘을 나는 물고기나 책속에 사는 물고기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런 이야기들의 연장선에서 봐도 좋고 또다른 이야기 모음이라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총 7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사가판 어류도감은 1화와 6화가 연결되는 구조를 가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만든 <심해인어공주> 이야기는 색다른 재미를 준다. 바다 위로 올라가 인간을 만난 것이 아니라 심해에 내려온 잠수정 속의 인간을 만난 심해인어공주. 심해인어공주는 심해가 아닌 다른 세상이 궁금했다. 하지만 심해에 사는 인어공주가 더 윗쪽의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만 했다. 심해라는 곳의 특수한 환경과 그 깊이에 따른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 등은 단순한 동화의 이미지를 벗어난다. 과연 심해에 살던 인어공주는 인간 남자를 만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두번째 이야기인 <교인>은 중국 송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황제에게 교인을 진상하기 위해 교인을 잡으러 바다로 나섰다가 배가 침몰해 한 섬으로 떠내려온 사나이 찬우는 그 섬에 사는 사라라는 한 여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섬. 그리고 보름날의 여자들의 축제. 이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이 가져온 비극과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세번째 이야기인 <물고기가 왔다!>는 사가판 조류도감의 먼 미래도시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다. 사가판 조류도감에 실린 첫번째 이야기인 <새를 파는 사람>은 새를 처음보는 미래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면 <물고기가 왔다!>는 물고기를 처음 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식육용으로 유전자 조작을 거쳐 지금의 물고기 모양을 거의 찾아 볼 수도 없고 살아 있는 물고기도 볼 수 없는 미래 지하도시의 사람들. 어쩌면 우리 현대인들의 미래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암담해진다.

<물고기 학교>는 진짜 시오리와 시미즈 시리즈 느낌이랄까. 좀 웃기기도 하고 괴상하기도 한 꼭 그런 느낌. 물고기 학교에서는 어떤 것을 가르쳐줄까? (궁금하면 책을 직접 보시길...) 나의 경우 심해어의 발광기를 이용한 의태를 배우고 싶었다, 랄까?

<물고기 꿈을 꾸는 남자>는 현대 시대의 붕괴된 가정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아버지와 말조차 섞지 않는 자식, 남편과 멀어진 아내, 승진위주의 사회 생활에 지쳐버린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 물속이 아니라 물밖에 나와 힘겹게 숨을 쉬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찡해졌다.

마지막 작품인 <소재먹장어>는 자신의 이야기의 소재를 찾으러 다니는 먹장어 이야기로 초롱아귀, 큰입멍게, 별벌레 아재비의 생태를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상상력은 우리의 상상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어딘가 혼자만 알고 있는 소재가 퐁퐁 솟아나는 샘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고기란 소재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 모로호시 다이지로. 난 오늘 그가 만들어준 상상의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고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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