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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이 어때서? - 노경실 작가의 최초의 성장소설
노경실 지음 / 홍익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나에게 있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은 너무도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려 기억나는 건 별로 없지만, 입학 전에 반편성고사를 봤다는 것과 입학식날이 무척이나 추웠다는 것, 그리고 지긋지긋한 남자아이들에게서 벗어나 여자아이들만의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기쁨이었달까. 초등학교(내가 다니던 당시는 국민학교) 6학년 때 뭐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던지 난 내내 남자 아이들과 싸움을 해야 했다. 녀석들은 이유도 없이 여자애들을 괴롭혔고, 나도 그 대상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청소시간이라던지 하교시간에 때때로 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남자 아이들이 지긋지긋했고 여중에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후에는 별다른 일없이 중학교 1학년을 보낸듯 하다.
이 책의 주인공 연주는 열네 살, 중학교 1학년이고 입학한지 몇 달 안되는 새내기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에 투덜거리면서도 숙제를 하고, 하교후에는 학원에 다니며, 연예인을 좋아하고 나중에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평범한 소녀이다. 부모님도 평범하고, 공부도 썩 잘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얼굴이 유난히 예쁜 것도 아닌 연주는 마리 엔이란 여자 가수같은 위대한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
왜 내 인생은 온통 '싶어, 싶어, 싶어!'뿐일까?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몽땅 '싶어!'로 끝나는 것 같아. (24p)
~싶어란 것은 꿈이 많을 때 하는 소리. 연주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싶어, 싶어'의 연속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연주가 꿈이 많다는 소리다. 요즘처럼 대학 잘 가서 좋은 직장 얻는게 제 꿈이예요가 아닌, 유명가수가 되겠다는 연예인의 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꿈이 없는 것 보다는 나은 게 아닐까. 하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도 연주의 일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일상이란 쉽사리 바뀌는게 아닌데도 연주는 아직 그걸 이해할 나이는 아닌지도 모른다.
나는 열네 살 중학생이 되면, 내 인생이 확 달라질 줄 알았거든. (101p)
나 역시 초등학교에 다닐때는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들이 대단해 보였다.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 같았다. 나도 중학생이 되면 얼마나 달라 보일까,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는 건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로는 그게 큰 차이가 있을 줄 알았지만, 어째 연주는 나보다 더 이 사실을 먼저 깨달은 듯 하다.
연주와 연주의 부모님 사이는 나쁜 편이 아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그렇듯 부모님께 반항하고,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연주가 선생님이나 부모님에 대해 무조선 순종하는 타입은 아니고, 때로 일기를 통해 작문을 통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긴 하지만 비뚤어진 모습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사이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나이에는 어른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또 이런 생각도 한다.
휴우, 나는 엄마가 되면 우리 엄마처럼 자식을 들들 볶거나 무슨 일만 있으면 신세 한탄하는 사람은 절대 안 될거야! (110p)
나 역시 어릴 때 그랬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른이 되면 저렇게는 안될거야. 내가 만약 딸을 낳으면 친구처럼 지낼텐데, 엄마는 왜 못그럴까? 뭐 이런 생각들.
왜 저러시지? 내가 사는 게 우습다는 거? 내가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라는 거?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별 볼일 없다는 거? 그러는 엄마는 얼마나 대단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정말 기가 막히네 ……. (144~145p)
하지만 열네 살이란 나이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자신들 역시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나이 또래에 어른들의 세상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때로는 어른들의 세상을 보며 불공정하고 부조리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아예 말문을 닫고 어른들과 이야기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아이도 종종 있게 마련이지만, 연주의 경우 엄마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연주의 엄마도 때로는 연주와 부딪히기도 하지만 연주의 이야기를 꽤 잘들어 주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성장소설이며, 중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연주와 연주 가족, 그리고 친구 민주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청소년 폭력문제와 관련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별것 아닌 일로 집단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기분 나쁘게 쳐다봤기 때문에'. 물론 요즘 아이들이 자신들의 답답함을 해소할 곳이 없다는 건 인정한다. 학교 생활은 답답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학원을 다니며 늘 규칙에 얽매여 살아간다. 게다가 한가구당 자녀수가 적은 만큼 귀하게 큰 아이들이 많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대부분 이루며 살았던지라, 남에게 대한 배려나 참을성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란 요소도 크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적에는 중학시절부터 대학입시에 대해 고민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지금처럼 가정환경의 차이도 크지 않았다. 물론 그 또래 나름의 고민은 있었지만, 요즘 아이들처럼 힘겹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셀 수 없이 너희를 째려볼 것이다. 겨우 그 정도밖에 못사느냐? 넌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냐? 등등의 조롱으로 말이다. 또 삶은 너희를 기분 나쁘게 째려볼 것이다. 네가 뭘 하겠어? 네가 뭐 대단하다고?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말이다. (중략)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너희가 울든 웃든, 노력하든 포기하든, 주저앉든 다시 일어나든…… 시간은 단 한 번도 멈추거나 쉬거나 요령을 피우지 않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만 가고 있다는 것을. (166p)
선생님의 말씀은 십 대 아이들을 향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나도 움찔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내 미래는 불안하고 내 불안정한 삶에 대해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순간에도 시간은 똑딱똑딱 흘러간다. 미래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미래를 준비해야지, 하고 마음 먹고 열심히 준비해도 어느샌가 그 미래는 바로 내 곁을 지나 과거로 향한다.
이 책에서는 이런 청소년 폭력사건 뿐 만이 아니라 십 대의 임신과 영아 유기, 자살 등과 같은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내가 십 대 시절을 보낸 시절과는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참 암울하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몸은 성숙할대로 성숙했지만 마음은 성숙하지 못한 다 큰 아기들. 연주 엄마의 말씀대로 19살, 20살에 성년이 되는 것이 아니라, 2차성징이 나타나는 무렵이 성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이혼후 남들과 다른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듯한 민주,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만 특별한 미래를 살기를 원하는 연주,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유학을 결심하기로 한 지섭. 이 아이들이 이 책의 십 대들을 대변한다. 그중 지섭의 말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그건 다음과 같다.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르잖아. TV드라마를 보거나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마음에도 없는 선택을 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이 나오지.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마라 ……'라고. 어쩌면 소설이나 드라마나 그렇게 한 통속일까? 그건 작가들이 너무 무책임한 거야. 더구나 청소년 소설들을 읽으면 한결같이 기성세대, 아니 어른들에게 반항하고 자기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고, 충고해주는 길과 다른 길로 걸어가는 것만이 진정한 십 대의 용기라고, 젊음의 아름다운 고통의 통과의례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달라. 자기가 원하지 않는 길이지만 미래를 생각해서 지금의 욕망을 잠시 억누르고 포기의 고통을 겪어내는 것도 진정한 십 대의 용기이고, 진짜 아름다운 인생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해. (198~199p)
이 부분을 읽으면서 푸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드라마나 소설은 다 그랬지. 꼭 유복하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반항한답시고 설치지. 반항하며 쓰는 돈도 결국 부모의 돈인줄도 모르고. 어른들과 아이들의 대립은 없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늘 반항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어른들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라면 대립할 수도 있겠지만, 어른들의 말이라고 무조건 색안경끼고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지섭의 이야기는 그걸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십 대 청소년들의 마음속 생각과 고민, 첫사랑, 미래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이야기를 어색하지 않은 조합으로 재미있게 풀어 놓은 <열네 살이 어때서?>는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말랑말랑하게 잘 풀어 놓았다. 겨우 열네 살일지도 모르고, 벌써 열네 살일지도 모를 중학교 1학년 연주. 앞으로의 인생에서 부모님과 혹은 선생님과 아마도 더 많은 대립이 있으면 있었지 대립할 일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연주의 장래희망은 가수에서 다른 것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나이이니까. 하지만 연주가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연주 나이의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란 것이며, 연주 자신만이 힘들고 아프고 슬픈 것이 아니라, 어른들 역시 힘들고 아프고 슬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란 것, 다만 그걸 밖으로 쉽사리 드러내지 못하는 것 뿐이란 것은 알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