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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길고양이 ㅣ 행복한 길고양이 1
종이우산 글.사진 / 북폴리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신간을 훑어 보다 발견한 책. 행복한 길고양이.
우리네 길고양이들의 삶은 척박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데, 행복한 길고양이들이라...
약간의 의문과 커다란 호기심을 안고 책을 구매했다.

샛노란 색의 표지가 무척이나 상큼하다. 책 띠지를 보면 앞에는 화초 사이의 아기 고양이가, 뒷쪽에는 찹쌀떡(고양이 발)을 곱게 쌓아둔 사진이 보인다. 아기 고양이의 눈은 살짝 놀란듯 경계하는 듯 보이고, 찹쌀떡 두개는 앙증맞기만 하다.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길래 이렇게 사이가 좋은 걸까. 책표지만 봐도 행복함이 물밀듯 밀려들어 온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나는 이렇게 사진으로 행복해지는데, 과연 이 책에 나오는 고양이들도 행복할까.

길고양이와 들꽃
관심 가지기 전엔 잘 보이지 않는 것들. (14p)
책을 읽다가 이 페이지를 펼친 순간, 난 머리에 뭔가를 맞은듯 멍해졌다.
아, 그렇구나.
난 길고양이들을 볼 때 '안타깝다'란 생각 하나만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그저 쓰레기 봉투를 뜯고,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이나 로드킬로 비참하게 생애를 끝낸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난 그들의 다른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구나, 하는 생각.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지켜봤다면 그들의 소소한 행복도 엿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

풀숲에 앉아 나른한듯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 있는 삼색고양이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
난 이 공기와 이 햇살만으로도 행복한데, 넌 그렇지 않니? 라고 묻는 듯 하다.

페이지를 넘기다 푸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얼마나 절묘한 사진인가.
세상에서 가장 긴 고양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사진을 보면서 웃음이 마구 터져나왔다. 고등어무늬가 똑같은 걸 보니 형제가 아닐까 싶다.

고양이 파수대 결성!
키 작은 나무 사이로 두 녀석이 이렇게 망을 본다. 그러나 둘 다 졸고 있었다나?
옆을 보니 이번엔 좀 더 많은 녀석들이 망을 보고 있다. 설마 여기가 집단 화장실은 아니겠지?

고양이 굽기.
따스한 햇살이 내려쪼이는 시멘트길 위에서 몸을 지지고 있는 삼청동 소심이와 오디.
어째 두 녀석이 하는 행동이 똑같다. 살짝 들어준 뒷발마저도.
이런 따사로움에도 감사할 줄 알고, 행복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 우리 인간들에게 사소한 행복의 깨우침을 주지는 않을까.
이 책에는 작가가 만난 고양이들이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작가와 친분이 있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다. 길고양이였다가 집고양이가 된 아이도 있고,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는 아이도 있다. 모든 아이들이 눈에 밟히지만 그중에서 고른 것이 밑의 아이들이다.

종로 3가 길고양이 방에서 사는 아이들의 모습. 빈 창고하나에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다. 자세히 보면 고양이들이 몸을 내밀고 있는 깨진 유리창에 꼼꼼하게 발라져 있는 청테이프가 보인다. 고양이들이 드나들다 다치지 말라고 붙인 배려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이웃들의 항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주변에서도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때로는 반려동물의 권익을 위해 큰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묵묵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봉정암에는 귀넷 고양이란 암컷 고양이가 살았다. 어릴때 산짐승에게 물려 귀가 찢어진 녀석은 스님이 데려오신 선예라는 수컷 고양이와 부부의 연을 맺었고, 이쁜 새끼 고양이도 낳았다. 녀석들을 좋은 곳에 입양시키자고 스님과 의논했건만, 갑자기 그날부터 귀넷 고양이와그 새끼들이 모두 사라졌단다. 녀석들을 발견한 곳은 근처의 한 가정집. 귀넷 고양이는 자기 새끼들을 입양시킨다는 이야기를 알아 듣고 몸을 피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동물들이 사람의 말을 못알아 듣는다고 하지만, 그건 사람의 생각일 뿐. 동물들은 사람의 말을 다 알아 듣는다.

키라라는 원래 집고양이였다가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버려졌다고 한다. 그후 키라라는 그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산다고 한다. 작은 녀석들은 키라라의 새끼들. 인간에게 버려졌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았던 키라라. 키라라의 새끼들 역시 사람을 잘 따른다고 한다. 키라라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무척이나 행복해졌다고 한다. 작은 고양이의 힘!

언뜻 보면 하품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울고 있는 모습이다. 해피라는 암컷 고양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이 수컷 고양이는 해피의 죽음이후 저렇게 담벼락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우리는 동물들이 죽음을 이해하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이들도 누군가의 부재에 대해서 무척이나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는 존재란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영산홍 속에서 미소짓는 고양이.
비록 이 순간이 찰나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찰나의 행복을 만끽하는듯한 표정.
만약 사진을 찍는 사람이 무심코 지나쳐버렸다면 절대로 찾지 못했을 고양이의 행복한 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관심이 가져온 행복한 순간.
때로는 세상사에 무심한 듯 하고, 때로는 세상에 달관한 듯도 하지만, 때로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녀석들. 사실 고양이의 매력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오죽하면 십묘십색(十猫十色)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고양이들은 개성이 강한 동물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곁에서 때로는 숭배를 받고, 때로는 처절하게 매도당하며 살아왔던 존재들인 고양이. 요즘은 우리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고양이에 대한 속설도 많이 사라져 고양이들을 보는 시각이 좀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 눈에는 언짢은 존재로 비친다. 특히 길고양이들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차갑다. 사람을 보면 피하기 일쑤고, 쓰레기봉투를 뜯고, 발정기에는 소름끼치는 울음을 운다며 싫어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고양이란 동물의 한 부분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길고양이의 삶은 힘들기만 할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길고양이들은 늘 불안해 하면서 사람을 피해다니고, 쓰레기 봉투를 뜯으며 근근히 먹고 살아갔더랬다. 하지만 그들이 비록 길위에서 힘겨운 삶을 영위한다고 해서 늘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시각에서만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닐까.
고양이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고양이들을 해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고양이의 가장 큰 천적인 것이다.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고 일부러 쓰레기 봉투를 뜯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괴롭히려고 발정기 때 일부러 소리 높여 우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양이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턱대고 그들이 무섭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그들에게 사랑을 줄수는 없어도, 편견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책표지, 14~15p, 22~23p, 26p, 44~45p, 158~159p, 110~111p, 84~85p, 115p, 175p, 288~2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