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抱天) 1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애꾸눈 점쟁이 이시경? 음, 우리나라에 그런 점쟁이가 있었나, 라는 궁금증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여는 마당의 점쟁에 대한 설명을 지나 서막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대동여지도하면 떠오르는 김정호가 이시경의 예언서를 발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후에는 흥선대원군,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에피소드까지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은 이시경이 예언했던 것이었다?

본문은 이시경과 그의 딸 초희가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겪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천기를 읽을 뿐 아니라 사람의 관상까지도 잘 살피는 점쟁이 이시경. 그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조선조의 유명 인물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다. 율곡 이이와의 친분하며, 토정 이지함의 제자란 것 하며... 읽다 보면 이시경이란 인물이 실존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들 사이에 이시경을 끼워 넣은 자리가 전혀 어색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다가, 중간중간 다른 이야기가 별전으로 섞여 있어 첨엔 좀 헷갈렸지만 두번을 읽으니 이야기의 흐름이 완전히 이해되었다. (난 역시 두 번을 읽어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오성 이항복과 율곡 이이의 에피소드라던가, 고종 시절의 백운학에 관한 에피소드, 임진왜란 시 선조가 피난을 가던 이야기등은 실제 이야기이다.

기존의 역사적 사실에 상상의 인물인 이시경을 넣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글솜씨는 가히 감탄할 만하다. 특히 임진왜란을 예감하고 율곡 이이가 선조의 피난길을 밝혀줄 방책을 마련하였다는 화석정 이야기에서는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구석구석 등장하니 이시경을 실존인물이라고 착각할 수 밖에 없었달까.

또한 이 책은 이시경과 민초들의 이야기도 많이 다루고 있는데, 특히 호환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호환, 마마보다 더 두려운... 뭐 이런 표현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호랑이가 멸종되기 전까지는 호랑이가 인간의 가장 큰 천적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중 이시경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인물이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이시경의 딸 초희. 어린 녀석이 어찌나 잔망스러운지. 초희가 등장할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특히나 부록처럼 수록된 이시경 선생의 육아 난봉가 부분에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였다.

역사 만화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적 사실에 적당히 허구를 섞어 무척 유쾌하고도 재미있는 만화가 탄생되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읽었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금세 이시경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고나 할까. 또한 어휘 중에는 지금 우리가 쓰지 않는 용어들이 상당히 많다. 지역 방언도 나오지만 고어들이 많이 쓰였다고 할까. 그것 또한 이 책의 큰 재미라 할 수 있겠다.

점쟁이는 하늘의 기운을 읽고, 사람의 관상을 보지만 스스로의 운명은 읽지 못하는 존재라 한다. 어쩌면 전생의 업으로 인한 공양하는 삶이란 것이 점쟁이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시경의 앞날은 어찌 될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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